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하게 살아왔다는 것
가을, 회복의 계절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숨기려 하지 않아도 여유로움이 흘러나온다. 당황스러울 수 있는 상황마저도 여유롭게 대처한다. 아니, 당황할 일이 별로 없었던 걸까.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여유로움이 뭘까 한참을 생각해오다가 그게 살아오면서 '해결되지 않은 과제' 경험하지 않은 덕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해결하기 쉽지 않은 다양한 과제가 주어지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다.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점점 '여유로움'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해결을 하면 자신감을 얻고 추진력을 얻는다.
주어진 과제가 없었다던가 혹은 주어진 과제를 아주 말끔히 해결한 경우 '여유로움'은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여러 가지 태도나 표정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티를 내지 않아도 순탄하게 살아온 느낌이 든다. '여유로운' 말투와 표정 그리고 행동. 하지만 그들의 차이는 대화를 해보면 분명해진다.
'공감의 크기'
과제 자체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민을 쉽게 헤아리지 못한다. 얼마나 열심히 과제를 수행해나가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굳이'라는 시선을 담아낸다. 하지만 과제를 극복해내면서 쌓인 '여유로움'을 가진 사람은 '공감'을 담아낸다. 다양하게 마주한 과정에 대한 결과가 반복되며 누적된 공감의 크기는 차곡차곡 쌓여 큰 차이를 느끼게 만든다.
이상하게도 결이 맞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과제도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들과 결이 달라도 한참은 달랐다.
그렇다고 나에게 고난이 있었냐고 물으면, 사실 작은 몇 개의 고난과 마주했을 뿐이라고밖에 말하지 못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나는 여러 가지 경험을 마주하고 그 경험을 이겨냈던 사람들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들은 뛰어난 공감을 가졌고,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삶에 이해를 보냈으며, 그들의 걱정과 고민을 '굳이'라는 시선을 내포한 채 바라보지 않았다.
순탄하게 살아왔든 순탄하게 살아오지 않았든 간에 내가 '굳이'라는 시선을 담아내는 사람은 아니라는 게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의 '굳이'라는 시선을 받은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이 다르다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거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다를 뿐이니까.
아무런 과제도 걱정도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그들보다 여러 과제를 헤쳐나가고 있는 당신이 부족한 건 없다는 걸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과제를 해결했건 해결하지 못했건 결국 해결하면 될 일이고, 해결하고 나면 당신은 '공감'을 하는 '여유로움'을 머금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 결국 해내면 여유로운 사람이 된다는 아주 간단한 이치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이 결국 해낼 거라는 것도 안다. 나의 '그들'은 꼭 행복한 이야기를 들고 와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니까.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든, 가지고 싶은 걸 스스럼없이 다 사는 사람이든, 원하는 건 거의 다 이뤘다고 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들의 인생에 깊이 들어가 보면 한 걸음 떼는 것조차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안아주고 싶을 만큼 대견스럽게 느껴진 적이 많았다. '그들'의 인생은 결코 쉬웠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인생은 항상 멋있게 끝나곤 한다. 어떤 상황에 있건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많은 순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은 '그들'로 또 가끔은 '타인'으로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에 '나'라는 존재 또한 신기할 정도로 타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는 타인의 세상은 너무나 당차고 대견하고 아름다워서 내가 우연히 마주한 하루를 응원해주고 싶게 만든다.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건 말이다.
오늘 하루가 또 저문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된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가 저물었음에도 하루를 끝내지 못한다. 내일 또다시 갈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할 테니까 오늘의 순간들이 무의미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한 기억을 쌓아가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가을 : 회복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