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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땅. 네팔을 향하여

10월 29일

by 오시리스 김일번
SNV10021.jpg 포카라 거리


부산 노포동에서 인천공항행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은 온통 어둠과 침묵뿐이었지만, 내 안은 끊임없이 출렁였다. 좌석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지만, 선잠도 들지 못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그 밤의 나는 이미 네팔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새벽 4시 30분, 인천공항에 도착해 대합실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얇은 점퍼 하나로는 공항 특유의 냉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사람들의 발소리, 안내방송, 카트가 구르는 소리까지 온 감각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이미 출발선에 가 있었다.


6시가 조금 못 되어 일행들이 나타났다. 우리 일행은 총 네 명이다. 나와 <북설지> 그리고 <날진> 선배와 <제임스> 형님이다. 오랜만의 재회지만, 반가운 기색도 없이 그저 짧은 눈인사만 나눴다. 처음 해외 트레킹을 함께 떠나는 동료에 대한 반가움은 원래 이렇게 표현하는 것인가.


출국신고서를 작성하며,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떠나는 기분이 조금씩 더해졌다. 공항은 단순히 비행기를 타는 곳이 아니라, 머물던 세계를 떠나 전혀 다른 시간으로 넘어가는 문턱 같은 곳이다. 그 문턱에 선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은 가벼워지고, 조금은 서성인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르는 순간, 마음속에 고여 있던 것들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구름 위로 올라서자, 이제부터는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차례였다. 창밖으로 드넓게 펼쳐진 구름바다는 마치 거대한 설원 같았다. 설렘과 두려움, 낯선 세계에 대한 경계와 동경이 뒤섞여 날개 끝에서 흔들렸다.


6시간 반의 비행 끝에, 카트만두 공항에 내렸다. 한국과는 3시간 15분의 시차가 있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는 순간, 공기가 달랐다. 약간은 매캐한 흙냄새, 어딘가에서 피우는 향냄새, 짙은 하늘빛. 그리고 네팔의 공기 중에는 먼지와 신비로움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입국장으로 향하는 걸음은 설렘과 약간의 불안이 뒤섞인 발걸음이었다. 비자 발급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앞으로 이어질 여정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25달러의 비자 수수료를 내고, 여권에 스탬프를 받는 순간, 네팔이라는 나라가 책이나 인터넷이 아닌, 내 삶의 일부로 들어왔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말로만 듣던 카오스가 그대로 펼쳐졌다. 어깨를 부딪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사람들, 서로 목소리를 높여 호객하는 택시 기사들, 목적지를 묻기도 전에 손을 내미는 짐꾼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멈춰 선 우리를 현지인 몇 명이 둘러쌌다.


그들은 우리의 배낭과 카고백을 순식간에 낚아채듯 메고는 앞장서 간다. 당혹스러웠지만, 뒤따라 걷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수하물 카운터 앞에서 짐을 내려놓고는 이내 손바닥을 펼쳤다. 1달러를 내밀자 고개를 가로젓는다. 2달러를 달란다. 어디서나 첫인상은 어색하고, 때론 불쾌하다. 하지만 이런 작은 실랑이조차 낯선 땅에서 겪는 의례 같은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달러 두 장을 건넸다.


공항세 169루피를 지불하고, 포카라행 예띠항공 국내선에 몸을 실었다.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는 낮은 소음을 내며 천천히 이륙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오래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기름 냄새 섞인 공기와 함께 스며들었다.


저 아래 흐르는 강과 논, 돌담을 두른 집들과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 이 모든 풍경이 한 편의 짧은 시처럼 마음에 들어왔다. 30분 남짓 비행 끝에 포카라에 도착했다. 네팔 제2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공항은 소박하고 한적했다. 해발 900미터의 도시지만, 공기는 청명하고 하늘은 더 가까웠다. 포카라라는 이름이 호수에서 유래했듯, 도시 자체가 자연과 맞닿아 있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한국인 식당 '산촌다람쥐'로 향했다. 마른 체구의 주인은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한국말이 들리는 식당 안은 작은 안도감으로 가득 찼다. 숙소는 단출했지만 깔끔했고, 창밖으로 보이는 포카라의 오후는 여행지 특유의 자유로움이 가득했다.


트레킹 퍼밋과 팀스 발급, 포터 섭외까지 산촌다람쥐님께 부탁했다. 운 좋게도 도착 당일 모든 준비를 마쳐, 다음 날 바로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었다. 네팔에서의 첫날밤.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불안이 뒤엉킨 채, 잠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안나푸르나로 가는 포카라의 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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