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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Nov 16. 2021

지극히 사적인 국제 학교 교육법

3S에 흔들리지 말자!             일러스트 by 하노이 민언냐

내게는 지극히 개인적인 육아 신념이 있다.  '노 스코어, 노 상, 노 세트' 다시 말해 3S 금지법이다. 스코어, 상 그리고 세컨더리가 된 쭌이가 세트(레벨을 쭌이 영국 국제 학교에서는 세트로 부른다) 별로 배정된 수업을 향한 자세다. 하지만 이 3S ‘스코어, 상, 세트’에 연연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을 해놓고도 흔들릴 때가 있다.


“흐어엉! 왜 나는 안되는데?”


쩡이는 울어버렸다. 울음을 참는가 싶더니 이내 싱크대를 잡고 망연자실한 듯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쭌이가 상을 두 과목이나 받아 오니 실망을 한 모양이었다. 쭌이가 상을 탄 것은 분명 기쁘고 축하할 일인데 쩡이가 울기 시작한다.


특히 이런 순간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신념은 온대 간데없고 한없이 휘청대기만 하는 엄마다.


국제 학교의 프라이머리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최고의 학생을 한 명씩 뽑아 상을 준다. 이름도 찬란한 ‘Star of the Week’가 바로 그 상이 되시겠다. 하지만 장기화된 온라인으로 세컨더리에서도 금요일마다 각 과목의 선생님들이 베스트 학생을 뽑아 상을 주게 된 것이다. 온라인 수업에 지친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자 하는 학교의 노력 이리라. 쭌이는 받기 힘든 수학과 영어를 받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쭌이가 이렇게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후다닥    


“쭌이, 책상 밑에 뭐야?”

“어?”

“폰 아니가? 게임했나?”

“아니, 그냥 메시지만 봤다. 진짜다.”

“내놔라.”

“오늘 처음으로 한 거다.”

“알겠으니깐 내놓으라고.”    


믿는 쭌에게 발등 찍힌다는 게 이런 거지.    

 

그날은 세컨더리로 올라가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지 3주가 되는 날이었다. 평소와 달리 노크하는 것을 깜박하고 쭌이의 방문을 열었다. 한인 타운의 정육점에서 주문한 고기가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급히 로비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덜컹’ 방문을 열자 쭌이는 당황을 하며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스마트폰임을 짐작하고 물었더니 역시 그랬다. 쭌인 말을 더듬으며 이번이 처음이며 메시지만 본 거라고 했다. 손을 쓱 폰 위에 갖다 대어 본다. 적어도 1시간은 사용했을 때 나는 열감이었다. 수업 중에 푸닥거리를 할 수는 없으니 일단 폰을 뺏어서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쭌이는 알아주는 모범생이었다. 부산에 있을 때도 많은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고 모범상은 물론 각종 상을 휩쓸던 녀석이었다. 하노이의 국제 학교에 와서도 상을 바로 받는 기염을 토했다. 친구들과의 트러블도 없었고 부족한 영어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잘 적응해 주었다. 수줍음 많은 쩡이라면 몰라도 쭌이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다. 14년의 강사 생활 경험을 비추어 보아도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컨더리로 올라가면서 쭌이는 수업에 대한 열의를 잃었던 것 같다. 프라이머리와 시스템이 달라진 것은 물론 각종 액티비티로 짜여 있던 예전과는 달라도 아주 다른 아카데믹한 방식의 수업이었다. 거기에 레벨 별로 ‘세트’라는 명칭으로 수학, 과학, 영어 등의 주요 과목들이 분반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폰을 빼앗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놀러 온 클로에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띵동’    

클로에와 마농이 놀러 오기로 되어 있었다. 수업을 모두 마친 3시 반에 초인종이 울렸다. 클로에는 세컨더리가 되면서 쭌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물론 수학 등 묘하게 엇갈리게 분반이 되어 우린 쭌이가 아래 반으로 밀렸구나 했다. 클로에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우등생이기 때문이다.  

   

“쭌이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폰 뺏겼다.”    

“왜?”    


갑작스러운 쩡이의 폭탄 발언이 시발점이었다. 쭌이는 분노의 눈길로 쩡이를 노려보았다. 그런 쭌이의 시선에 쩡이는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희는 허물없는 찐 남매로구나. 쩡이와 동갑인 마농은 이 이야기를 듣고 “왜?”를 반복하며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소파에 기대 있던 클로에는 특유의 무심한 얼굴로 이미 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엌에서 아이들의 간식을 위해 사과를 깎던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클로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들었다.    


“난 알아. 쭌이 수업 내내 얼굴은 안 보이고 정수리만 보이더라. 그게 무슨 얘기겠어? 바로 책상 밑에 폰을 숨기고 있던 거지, 아냐?”    


이 무슨 소리인가. 쭌이가, 나의 천사 같은 아들이 3일도 아니고 학기가 시작되고 3주 내내 그래 왔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클로에의 말에 겉으로는 다 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내 속은 이미 불지옥이었다. 쭌이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문을 닫아주던 나다. 들어갈 때는 항상 노크까지 해가며 쿨맘 행세를 했는데, 나의 잘못된 믿음이 불러일으킨 결과인가. 아니면 쭌이가 원래 거짓말을 잘하던 아이였던가. 어떤 모습이 진짜 내 아들이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날 밤, 쭌이에게 불나는 등짝 스매시와 함께 짱구 엄마를 방불케 하는 꿀밤을 수차례 선보였다. 쭌이의 울음과 사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온갖 레고와 닌텐도를 뒤집어엎어버렸다. 쭌이가 이렇게 혼이 난 게 얼마 만이었더라. 아니지, 만 11년 인생에 처음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서는 쩡이도 쭌이도 항상 문을 10 센티쯤 열어 둔 채 수업을 한다. 폰은 당연히 압수였다. 답답한 마음에 하노이에서 사귄 유일한 한국인 친구이자 쭌이의 절친인 ㅁ이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민을 말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너무나도 쿨했다.    


“언니, 여기 다른 한국 애들 다 그래요. 쭌이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이걸로 고민이라고 하면 웃는다.”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는 진정 인간 가스 활명수입니까. 역시, 이럴 때는 친구에게 털어놓는 게 최고다. ㅁ이의 엄마는 쭌이가 착하고 누구보다도 바른 아이인 건 맞지만 아직 어린이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여태껏 봐온 쭌이의 모습이 진짜라고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고 하는 것이다. 엄마인 내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쭌이를 수없이 초대하고 함께 재우지 않았던가.    


그렇게 쭌이는 내 속을 시커멓게 태우더니 드디어 2주 전 상을 타 왔다. 그것도 수학과 영어에서 2관왕 동시 석권했다. 여섯 명에서 많게는 열 명도 주는 체육이나 아트와는 달리 수학과 영어는 학년 전체에서 한 명 많아야 두 명을 준다. 쭌이가 상을 받은 주는 수학은 단 한 명 그리고 영어는 두 명을 주었다. 그런데 우리 쭌이가 받은 것이다. 상을 받았다는 메일을 받고 기뻐하기도 잠시, 오빠가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상을 받자 쩡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매주 금요일마다 ‘Star of the Week’을 받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기대하던 우리의 쩡이! 오빠가 먼저 상을 받자, 쩡이는 하늘이 무너진 듯 주저앉았다.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쩡이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먼저 축하를 해주어야 한다고 설명을 했다. 마농도 클로에가 상을 받으면 두 손 터져라 손뼉을 치지 않냐고. 그러자 쩡이는 눈물을 그치고 말없이 화이트보드로 향했다. 상 받은 오빠를 위해 축하 메시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울음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를 오빠를 안으며 축하한고 말하는 쩡이, 쭌이는 이런 쩡이에게 ‘고마워, 쩡아.’라고 말하며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안아 주었다. 쭌이는 쩡이에게 늠름한 오빠다.    


“상을 받든 안 받든 엄마랑 아빠는 쩡이, 쭌이 모두 사랑한다. 엄마는 다 안다. 온라인 수업하면서 선생님이 못 보시는 것도 엄마가 다 보고 있어. 그러니 못 받았다고 못한 게 아니야. 쩡이도 쭌이도 엄마, 아빠는 늘 자랑스럽대이.”  


저녁을 먹으며 식탁에 앉아 이렇게 말을 하니, 쩡이도 쭌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내 말을 다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매일 아이들과 함께 지낸 지 6개월이 훌쩍 넘은 이 시점,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수천 번은 오르락내리락한다. 하지만 받은 점수보다도 상보다도 열심히 문제를 풀기 위해 끙끙댔던 시간을 기억하며 인생을 살아간다던 ‘오은영 박사님’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늘 3S '스코어, 상, 세트'에 연연하지 말자고 다짐해놓고 시시각각 흔들린다. 잠들기 전 오은영 박사님의 동영상을 바이블처럼 보고 자는 나, 육아의 길은 여전히 어렵고도 멀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주 금요일에 쩡이는 ‘Star of the Week’가 될 수 있었다. 텀(학기)마다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일주일 전부터 준비하고 열심히 외우던 쩡이였다. 그 노력이 드디어 빛을 보던 순간이었다. 상을 받아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자녀가 상을 받으면 학부모에게 메일을 보내는데, 쩡이는 내가 학교 메일을 받았는지 재차 확인을 했다. 우리 쩡이 아주 칭찬해!

쩡이는 집에서 거의 매일 프리젠테이션 연습을 했다.

P.S. 지난달 랜선으로 각 과목의 선생님들과 6분의 상담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수학 선생님께 쭌이가 레벨이 떨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게 물었다. 수학 선생님은 온라인으로는 학생들의 실력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어 세트(레벨)를 나누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이때 쭌이의 따가운 시선이 내 얼굴에 꽂혔다. 미안하다, 아들아. 그날 등짝 스매싱과 함께 레벨 운운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 하마. 3S ‘스코어, 상, 세트’에서 자유롭지 못한 엄마를 용서해다오. 다 내려놓기란 힘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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