독재와 권위주의가 21세기를 살아가는 방법
비민주주의(非民主主義, non-democratic regime)를 정의하는데 있어 권위주의(權威主義, authoritarianism)와 독재(獨裁, dictatorship, autocracy)는 종종 혼용되고는 한다. 그러나 권위주의와 독재는 구분해 사용될 필요가 명확한 용어다. 독재는 ‘한 사람 또는 소수 집단에 권력이 집중된 상태’라는 권력의 형태를 지칭하는 반면, 권위주의는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통치 원리로 삼는 더 넓은 의미의 정치 체제 유형을 뜻한다.
탈냉전 시대 민주주의의 확산이 보편적 현상으로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퇴조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비민주주의(非民主主義, non-democratic regime) 정치 체제가 재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논의함에 있어 '독재(獨裁, dictatorship, autocracy)'와 '권위주의(權威主義, authoritarianism)'는 핵심적인 개념을 이루지만, 이 두 용어는 종종 그 의미가 혼용되거나 피상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개념적 모호성은 현대의 복잡한 정치 현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분석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의 ‘독재관(Dictator)’
오늘날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독재자(Dictator)’라는 용어의 어원은 본래 매우 명예롭고 합법적인 고대 로마 공화정 시기의 관직인 ‘독재관’에서 유래했다. 독재관은 국가가 심각한 위기(군사적 위협, 내란 등)에 직면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로원의 의결에 따라 임명된 특별 행정관이었다. 이들은 특정 임무(공무)를 수행하기 위해(rei gerundae causa)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다. 하지만 그 임기는 해당 위기를 해결할 때까지, 또는 최대 6개월로 한정되었다. 이러한 한시적인 권한 위임은 로마 공화정의 핵심 원칙인 권력 견제와 균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비상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장치였다. 실제로 기원전 5세기 활동한 독재관 킨킨나투스(Lucius Quinctius Cincinnatus)는 임무를 완수한 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농부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독재관 제도의 본래적 의미는 기원전 1세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Lūcius Cornēlius Sulla)의 집권 이후 변질되기 시작했다. 술라는 내전을 통해 독재관에 올른 후 임기와 목적의 제한을 무력화했다. 이어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역시 '종신 독재관(Dictator Perpetuo)'으로 스스로를 임명하며 이 제도의 한시적, 목적 한정적 원칙을 완전히 파괴했다. 이처럼 특정 인물들의 권력 남용이라는 사건은 단순히 정치적 일탈에 그치지 않고, ‘독재관’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단어는 더 이상 합법적이고 한시적인 비상 권한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영속적인 권력 장악과 헌법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권력 행사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독재가 가진 핵심적인 특성인 ‘헌법적 제약의 부재’와 연결된다.
현대적 독재의 정의와 특징
현대 정치학에서 독재는 한 명 또는 소수의 집단이 헌법적 제약이나 시민의 동의 없이 절대적인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 형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독재는 종종 폭력이나 부정선거, 기만적인 수단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다. 일단 권력을 획득하면 공포, 협박, 그리고 기본적인 시민의 자유 억압을 통해 그 지배를 유지하게 된다. 독재 체제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고 보도 기관이 통제되며, 야당이나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납치, 고문, 암살 등의 잔인한 탄압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과거의 독재자들은 군부의 지원을 받는 장성이거나(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특정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권력을 장악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대개 국민들에게 필요 이상의 애국심을 강요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민족의 배반자로 탄압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독재는 그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군사 복장 대신 정장을 입고 국제회의에 참석하며, 노골적인 공포와 폭력 대신 기만과 정보 조작에 의존하는 '스핀 독재(spin dictatorships)'의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통치자들은 여론조사 전문가를 고용하고 시민 참여 쇼를 연출하며, 스스로를 '대통령'이나 '지도자'와 같은 민주적인 칭호로 부른다. 이는 국제 사회의 민주화 압력과 내부적 반발을 동시에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것이다. 즉, 과거의 독재가 무력과 폭력을 통해 권위를 확립했다면, 현대의 독재는 민주주의의 외피를 흉내 내고 정보 통제와 대중 조작을 통해 정당성을 가장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양상은 독재 체제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그 생존력을 확보해 나가는 경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 또한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이는 스핀 독재의 한 사례로 언급될 수 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은 측근 검사인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등 주요 요직에 검찰 출신 인사들을 등용했다. 이로 인해 검찰권이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언론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 활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특히 야당과 자신에 대한 비판 세력을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하며 협치를 거부하는 태도는 독재자의 특징으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행태는 민주적 절차의 외피를 유지하면서도 특정 권력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고 통치권을 강화하려는 '스핀 독재'의 경향과 맞닿아 있다.
권위주의(權威主義, Authoritarianism)의 개념 및 유형
권위주의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권위를 갖는 것'에 대한 의혹이나 반항을 '모독이며 죄악'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 또는 행동 양식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정치 체제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권위를 내세워 타인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태도(봉건적 권위주의, 관료적 권위주의)를 의미하는 사회적, 문화적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권위주의는 단순히 지도자가 국민을 억압하는 일방향적 관계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만연한 '권위에 대한 맹목적 의존'이라는 심리적 태도나 사상에 의해 유지될 수 있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권위주의 체제는 정치적 다원주의를 제한하고, 명확하고 정교한 이데올로기가 부재하며, 대신 ‘뚜렷한 정신 상태(distinctive mentalities)’에 의존하고, 대규모 정치적 동원 없이 통치하는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들은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엄격히 제한하지만, 시민의 사생활 전반이나 전통적인 사회 조직(종교 단체, 가족 등)까지 완전히 통제하려 들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전체주의(Totalitarianism)와 구별된다. 전체주의는 국가가 시민의 공적, 사적 삶 모든 영역에 걸쳐 통제권을 행사하며, 이를 위해 정교한 이데올로기를 통해 국민 전체를 동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권위주의는 대중의 정치적 행동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뿐, 정치 영역 밖의 개인적 삶은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한다.
권위주의는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권력을 장악하는 주체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군부 독재, 하나의 정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일당 독재, 선거를 통해 집권했으나 사실상 독재적 통치를 행하는 문민 독재, 그리고 군주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왕정 독재 등이 있다.
권위주의 체제가 등장하는 동기는 단순히 권력욕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동기에 따라 체제의 성격과 통치 방식이 달라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스페인과 싱가포르는 이러한 차이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스페인 내전 이후 등장한 프랑코 정권은 극심한 혼란을 통제하기 위해 무력과 억압을 동원하여 권력을 중앙에 집중시켰다. 이 체제는 반대파를 즉각적으로 탄압하고, 통치자의 권위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권위주의가 '불안정한 환경에서 질서와 안정을 약속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형태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정권은 사회 전반을 통제했지만, 대중의 광범위한 정치적 동원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와 구별된다.
싱가포르는 군부 쿠데타나 내전과 같은 극심한 혼란 속에서 등장한 것이 아니다. 대신 '경제를 강화하고 국체를 공고히 하려는 필요성'이라는 동기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형성되었다. 싱가포르의 권위주의는 경제적 안정과 발전을 대중에게 제공하는 동시에, 제한적인 정치적 반대를 허용하는 '하이브리드형 권위주의'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차이는 프랑코 체제가 노골적인 억압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싱가포르의 사례는 경제적 성공과 복지를 통해 대중의 암묵적 동의를 얻는 방식으로 권위주의가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권위주의는 '억압 효과(repression effect)'와 '임대 효과(rentier effect)'와 같은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그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다.
독재와 권위주의의 핵심적 차이점
독재와 권위주의는 종종 혼용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두 개념은 다른 차원의 특성을 설명한다. 독재는 '홀로(獨) 재단(裁)한다'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 즉 한 사람이나 소수의 집단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권위주의는 '권위에 대한 복종'을 통치 원리로 삼는 '체제 유형'을 의미하는 더 넓고 포괄적인 개념이다.
두 개념의 관계는 상호 배타적이기보다 중첩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 독재는 특정 권력 주체에 대한 정의이며, 권위주의는 특정한 통치 원리를 가진 정치 체제의 유형이다. 따라서 독재자는 종종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통치한다. 즉, 독재는 권위주의 체제 내에서 나타나는 한 형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인물에게 권력이 집중된 '1인 독재'는 '군부 독재'나 '문민 독재'와 같은 권위주의 체제의 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여기에 '전체주의' 개념을 추가하면 비민주적 통치 체제를 더 정확한 스펙트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체주의는 정교하고 포괄적인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대중을 광범위하게 동원하고 시민의 사생활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의 극단적인 형태로 간주된다. 또한, 전체주의 체제는 필연적으로 강력한 '1인 독재'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전체주의는 권위주의의 가장 극단적 형태이자 독재의 가장 완전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위계적, 중첩적 관계를 도출할 수 있다. 권위주의(가장 넓은 개념) -> 독재(권력 주체에 따른 형태) -> 전체주의(독재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 이러한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두 개념의 복잡성을 해명하는 데 필수적이다.
21세기 권위주의의 진화: ‘경쟁적 권위주의’와 ‘스핀 독재’
현대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권위주의와 독재 체제는 그 생존 방식을 진화시키고 있다. 과거의 노골적인 무력이나 쿠데타 대신, 민주주의의 형식적 제도를 활용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난다. 이러한 체제를 정치학에서는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라고 칭한다. 이들 체제는 명목상의 선거, 의회, 야당을 허용하지만, 정부는 미디어를 통제하고, 자원을 남용하며, 야당 후보를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탄압함으로써 실질적인 권력 경쟁을 봉쇄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제 사회의 압력을 피하면서도 실질적인 권력 이양을 막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적응이다.
이와 유사하게, '스핀 독재(spin dictatorships)' 개념은 현대 독재가 무력이나 공포 대신 정보 조작과 기만에 의존하는 경향을 설명한다. 이들은 군사 복장 대신 정장을 입고, 여론조사 전문가를 고용하며, '국민 참여'를 위장하는 쇼를 연출한다. 이처럼 현대의 비민주적 체제들은 외부 환경에 적응하여 전통적인 '강압적 통제'에서 '기만적 통제'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독재와 권위주의가 민주화 시대에도 쇠퇴하지 않고 생존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러한 스핀 독재의 경향은 정치적 경쟁자를 사법 절차를 통해 제거하려는 시도에서 두드러진다. 일례로, 윤석열 대통령 정부는 제1야당 대표이자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인 이재명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며 '검사독재 정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재명 대표는 이러한 수사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역대 정권에서 대선 패자를 수사하고 기소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법 절차가 '법치주의'의 외피를 쓴 정치적 탄압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는 독재자가 정적에게 잔인하며, 민주주의의 외피를 흉내 내며 기만적인 수단을 통해 지배를 유지하는 현대 독재의 특징과 연결된다.
고대 로마의 '독재관'이라는 명예로운 관직에서 시작된 독재의 역사는, 권력자들의 남용으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부정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독재와 권위주의는 단순한 물리적 억압을 넘어, '민주주의의 외피를 흉내 내는' 기만적인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경쟁적 권위주의'나 '스핀 독재'와 같은 새로운 양상은 현대의 비민주적 체제가 국제적 압력과 내부적 동요에 적응하며 그 생존력을 확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독재와 권위주의를 정확히 구분하고, 이들의 역사적 기원과 현대적 진화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현대 정치 현상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체제별 특징과 그 지속 가능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데 필수적이다. 독재나 권위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 방식으로는 윤석열 정권의 검찰권을 통원한 통치 방식이나, 결국은 12.3 군사 쿠데타로 이어진 과정을 설명할 수 없음을 상기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