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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음 Sep 29. 2022

나의 영주, 나는 어른이 되었을까

여름, 성장의 계절




긴 기차 시간마저 일부러 택했던 이유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에 있는 순간은 내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며 글을 쓰는 게 참 좋았다. 글을 쓴다는 건 사라져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순간을 기록하는 일을 넘어서는 일이다. 앞을 바라보는 나의 한정된 시선이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옮겨지는 순간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감과 기쁨을 맛보게 되고 나는 그 해방감이 몹시도 좋았다.



해방감의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다. 나의 시선이 타인에게서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는 건 순식간의 일이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순간을 담고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서 여행을 간다. 여행을 갔던 매 순간 해방감을 맛보게 해줬던 곳은 ‘영주’였다.



이 반복되는 영주 여행은 ‘최태성’이라는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부석사를 보러 간다면 부석사의 배흘림기둥에 손을 얹기 전까지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다가 부석사의 배흘림기둥에 손을 얹고 뒤돌아보세요.” 단지 뒤를 돌아보기 위해 부석사로 가는 기차를 타게 되었다.



첫 영주 여행은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 함께 하는 스물두 살의 기차여행이었다. 나무의 새싹은 언제 자랐는지 모를만큼 푸르러지고 있었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나는 언니 집으로 향했다. 언니와 밤새도록 수다를 떨고 난 후 친구와 통화를 했다. 아침이 되면 각자 가까운 역에서 알아서 기차를 타는 것이 우리의 두 번째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다. 해가 뜨기도 전 첫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밝아오는 해를 기차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장면들과 함께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다운 처음 보는 강이 창문 밖으로 펼쳐졌다. 산과 강이 함께 어우러진 배경을 지나가는 게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그래, 그 예쁜 나이에 뭔들 예쁘지 않았을까.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도, 사진을 남기지도 않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뒤를 돌아보기 위해 영주까지 왕복 6시간의 기차를 탈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도 아름다웠던 영주 여행은 청춘 한 켠에 쌓여 추억 한 부분을 예쁘게 장식해주고 있다. 티 없이 맑아 그 하나가 뭐 그리 즐겁다고 깔깔대며 웃고 떠들었다. 배흘림기둥에 손을 얹고 뒤돌아보기 위해 여행을 오길 잘했다며 뿌듯해했다.



두 번째 찾은 영주는 직장인이 되고 나서였다. 이른 여름에 가장 시원한 옷을 꺼내들고 영주로 향했다. 이번에도 영주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뒤를 돌아보기 위해서' 이때 붙는 조건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여전할 예정이다. 배흘림기둥에 손을 얹기 전까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



배흘림기둥을 향해 또다시 뚜벅뚜벅 걸었다. 맑은 하늘의 여름이었다. 첫 발걸음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만이 낼 수 있는 싱그러움의 색으로 부석사가 물들어 있었다. 여름의 기운은 참 신기하다. 푸르게 자란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여름의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복잡했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풀어져 버린다, 그리고 드디어 배흘림기둥에 손을 대었고,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상했다. 스물두 살의 영주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가슴이 저릿한 게, 할 말은 있는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기분이었다.



영주를 이리도 좋아하게 될 줄은, 뒤를 돌아봤을 때 펼쳐지는 이 엄청난 비경을 이리도 사랑하게 될 줄 첫 번째 여행에는 몰랐었다. 아니면 나는 이미 다시 이곳을 찾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햇살이 따사로운 너무 예쁜 아침이었다. 내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 예뻐서 어떻게 하면 이곳을 더 만끽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가만히 서서 그 비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햇살은 또 어찌 그리 맑고 밝기만 한지 이래서 여행하는구나 싶었다. 또다시 뒤를 돌아볼 날을 기다리면서 부석사의 배흘림기둥에 댄 손을 떼었다. 티 없이 맑았던 나의 첫 번째 영주 여행과 따뜻했던 나의 두 번째 영주 여행은 항상 내게 괜찮다고 손을 내밀어 줬다. 이 경치와 함께라면, 뭐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여름 : 성장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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