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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음 Sep 29. 2022

한 발자국만 멀어져서

여름, 성장의 계절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도 한 발자국 떨어지고 나면 선명하게 보인다는 걸 알게 된다. 두 발자국 떨어지고 나면 조금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한참을 멀어지고 나면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 중요한 건 그렇게 멀어지는 방법을 찾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당장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막막한 게 당연하다.



그 막막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아주 단순한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떠나는 것’이다. 현실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지금의 상황에서 조금 ‘멀어지는 것’이다.



틈틈이 멀어지곤 했다. 시간이 많을 때는 일주일 동안 시골에 내려가 현실과 멀어지곤 했고, 발길 닿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가기도 했다. 어차피 지구는 둥그니까 집으로 돌아갈 길은 많았다. 도저히 답답함에 어쩔 줄 모르겠을 때는 집 앞을 서성거리며 계속 걸었다. 현실에서 조금 멀어질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걷다 보면 머릿속과 마음속이 분명 해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런 이유로 걷는 것도, 시골을 가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다. 시골에 일주일간 가 있을 거라는 말이 연락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라는 걸 나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알고 있다. 하나의 목표가 끝나고 다음 목표로 가기까지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나는 몰랐지만, 그들을 알고 있었고 나에게 들려주었다. 다음 발자국을 걷기 위해 나는 항상 멀어졌다는 걸.



주위를 돌아보면 한 발자국 뗄 방법을 알려주는 당신의 사람들이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놓칠 뿐이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조차 당신은 모르는 길을 잃은 상황이라면, 당신의 주변 사람들은 어쩌면 당신보다도 더 당신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한 사람이 당신의 모든 면을 볼 수는 없기에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당신의 모습을 퍼즐 맞추듯이 맞춰야 한다.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그 안에 당신에게 맞는 한 걸음을 떼는 방법이 있다. 한 발자국 멀어지는 당신만의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덕분에 한 발자국 떼고 나면 이제는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멀어지는 법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다음 목표를 그들이 정해줄 수는 없다. 당신의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건 온전히 당신이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에, 대체 내가 뭘 하면 되냐고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뭘 하면 되는지는 그들도 모른다.



그렇기에 멀어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면 더 이상 묻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한껏 멀어져야 한다. 명상을 하든, 올레길을 걷든, 여행을 가든, 당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지나간 이야기에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당신의 어렸을 때 모습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니 일단은 막막함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자.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멀어지는 방법을 얻어서 실행하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어서, 그래서 여행이 좋았다. 아무리 걷고, 아무리 셔터를 눌러도 피곤하지 않았다. 여행을 왜 가냐고 물으면 그저 ‘좋으니까’라 답했다. 사실 나도 왜 여행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히고 마음을 붕 뜨게 만드는지를 알지 못했기에 어린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여행이 늘어갈수록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여행은 나를 잊을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나를 벗어나 새로운 나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좋았고, 그 여행지마저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은 현실이다. 현실에는 어려운 것투성이다. 그럼에도 잘 살아내보기 위해 한참을 아등바등거렸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돼서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모나지 않고 둥글게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하라는 대로 하면 되고, 내 감정 조금 숨기면 되고, 걱정 안 하면 되는 데 그게 나에게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이곳을 떠나면 나는 더 이상 살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내가 아니었다. 기차에 몸을 싣는 순간 나는 어딘가에 붕 떠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이미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느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많은 풍경에 푹 빠져서 가만히 멈춰 서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노라면 귓가에 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철저한 이방인이 된 채 꿈을 꾸는 것처럼 그 장소에 녹아들었다.



처음 보는 풍경에 감동 받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위로받았다. 그래서 여행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그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위로받으러 온 곳이 아님에도 위로해주는 그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여름 : 성장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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