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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놀먹13

어떻게 눈이 열릴 것인가

by 한현수

누구나 한 번쯤은 눈이 열린다.


눈이 열린다는 것은 적어도 10년 20년 이상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는 일이다. 뭔가 과녁에 화살이 꽂히는 데 분리할 수 없는 정도로 명중이 되어 생각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눈이 열리면 그것에 집중하게 되고 갈급하게 되고 그것을 기다린다. 그 정도는 되어야 눈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꽃 한 송이 피는 봄꽃들이 많다. 봄꽃은 꽃샘추위에 꽃 한 송이 올리기 위해 모든 생을 건다. 봄꽃을 보고 있으면 애틋해진다. 정말 절실한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봄꽃은 씨앗이 열리면서부터 꽃 한 송이 올리기까지 치열하게 집중되어 있다. 꽃 하나가 생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씨앗이 열린다는 것, 얼마나 흥분되고 떨리는 일인가.

물 위에 핀 수련은 자유롭게만 보이는데 나무줄기에 위태롭게 뿌리를 내린 개망초는 기적처럼 한 송이 꽃을 올려놓았다.

눈이 열린다는 것은 씨앗이 열리는 것과 같다. 빛을 향해 어둠 속에서 생명의 DNA를 밀어 올리는 일, 신비로운 세계이며 기적 같은 일이다. 그렇게 씨앗처럼 눈이 열리는 일이 평생 한번 올 수 있다.


눈이 잘못 열리는 것이 디지털 중독이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빛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암흑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디지털 중독이란 말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짧은 동영상이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구글 엔그램뷰어(Google Ngram Viewer)란 검색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책에 사용된 '중독'과 '디지털 중독'이란 단어의 빈도를 조사해 보았다.




중독이란 말의 사용은 100년 이상 꾸준하게 증가되었지만 디지털 중독의 사용은 최근에 급증되었다. 2019년까지의 통계이며 아직 숏폼으로 인한 중독은 반영되지 않았다.


디지털 중독이란 말의 사용은 21세기 들어서 급증하고 있다. 마약 같은 숏폼으로 인한 중독은 아직 반영이 되지 않은 수치지만 추정하건대 아마 수직상승하는 그래프를 그릴 것이다.


한 달 동안 버스를 이용하여 출퇴근 한 적 있다. 그때 중고등학생들의 등하교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5명 중에 한 명은 자고 두 명은 게임을 두 명은 숏폼 동영상을 보는 게 일반이었다. 성인들도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 말고는 별반 차이는 없었다. 모두 일상에서 어떻게 놀아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모두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걷든 서있든 앉아 있든 사람들 자세가 한 가지다.

한 손에 스마트 폰을 쥐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경배하는 모습.


디지털 중독은 속도에 중독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약처럼 조급 갈급 급급해진다. 내부세계보다 바깥세상(비현실적)에 집착하게 되어 그럴 떠나서는 불안 초조 답답하다. 그리고 갈수록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중독되어 분별력이 떨어지고 무감각해진다. 정상적인 뇌활동은 줄어들고 그렇게 디지털 중독은 뇌질환으로 이어진다.


마약 같은 숏폼은 짧은 동영상이다. 재미 삼아 보기 시작했지만 이것에 눈이 열리면 밤을 새우면서도 보게 된다. 도파민박스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올무에 걸린 새처럼.


행복해야 할 일상이 이렇게 위험해지고 있다. 자가진단이 필요하다. "난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고.


앞을 보지 못하던 헬렌켈러는 "3일만 볼 수 있다면" 이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첫날은 먼저 나의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저녁에는 석양의 노을을 보겠다.

둘째 날은 새벽에 동트는 모습을 저녁에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보겠다.

셋째 날은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저녁에는 네온사인과 쇼윈도를 구경하겠다.

이제 집으로 돌아와 3일 동안 세상을 보도록 허락해 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한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겠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것들은 은혜처럼 주어진 것들이다. 눈이 잘못 열리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모두 놓치게 된다.


만일 "3일 동안 무엇이든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한 독자의 뇌가 궁금하다.


정말 잘 놀아야 한다.


내 눈이 열렸을 때

거기에 시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도박이나 마약이 아니었음이

그것은 내게 혁명이었고

나와 뗄 수 없는 뇌의 일부가 되었다

- 졸시「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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