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성장의 계절
시골에 가지 않고 느끼는 여름의 계절감은 멀리 있지 않다. 그리고 이번에는 계절의 감정을 덜어내고 만나볼까 한다. 잔뜩 쌓아두었던 다양한 감정을 몽땅 출발점에 놔두고는 내가 본 계절의 명백한 사실 그 자체만을 볼 예정이다. 감정을 덜어내면 세상은 보다 쉬워진다. 실행과 결과 그 자체만 보면 사실 그대로를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어떤 거리를 걷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풍경과 색깔을 보며, 어떤 계절감에 머물렀는지 그 자체. 감정을 덜어내고도 충분히 계절감을 느낄 수 있을까.
중요한 건 감정을 내려놓는 일이다. 내가 가려는 장소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고, 어떤 타인을 우연히 보게 되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에 대한 기대감도 내려놓는다. 타인을 보며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감정은 때로는 무겁게 느껴져 나를 짓누르기도 한다.
멀리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평일, 그동안 계절감을 담아내러 떠나고 싶었지만 떠나기 망설여지던 곳 중에 하나를 정했다. 가고 싶었지만 망설이던 그곳은 정원사들이 아름답게 꾸며 놓은 정원이다. 매월 계절감을 잔뜩 담아놓고 사람을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 오늘의 계절감을 만나러.
초록으로 물든 호밀밭을 바라보고, 해바라기가 필 듯 말 듯한 정원을 가만히 바라본다.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을까.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게 꽤나 사실감이 없게 느껴진다. 지금 눈앞에 펼치지는 초록 빛깔이 믿기지 않을 만큼 눈이 부시다.
선선하게 불던 바람은 거세져 한 아이가 "엄마 바람이 태풍 같아"라고 소리친다. 내 앞으로 잔디가 바람과 함께 휘날린다. 내 머리에 붙은 잔디를 그가 떼주며 웃는다. 잔디를 떼주는 그를 보며 나도 따라 웃는다. 웃음 사이로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모든 풍경은 어느새 아름답게 바뀌어서 우산 없이 맞는 빗방울이 느리게 떨어진다.
그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빗속을 뛴다. 그를 바라보자 이 모든 상황에 웃음이 나오고야 만다. 결국 나는 또 이 계절에 감정을 담는다. 웃음을 담아내고, 사랑을 담아내고, 기분 좋은 날의 감정과 색깔을 담아내고야 만다. 장마가 시작된, 여름이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힘이 있다는 건 아주아주 기쁜 일이야.
새롭게 시작할 무언가를 응원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아주아주 신나는 일이야.
서툴러서 넘어지고, 조급해서 아등바등거려도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로 신이 나서 온종일 설렘으로 가득 찬 하루가 시작돼.
아직 살아있어. 두 다리로 세상을 걷고,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도 있어.
나는 아직 살아있고, 세상을 아주 아름답게 살아갈 힘이 있어.
시작하면 돼. 천천히 차근차근 걸어가면 돼.
아주 찬란하고 아름다운 오늘을, 더 예쁘고 찬란하게 만들어 가면 돼.
주위를 조금만 돌리면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다워.
때로는 이상한 순간과 이상한 사람들이 있긴 해.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하고 초조해지기도 해.
잠깐이야. 아주 잠깐이야.
비 온 뒤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 땅을 물기를 머금고, 새싹을 틔워내.
물방울이 맺힌 나뭇잎은 어찌나 고요하고, 따뜻한 햇살은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힘을 조금만 빼고, 허리는 펴고, 아주 예쁘고 아름답게 이 세상 걸어볼까.
걷고 싶은 길로, 그저 마음이 끌리는 길로.
결국 찾아내고 말 거야. 네가 원하던 장면.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여름 : 성장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