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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Feb 03. 2023

깡충 말고 야옹, 베트남은 지금 고양이 띠!

베트남의 특별한 십이지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어!


2023 숫자와 함께 밝은 광채를 뿜으며 존재감을 발휘하는 너! 거기 누구냐!

미야우~ 야옹~


강렬한 살인미소의 녀석은 2023의 센터 숫자 ‘0’을 꿀꺽 삼키고 앉아있다. 자네, 아이 메이크업이 투머치가 아니신가. 갑분 대형 고양이에 뒷걸음치는 건 나뿐인가. 무.. 무서워! 심상치 않은 비주얼의 고양이는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곳곳에 놓여있었다. 선글라스라도 끼워주고 싶은 부담스러운 시선에 뒤통수가 뜨끈해진다. 토끼는 온데간데없고 고양이만 눈에 띈다.

지구에서 이렇게 막 노는 초딩과 예비 중딩? 없기? 공부가 먼가요? 먹는 건가요? 뒤태부터 잔뜩 신이 난 쩡이, 쭌이를 보라. 왠지 모르게 심술이 나는 엄마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란 건 이런 걸까. 학업에 한창 열을 올려야 할 아이들의 여행은 새해에도 계속된다. 방학을 맞이해 교토, 싱가포르 그리고 말레이시아까지! 아시아 콘서트 투어입니꺄? 얼마 전 방콕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블랙핑크가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인가. 덕분에 각 공항의 성대한 새해 데코레이션도 보게 되었다. 쩡이는 최애 동물인 토끼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공항을 마주하며 싱거운 미소도 지어 보인다. 하지만 단 한 곳을 빼고 말이다.


바로 베트남! 토끼가 앉아야 할 자리에 고양이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고양이 띠가 돌아왔다.

지금은 토끼의 해? Không! No! イイエ! Non! 고양이의 해!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에서 토끼의 해를 맞이하여 버니모양의 머그 컵, 쿠키 등 각종 장식품이 앞다투어 출시되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긴 꼬리를 돌돌 감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고아한 보디라인의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귀엽고 통통한 키티 비주얼까지 모습도 다양하다.

쩡이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 토끼 장식품! 결국 사고야 말았다.
교토의 츠타야 서점과 스타벅스의 토끼 해 기념 굿즈

베트남의 십이지에서 두 동물에 눈이 간다. 바로 고양이와 버펄로다. 각각 토끼와 소를 대신한다. 하지만 버펄로와 소는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오징어와 주꾸미, 올빼미와 부엉이처럼 먼 친척정도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토끼와 고양이라고? 버니에서 키티라 굽쇼? 이건 블랙 팬서와 해리포터 사이의 급변이다. 간극이 너무 커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 신선한 조합은 어디서 유래된 걸까.

베트남 에어라인 매거진

고양이 해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에서도 세 가지로 추려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사회적 특성에서 찾아볼 수 있.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농경업이 발달해 광활한 곡식 생산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농경문화에 기인한 전통, 생활관습이 강하게 남아있다. 특히 농부들에게 곡식 보관과 수확은 대업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힘들게 수확한 곡식을 탐하는 오랜 숙적이 있었으니 바로 ‘chuột(쮸옷)’ 쥐다. 작은 덩치의 쥐가 쌀을 몇 톨이나 축내겠냐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자. 베트남을 한 번이라도 와본 이들은 안다. 충격적인 쥐의 스케일을 말이다. 귀여운 리본을 목에 건 ‘찍찍’ 거리는 미키 마우스와는 비교불가! 한국에 닭둘기가 있다면 베트남에는 슈퍼헤비급 쥐가 있다. 꼬리 또한 성인의 손 한 뼘 길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쌀을 축 냈을지 상상이 가지 않나. 쥐는 결코 얕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런 불청객을 무찌르는 일등공신은 뭐다? 바로 고양이 되시겠다. 하여 십이지까지 자리를 공고히 하며 오랜 세월 함께 할 동물로 자리매김했다는 설이다.

스페인 친구B와 프렌치 P로부터 날아든 신년 메시지.

또 다른 유래는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과 베트남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큼 문화적 영향도 많이 받고 서로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리고 중국어에서 토끼를 지칭하는 단어인 ‘mao’가 국경을 넘어오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변형되다 결국 ‘mèo(베트남어로 고양이)’로 굳어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호프’(생맥주 술집인 호프 집) 또한 독일어인 ‘hof’(안마당)에서 왔듯 국경과 세월에 따라 언어가 변형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가장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다. 베트남 사람들은 ‘쥐’와 ‘토끼’를 비슷한 동물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두 번 반복되는 걸 지겹다고 생각하여 바꿨을 가능성이다. 동류의 동물이 두 번 등장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재밌는 설이다. 그러고 보면 쥐와 토끼, 모두 쫑긋한 두 귀를 가지긴 했다.


가히 십이지는 영물의 대표 주자로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도 특별히 간택된 동물이다. 많은 사랑을 받는 동경의 대상이니 애니멀계의 아이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거기에 고양이가 당당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여전히 고양이 띠의 유래에 대한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뒷받침하는 명확한 문서나 자료는 없다. 하지만 고양이에 진심인 나라인 건 틀림없다. 특히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에 향한 긍정적인 이미지도 빠뜨릴 수 없다. 활동적인 성향에 업무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친화력이 좋아 주위 사람들과도 잘 지낸다. 한마디로 매력적인 인싸라고 볼 수 있다. 내추럴본 아싸로서 고양이띠를 훔치고 싶을 정도다.  

아침 산책길, 우연히 검은 고양이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 느릿느릿 세상을 혼자 사는 듯한 여유로움을 보이던 녀석이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검은 고양이를 아주 불길한 존재로 여겼다지. 마녀나 악마와 연결된 동물이라며 말이다. 베트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이니 그저 블랙 캣을 만나 반가워만 하기로 했다.

고양이만 테마로 한 엽서 세트를 사고 만 1인.


피. 에스. 2023년 베트남은 '캐츠 피버'로 가득하다. 고양이 러버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소식인 셈이다. 여행을 온다면 쏟아지는 굿즈들과 대형 동상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기쁨을 누리자.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선호하는 1인으로 최애 카페( Cafe RAAW)에서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향한, 고양이를 위한 엽서 세트도 한 꾸러미 샀다.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한 매력적인 고양이처럼 올해도 멋지게 살아내 보자고 남몰래 다짐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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