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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기억의 힘이 있다

by 한현수

꽃은 꽃으로도 부족하여

바람을 깨우고 흔들리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엄마 잃고


엄마의 맛이 영원히 재현되지 않을 것 같아

늦게 찾아온 허기를 아파했다


엄마와 같이 걸었던 꽃밭을 혼자 걸었다


꽃이 있는 자리마다

가을빛을 움켜쥐고 있고


하얀 나비는

숨가쁘게 펄럭였다


-졸시,「채워지지 않는 것들



누구에게나 마음의 허기가 있다.


마음에서 허기가 발동하면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이 들지 않는다. 마음의 허기는 어릴 적 만들어질 수도 있고 성인이 되어 감정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맘껏 먹지 못했던 눈물 젖은 음식이거나 허기의 뿌리가 그리움에 닿아 있는 음식과 관련 있어 먹어도 먹어도 갈증이 채워지지는 않지만 폭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스트레스 불안 우울감이 원인이 되어 특정 음식에 대해 과식과 폭식으로 이어진다. 마음의 허기는 두 얼굴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내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가 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콩나물돼지찌개를 먹을 수 없어 그 허기의 깊이가 나이 들수록 깊어진다. 내 고향은 전주 한옥마을이다. 마을은 널찍한 운동장이 있는 초등학교와 여러 문화시설 그리고 나지막한 산과 뛰어놀기에 좋은 공간들을 품고 있었다. 해종일 마을에서 배고프게 놀다가 어스름이 번지는 골목길 끝까지 내달려 집에 들어서면 아버지처럼 굽어보는 늙은 벽오동나무 밑으로 화르르 하얀 국화꽃은 일고 빨랫줄엔 보름달이 걸려 있고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콩나물돼지찌께 냄새가 목구멍에 감기는 그 풍경과 허기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지금은 어머니의 맛을 아무리 재현하려 해도 찾을 길 없고 갈증을 달랠 수 없어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다.


음식은 어머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그 맛과 비슷한 음식을 대하기만 해도 울컥, 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은 것처럼.


음식에는 기억의 힘이 있다.


그 기억 때문에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만들어지고 옛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지나 보다. 기억의 힘을 믿기 때문에 요리하는 사람은 맛을 고집스럽게 지키려 할 것이다. 그것이 요리로 하는 대화방식이니까. 요리하는 사람의 고집과 먹는 사람의 기억에 의해 하나의 맛이 완성되는 것 아닌가.


맛은 보편적이지만 무엇보다 개별적이다. 음식은 본능으로만 취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맛이 아무리 훌륭해도 맛으로 전체를 아우르기 어렵고 만족시키기 어렵다. 왜냐면 맛이란 혀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완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서 한 가지 맛의 허기가 자리 잡으면 어떤 산해진미도 허기진 맛을 대체할 수 없다. 그건 맛의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은 뇌의 지문 같아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디선가 단출한 식사를 대할지라도 그게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집밥" 같은 느낌이 들면 맛의 기억에 감동하는 것이다. 엄마에 의한 밥심은 음식이 주는 에너지 이상의 것으로 명절마다 먼 거리를 달려가서 라도 채워져야 하는데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 날부터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고향 잃은 사람처럼 마음의 허기가 남아있게 된다.


2025년 4월 KBS에서 방영된 "아웃집 찰스" 인도인 람아지편은 마음의 허기가 무엇인지 잘 말해준다. 그가 인도에서 한국으로 오게 된 사연은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운명처럼 이뤄졌다. 불가촉천민으로 살던 그가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누군가의 도움으로 캄캄한 선박용 컨테이너에 숨게 되었는데 도착지가 한국이었던 것이다. 어디로 그리고 무엇 때문에 가는지도 모르고 '절대로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말에 따라 숨죽이며 두려움과 배고픔을 견디다가 컨테이너가 열렸을 때의 당혹감이 어떠했을까 이방인의 의심스러운 시선들...... 당시 소년이었던 그는 거기서 또 도망쳐 갔다가 어느 집에서 맞이한 음식, 그게 그 소년마음의 허기로 남은 것이다. 그때 음식이 미역국이었다는데 그의 말대로 미역국은 그림자로 살다가 사람이 되게 해준 한국생활의 첫 음식이었고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눈물 젖은 음식이 되었던 것이다. 26년이 지나 방송에 비친 그의 모습은 한국인 보다 더 부지런하고 친절하고 밝았다. 나는 람아지의 삶을 보며 인도인은 게으르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콩나물돼지찌개와 미역국, 이 음식의 연결고리는 칼 라너가 말한 식사를 통한 일치에 닿아 있는 것 같다. 어떤 특정 음식을 찾는 것은 음식이 정체성을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미셀 자우너의 책『H마트에서 울다』의 첫머리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그녀는 식재료전문점을 찾아 엄마와의 기억을 돌아보며 음식이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주말이면 그곳에 가서 점심을 먹고 일주일 치 장을 보고 엄마의 음식을 재현하여 먹는다. 엄마를 잃고 남은 허기를 그렇게 채운다.


꽃은 피었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다.


그게 꽃의 허기라면 꽃의 허기는 벌과 나비가 꽃을 찾아주어야만 해결되는 허기이다. 그런 허기는 그렐린 호르몬이 작동하는 배고픔과는 다르다. 인생이 꽃이 피었다고 해도 마음의 허기는 있기 마련이다. 그게 어릴 적 눈물 젖은 음식과 관련이 있다면 더욱 간절해진다. 인생은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게 꽃을 피워도 허기가 있는 한 외롭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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