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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음 Sep 26. 2022

이제는 약간의 쓴 맛이 좋아졌다.

씁쓸한 맛에 대한 이해

예전에는 녹차를 왜 마시지는 몰랐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굳이 찾아먹지 않던 녹차에 갑작스럽게 빠졌다. 녹차에 빠진이유는 회식을 하고 마신 '말차라떼' 때문이었다. 술을 마시고 2차에서 마신 '말차라떼'가 너무 달달하면서도 약간의 쓴 맛이 깔끔하게 느껴졌달까.


녹차의 쌉쌀하고도 약간은 쓴듯한 맛이 순간을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순간 녹차에 빠지게 되었다. 하루 내 경험했던 쓴 맛 위에 달달함을 덮고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맛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를 먹고, 상황이 변하고, 주변 사람도 풍경도 변한다. 좋아하는 맛도 변해간다.


세세한 맛을 구분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말차', '녹차', '그린티'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말차라떼'가 가장 좋은 이유는 목넘김이 좋아서도, 씁씁한 맛의 입자가 곱게 느껴져서도 아니기에 '기분 좋았던 날의 기억이 들어있어서'라는 대답이 가장 맞을 것이다. 한 번 빠지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는 이번에는 '녹차'에 빠졌다.


아침에도 녹차를 마시고, 점심에도 그린티라떼를 마셨다. 언제부턴가 점심을 먹으면 소화가 항상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불편함에 소화가 안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오늘 내가 있었던 모든 곳에서 제 3자처럼 머물렀던 불편함이 내 안에 남았다. 그 씁쓸함위에 그린티라떼를 얹었다. 씁쓸함만 있던 공간에 약간의 달달함이 퍼졌다.


녹차는 불편했던 순간에 좋았던 기억을 끌고와서 버티고 싶지 않은 순간에 제 3자의 시선으로 버틸 수 있게 도와준다. 녹차의 쌉쌀함이 왜 이렇게 좋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먹지 않던 회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회와 어울리는 소주의 쌉쌀함을 틈틈히도 찾는 걸 보면 녹차의 쌉쌀함에 빠진 게 아니라 씁쓸한 맛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 맞겠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왔다. 온통 찬란한 초록색이었던 세상은 노란색으로 빨간색으로 물들고, 이내 갈색으로 변해 내 발 위로 떨어진다. 매일 아침 갈색으로 변해 떨어진 나뭇잎들이 점점 더 많이 쌓여가고,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나도 변해간다.


내가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건 '씁쓸한 맛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지만, 돌이켜보면 짧은 기간동안 많은 부분을 배우고 변해왔다. 씁쓸한 맛이 나는 하루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그런 사소한 하루를 누군가에게 '힘들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도, 기분 좋아하지는 일들만 나누기에도 아까운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것도 말이다.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이 싫어지고 좋아지던 쌉쌀함 위에 달달함을 입힌다. 나만의 색깔로 물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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