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회복의 계절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밤은 지난날을 돌아보기 좋은 시간을 선물한다. 돌아보면 가을이 물들어가는 것처럼 인생이 물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을은 한 해를 돌아보는 계절이 찾아왔다는 걸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한 해를 정리하고 한 해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자신만의 색깔이 무엇인지 결론지어야만 한다. 아쉬움에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도 정리를 해야만 할 때다.
세상의 나무들은 가을이 찾아왔다는 걸 제일 먼저 깨닫는다. 봄에는 파릇함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푸른 새싹들을 내놓고, 여름에는 한결같이 초록색이 깊어지더니 가을이 되면 각자만의 색깔과 모양을 찾아간다. 더욱 푸르게 물들어 버리거나, 노랗게, 빨갛게 물든다. 봄에 심어놓았던 농작물들 또한 제 모습을 낸다. 검은콩, 고구마, 알밤, 호두 모두 제각각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각자만의 속도로 서서히 익어가는 건 비단 식물뿐만이 아니다.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또한 가을이 오면 나무가 깊어진 것처럼 깊어진다. 한 해를 돌아보기 가장 좋은 계절이 단연 가을인 이유는 제 모습들을 찾아가고 있는 식물을 보면서 스스로 올 해는 어떤 수확을 거둘 수 있는지 되묻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를 내놓을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올해 의미 있게 남길 수 있는 게 뭔지 되묻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깊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지난날을 되묻는 과정 속에서 인생 또한 깊어졌다는 걸 발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라는 건 없기에 되묻다 보면 한 해가 정리된다. 더 많이 남길 수도, 더 적게 남길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라도 남길 수밖에 없다.
불안한 하루가 얼마큼 많았는지 알 수 없지만 잠시 쉬며 인생을 돌아봐야 할 때다. 인생이 깊어진다. 가을이 물드는 것처럼 인생도 물들기 시작한다. 겨울과 봄, 여름을 보냈냐에 따라 인생의 색깔도 깊이도 달아지겠지만 분명 깊어진 어느 가을날에 문득 당신만의 색깔을 찾게 될 것이다. 어떤 색깔일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결국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물든다. 아주 예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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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답을 달라고 난리를 치다가 알게 되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이었고, 그 과정이 답 그 자체였음을.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가을 : 회복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