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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음 Sep 26. 2022

여름이 왔다는 것 : 초여름의 시작

여름, 성장의 계절



녹색 여름 니트를 좋아한다. 이 니트를 입으면 왠지 모르게 예뻐 보인달까. 이 니트와 어울리는 계절은 단연 여름이다. 녹색 니트를 꺼내 입고는 아침마다 걷던 작은 시골길로 향했다. 왼쪽으로는 황톳빛 땅 위로 고구마 잎이 점점 커지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섞여있는 여러 나무들 속에서 새가 지저귀고 있다.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일 차선 도로를 걷는 중에 여름이라는 걸 실감했다.     



내가 좋아하는 녹색 니트와 여름의 색과 온도. 이건 분명 여름이라는 뜻이다. 여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여름의 시작은 분명 설렐 만큼 청량하다. 그리고 할머니 집에서 맞이하는 여름은 더더욱 좋다. 푹푹 찌는 아스팔트의 아지랑이와 에어컨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과 소음이 아닌 나무가 만들어준 시원한 그늘 속에 있으니까. 햇빛은 뜨거워도 바람은 솔솔 불고 산으로부터 내려온 계곡물이 만든 도랑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시원한 소리를 낸다.



이 계절감과 사랑에 빠졌다. 사랑을 하면 티가 난다. 사소한 것을 사소한 것으로 넘길 수 있게 되고, 기다리는 시간이 좋아진다. 여자든 남자든 사랑한다는 눈빛과 사랑받는다는 눈빛이 그리 예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사랑에 빠진 그들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갑자기 실실 웃고 있는 사람을 보고 "너 연애해?"라고 물으면 대부분 어떻게 알았냐고 되묻는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받는다고 하던 사람이 똑같은 업무에도 점점 웃음을 짓고 있을 때 "너 연애해?"라고 물으면 똑같이 어떻게 알았냐고 되묻는다.



역시. 지나온 봄은 사랑의 계절이 맞았다. 내 주변 사람들을 다 사랑에 빠지게 했다. 물론 나도 사랑에 빠졌다. 실실 웃음이 나오니까. 지금 내가 사랑에 빠진 건, 이 '계절감'이다. 앞으로 마주할 계절들이 어떻게 다가올까 기대되어 웃음이 나온다. 온전히 이 계절에 집중했을 때 보다 나에게 다가온 계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랑으로 설레게 했던 봄을 지나 여름이 왔다. 이맘때 즈음에는 개구리와 귀뚜라미가 운다. 바람소리와 개구리의 우는 소리는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중 하나다.



오늘 낮은 무척이나 더웠다. 이런 날에는 꼭 땀을 흘리고 싶어진다. 땀을 흘리고 나서 샤워를 한 뒤,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으면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된다.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나는 또 행복하다고 느낀다. 땀을 흘린 뒤 맛보는 수박은 땀을 흘리지 않고 먹는 수박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 집이 아니기에 농사를 짓고 수확하며 땀을 흘릴 수는 없다. 밖에 나가 뛰지 않는 이상 땀을 흘릴 일은 없다.



더운 낮을 지나 시원해지던 저녁 공기가 밤이 되면 보다 차가워진다. 열대야가 있는 밤은 밤잠을 설치기 십상이지만 아직은 초여름이기에 밤이 되면 겉옷을 하나 걸친다. 겉옷을 입을 수 있는 밤이 머지않아 끝날 것이다. 낮에는 짧은 반팔을 입고 밤에는 겉옷을 하나 걸치고 있다면 여름을 느끼기에 환상적인 짧은 기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주한 초여름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밤에 한강에 가서 돗자리를 깔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치킨에 맥주를 마셔야겠다. 아니면 겉옷 하나를 입고 바닷가에 가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멍 때리는 것도 좋겠다. 시골에 가지 못해도 아주 짧은 시간을 활용해 초여름을 느낄 수 있는 건 의외로 많다. 약간 쌀쌀해지는 밤에 산책을 하는 것도, 밤공기를 느끼며 멍을 때리는 것도 초여름에 하기 좋은 추억이다.



머지않아 이 초여름을 제대로 만끽하러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초여름은 지나갈테니.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여름 : 성장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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