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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만주 Dec 19. 2022

'에이취!' 아내가 걸려버렸네

우울증의 두드림



  아내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진료를 위한 질문지에  얼마의 망설임 후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에 체크하였다. 증상이 심한 상태였다.


  아내 우울증의 직접적인 원인은‘상실감’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올해 여름 우연히 자궁근종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평소 운동을 챙기지 않던 그가 수술 후, 운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건강에 부쩍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그런데 아내는 언제부턴가 무기력감이 찾아오는 하강 곡선의 빈도가 잦고 그 정도가 심해짐을 토로하였다. 그때마다 의욕감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쏟는데 힘이 들고 괴롭기까지 하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 정도로 생각하며 우울감에 대해 서로 터놓고 얘기를 해왔다. 그러나 막상 그가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나니 당혹감이 들었다. 대화는 많았지만 그리 심각한 상태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는 바빴다. 아내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는 교대 근무 직장인이다. 바깥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최소한 쉼을 하고, 필요한 집안 물품과 먹거리 준비에 대해 미리 머릿속에 목록 해 둔 것을 각개 격파하였다. 그는 가족들을 위해 종종걸음을 놓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같은 직업으로 둘 다 교대 근무를 선택해서 낮 시간에는  한 사람이 집에 남아 발달 장애인 1호의 돌봄 역할을 해야 한다. 이 것은 누군가 쉬는 날이면 1호와 함께 움직이며 반나절을 보내야 한다는 말과 같다.


   1호는 학교를 마치고 오후 시간에 언어, 인지 등 발달센터를 다닌다. 아직 보호자 상담이 뒤따르는 발달 치료센터에 오가며 보내는 시간과 아이 신체 운동을 위해 신경 쓰다 보면 그야말로 반나절을 ‘잡혀’ 보낸다.

   부족한 자식을 위한 시간인 줄은 알고 있지만, 1호의 그림자 역할을 하고 집에 돌아올 때 즈음이면 지쳐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나’를 잃어버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발달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기본적인 우울감이 높다는 연구가 있다.  장애인 활동 보조인 제도가 있지만 부모가 직접 자녀를 챙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온종일 집에서 발달 장애인인 자녀를 돌보느라 자신의 사회관계와‘나’를 돌보는데 소홀해 지기 십상이다. 쉬는 날 ‘나’를 위해 온전히 쓰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도량형’이 책 보는 시간이라면 ‘5장’ 정도였다.


  그러나 아내 마음의 여유는 책 5장 정도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집안일과 아이들 돌봄을 한다고 하지만(자의적 평가가 아닌 그녀도 인정해 주는 가사 노동의 정도로) 아내는 여자였고 더 섬세했다. 분명 나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챙기고 있던 ‘5장’의 여유 시간에 아내는 그 자신보다 남을 위한 시간으로 틈틈이 시간을 메운다.

아내는 집안일만 하면 우울해진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는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우울증이 언제 와도 와도 이상스럽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1호와의 동행에서  ‘나’를 찾고 회복하려고 분투했다. 분명 내 의지로만 이루고 있다 할 자신을 할 수 없다. 아내는 그런 내 뒤에서 나와 두 아들을 위해 자기 시간을 헌납하면서 점점‘그’를 잃어버리고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나는 마음의 감기 면역력을 지켜가고 있으니, 이제 아내에게 ‘그’를 위한 돌봄의 시간을 더 줘야 할 때다. 아내의 우울증으로 우리 가족은 지금 비상상황이다.  

  “여보, 지금은 당신이 아프니 내가 더 많이 움직일게. 언젠가 내 차례가 된다면 그때는 당신한테 조금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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