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성장의 계절
약간의 지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어떤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면 당연 빗소리라고 말할 테지만 비가 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비가 오는 걸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럴 때 가지고 있는 대안 중 하나는 '파도소리'다. 바다가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당장 떠나면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거센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다는 다양한 소리를 내고 그동안 담아 놓았던 이야기를 파도와 함께 꺼내 내 발 가까이에 놔둔다. 파도는 가까이 다가왔다가 이내 멀어지고, 다시 가까이에 다가왔다가 멀어지길 반복한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점점 더 멀어지고, 점점 더 가까워진다.
여러 가지 고민들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면 단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에 몸을 움직여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에 다다른다. 깨끗하고 맑은 바닷물은 동해바다만의 매력이고, 맑은 바닷물이 만들어내는 하얀 파도는 사람을 여유롭게 만들어 버린다.
흰 운동화와 흰 양말을 벗고 손에 든 채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을 폴짝대며 뛰다가 카메라를 꺼냈다. 삼각대를 꺼내 모래사장 위에 카메라를 세워 놓고는 타이머를 맞춘 채 빠르게 지나갈 찰나를 담아낸다. 아주 잠시면 사라질 찰나의 순간을 담고는 오래도록 꺼내본다.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보고 있자면 파도소리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인다. 바닷가에는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 투성이다. 혹은 그들의 소리만 내 귀에 들어왔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연인이든 가족이든 그들은 사랑에 푹 빠져서는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과 꼭 잡은 손을 아주 잠시 동안 놓고는 서로의 얼굴을 담는다. 미소 짓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기분이 회복된 것인지,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들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감정이 파도소리와 어우러지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잠시 동안 놓칠 것만 같은 감정을 사진에 담았다. 저 멀리 수평선에 카메라를 대고는 한참 동안이나 셔터를 눌렀다.
여름의 바다는 맑았고, 뜨거웠고, 잔잔했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여름 : 성장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