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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Nov 21. 2022

베트남에서 돈 주으면 귀신도 줍는다?

베트남의 샤머니즘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악! 돈이 나를 따라다닌다. 이거 로또라도 사야 하는 게 아닐까. 지르밟는 걸음걸음마다 돈이 팔랑팔랑 손짓을 한다.


이건 신의 축복인가. 악마의 함정인가.

하루는 아이들과 테니스 수업을 가던 오후였다. 열심히 걷는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갈 때마다 500 동짜리 지폐가 있는 게 아닌가. 처음 두세 장은 그저 지나쳤다. 그때까지는 내 안에 도덕성이 굳건했다. 하지만 내딛는 걸음마다 계속 나타나자.. 슬슬 양심에 도전이 일기 시작했다. 네 장, 다섯 장, 여섯… 데스티니, 이건 운명이다. 아이들도 돈을 보자 깡충깡충 뛰며 즐거워했다. 심지어 본 적도 없는 500 동이라니! 한화로는 약 25 원이다. 적은 액수니 주워도 공안도 잡지 않을 거란 악마의 속삭임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결국 걸음을 멈춘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둑훈 둑훈 가슴이 뛰었다. 허리를 굽혀 재빠르게 내 것을 줍는 척, 발연기를 시연하며 손을 촥 뻗는다. 역시,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 그 길로 나오는 지폐는 모두 모으기 시작했다. 100 배의 벌금이 붙는다고 해도 2500 원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말이다. 용기 있는 자가 기회를 잡는 거야! 희귀한 화폐인 만큼 ‘리셀’의 가능성도 떠올랐다. 양심과는 세이 굿바이~한 지는 이미 오래다. 사라진 화폐가 수 천 배의 가치로 경매를 통해 거래되는 뉴스도 머리를 스쳤으니..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다. 지폐를 주섬주섬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500 동과 함께 뭘 달고 왔을지도 모르고 신나 했다.

가게마다 보이는 재단들.

돈을 주웠더니.. 귀.. 귀신이 붙는다고?


다음 날, 베트남 친구 H가 놀러 왔다. 기세 등등 자랑을 하려 전날의 일화를 영웅담처럼 이야기했다. 화폐를 꺼내 직접 보여주며 말이다. 그러자, 아연 질색하며 빛의 속도로 뺏아가는 H! 그리고 쓰레기통에 그대로 덩크슛! 모든 지폐를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너무 빠른 그녀의 액션에 질문할 틈도 없이 멍하게 서있었다. 알고 보니, 그 500동은 고인을 위한 돈이었다. 장례식의 과정으로 길에 가짜 돈이나 작은 돈을 뿌린다나. 결국 이건 럭키 머니가 아닌 망자의 종잣돈이었다. 돈에 귀신이 따라붙는다고 여겨 베트남 사람들은 만지지도 줍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뭐… 귀.. 귀신? 지금 나 떨고 있니? 흔들리는 눈동자를 알아챈 H는 미소를 띠며 ‘찌 민’(chị MIN)은 외국인이라 괜찮다며 크게 웃었다. 그 대답이 최선입니꺄? 어쩐지 어제 아이들과 ‘꺄아 꺄아’ 소란을 우며 돈을 따라다니자 지나가던 베트남 할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길 건너편에서 뒷짐 지고 지켜보던 눈빛이 의미심장하더라니… ‘고스트’라는 단어가 이렇게 울림이 큰 단어였던가. 링, 주온에서 전설의 고향까지.. 그동안 본 귀신 영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호탕하게 웃는 친구와는 달리 쫄보인 나는 온몸이 굳었다. 리셀을 꿈꾸며 야무지게 돈을 줍던 패기는 어디로 가고 쪼그라든 심장과 바짝 곤두선 닭살을 겨우 진정시켰다.

사회주의 베트남에 샤머니즘이라굽쇼? 


하노이로 오기 전, 베트 남하면 떠오르는 탑 3! 바로 잘못한 게 없어도 스치기만 해도 겁이 나는 ‘꽁안’, 아오자이를 탄 오토바이족들 그리고 CCTV 없이도 치안이 좋은 ‘사회주의’만 떠올렸다. 하지만 사회주의에 샤머니즘요? 마치 짜장면에 파마산 치즈 뿌 듯 매치가 되지 않았다.

사실 하노이에 처음 왔을 때, 가장 신기한 광경 제단이었다. 아무리 모던한 레지던스나 카페에도 제단은 빠지지 않는다. 작은 나무 테이블 그리고 화사한 꽃, 각종 과자와 과일이 환한 불을 받아 빛난다. 하루는 레지던스 로비의 정중앙에 위치한 제단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걸 본 이웃집 내니 H는 곧바로 나를 제지했다. 그녀는 제단은 사업장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장은 부를 상징하는 다섯 신을 그리고 가정은 조상신을 위한 것이라며 함부로 할 대상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 신성시 할 제단을 무슨 크리스마스 트리보듯 했으니 그녀로서는 얼마나 조마조마 했겠나.

번쩍번쩍 백화점도 좋지만 고소한 떡 냄새가 솔솔 나는 재래시장도 사랑하는 민언냐! 고딩시절부터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야간자율학습을 등지고 꿀떡찾아 시장을으로 향하던 '시장 러버'다. 이런 취향은 사십이 넘고 베트남까지도 고대로 유지 중이다. 사람은 갑자기 변하면 큰일 나잖아요~ 하지만 베트남은 우리가 아는 장날과는 분주함의 결이 다르다. 평일 같지만 명절의 냄새가 난달까. 한국은 더 많은 살거리, 구경거리가 더해지는 정도라면 베트남은 온 동네가 오토바이 행렬로 꽉 찰 정도로 인파가 집중된다. 매달 음력 1일, 15일이 ‘성일’이기 때문이다. 성일은 조상신들이 기도를 들어주는 중대한 날이다. 그리고 제상에 올릴 물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도 힘든데 한 달에 두 번이라니! 베트남 신들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는군요.

특히 하노이에는 대표적인 절이 네 군데가 있다. 바딘, 동다, 꺼우저이 그리고 우리 동네 호떠이에 있다. 절도 좋고 시장도 좋다. 하지만 도저히 환영할 수 없는 불청객도 있다. 한 달에 두 번은 퇴근길이 지옥 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아무리 방랑객 기질 다분한 나도 이날만큼은 길을 나서지 않는다. 도보로 이동하고 산책으로 하루를 보내는 편이다. 심지어 차로 10분이면 가는 테니스장도 이날은 포기해야 한다. 10분 거리면 막혀봐야 30분이라고? 노옵! 교통 체증은 상상초월이다. 자칫 1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거기에 귀갓길이 지옥행 급행열차가 되는 건 덤이다. 사방팔방에서 울리는 경적소리와 치이지 않으면 다행인 진격의 오토바이들을 보면 심장이 지구 내핵까지 번지점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체가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앞으로 가는지 뒤로 밀리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아수라’는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드래곤 볼의 도사님을 떠올리는 건 나뿐인가.

일본인 친구 M과 시장에 들어서자 많은 상인들과 도사님(?)들의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내 베트남어를 하지 않는 걸 알아챈다. 외국인이라는 정체가 탄로 나자 뜨겁던 관심은 순식간에 영하로 식어버렸지만 말이다. 격렬한 호객 행위의 대상에서 제외되니 왠지 섭섭한걸.. 이건 나쁜 남자와의 연애를 즐기는 변태적 심리일까.


베트남에서는 점을 보는 것도 선택이 아닌 필수다. 특히 결혼, 이사, 부동산 거래 등의 대소사 자문을 구하는 건 물론 길일도 점꾀로 정한다. 특히 길을 가다 보면 성대한 꽃 장식의 간이식당이 눈에 띈다. 평일에도 종종 보이는 파티는 바로 결혼식이다. 주말을 선호하는 한국과 달리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성대한 결혼식이 몇 시간 동안 열리는 것이다. 점꾀의 파워는 실로 대단하지 말입니다. 반면 기억하기 좋으라고 숫자 2를 쏟아 2월 22일 2시 일요일로 식장을 잡은 우리 부부! 단순 무모한 이야기를 베트남 친구 A에게 했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에게는 컬처쇼크였을 테니 말이다.

그 가운, 제게 파시겠습니까?


손금, 관상 등 종목도 다양하다. 손님을 기다리던 도사님들도 지겹긴 마찬가지인가 보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음악을 감상하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차 한 잔 호호 불며 곰방대에 주문이라도 외우기를 기대했던 걸까? 너무 모던해서 실망감과 함께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다. 자전거보다는 손오공이 타는 근두운을 탈 것 같지만 날렵한 몸짓으로 한손으로 자전거를 잡고 빠르게 지나간다. 파란 청바지에 베이지색 운동화를 맞춰입은 그에게서 패션 센스가 느껴진다. 게다가 골드와 레드의 완벽한 하모니, 여유있게 떨어지는 실루엣의 가운은 어떻고? 툭하고 걸친 레드 가운은 신의 한 수다. 옷자락을 휘날리며 가는 모습에 반한 나와 M은 180도 고개를 꺾으며 한참을 쳐다봤다. 그 가운, 어디 가면 살 수 있죠? 오늘의 베스트 드레서를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시크하기로 파리지엔 못지않은 그라면 나의 운명을 점쳐봐도 좋을 것 같다.

기도를 올리는 이들은 저마다 예쁜 꽃을 올린다. 그래서일까. 시장이 끝나는 길목에서 버려지는 꽃들도 수북하게 쌓여있다. 버려지기엔 아직 싱싱한 꽃인데 말이다.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며 연신 아쉬워했다. 알고 보니 제사에도 몇 가지 규칙도 있었다. ‘세상 단맛 없이 무슨 재미’를 외치는 나의 취향은 신에게도 통하나 보오! 단맛을 좋아하기에 보기만 해도 식도가 녹을 듯한 설탕 담뿍, 과자들을 올린다고 한다. 꽃은 조화도 시든 꽃도 금기시되고 말이다. 이제야 꽃이버려지는 비밀이 풀렸다. M과 나는 꽃을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며 속닥거렸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수거 중이었다. 청소부 복장의 그녀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장미꽃 봉오리만 따고 있었다. 설마, 저게 어제 마신 로즈 티는 아니겠지.

‘미안하다, 지구야! 신로이 Xin lỗi, trái đất!’


중국과 인접한 베트남은 중국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래서 불교적 색채가 강한데 불교 못지않게 무속신앙도 생활 속 깊이 뿌리 박혀 있다. 특히 사후세계를 향한 믿음을 빼놓을 수 없다. 제사 문화가 오래 유지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다. 베트남에서는 종종 하늘을 향해 용트림하는 검은 연기를 자주 볼 수가 있다.  하늘 좀 좋은 날에는 어김없이 치솟는 정체불명의 스모그! 처음에는 쓰레기를 태우는 줄 알았다. 속으로 지구를 향한 사죄 번! 재활용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연기에는 다른 의미가 있단 걸 나중에 알았다. 물론 쓰레기 소각지만 장례식도 소각을 한다. 종이돈과 종이 모형을 태우는 것이다. 모형은 죽은 이들을 위해 작게 만든 것으로 돈, 옷, 말, 오토바이 심지어 비행기까지 있다고 한다. 특히 자동차는 포**, 람보***를 만들어 태우기도 한다.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에 깜짝 놀란다. 저 세상에서라도 꿈에 그리던 드림카를 선사하는 걸까. 분명한 건 자본주의의 스멜이 진하게 풍긴다는 거다.

같은 아시아이지만 베트남은 낯선 부분이 많다. 특히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과 제사 문화가 그 예다. 일평생 그 흔한 ‘사주’도 무속인도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한 나는 이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향한 태도도 달라졌다. 매연으로 덮이는 대기오염을 걱정했던 나는 이제 연기를 보면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누군가가 기도를 하고 있구나.’하고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잠시 서서 곰곰이 보게 된다. 물론 여전히 공기질 악화를 염려하는 논 샤머니즘의 민언냐가 더 강하다는 건 안 비밀! 단, 떨어진 돈만큼은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기로 한다. 부가 아니라 귀신이 따라붙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약소 옥~(자본주의에 굴복한 내게 돌을 던질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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