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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Nov 18. 2021

자기 계발이라는 배후 세력

클래스 101로 우울 뭉개기         일러스트 by 하노이 민언냐

카드는 사랑이다.


아니, 그 찢으면 힘없이 죽 흩어지는 그거 말고.. 그래, 플라스틱에 숫자 찍힌 그거 있잖아. 지갑 안에 착 하고 넣는 거.


하노이의 악명 높은 겨울이 오고 있다. 건물의 실루엣만 간간이 보이게 하는 짙은 미세먼지, 사우나 온 듯 축축하게 젖는 습한 겨울이 코앞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코비드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는 게 더한 공포다. 이러다가 다시 먹히는 수가 있다.


격리든 겨울이든 말이다.


지난주에 100명대 초반이던 확진자 수가 주말을 지나더니 200명을 넘었다. 이제는 다시 도시 전체가 격리 수순을 밟지나 않을지 겁이 난다. 하지만 코비드로 배운 교훈이 있다면, 바로 '지금을 즐겨라! Carpe Diem!'이다. 사실 요즘 인생 모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 겁난다고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블로그도 그리고 브런치도 계획에 전혀 없던 일이다. 알코올 기운도 없는 맨 정신에 저지른 즉흥적인 뭅뭅이 아니었더냐. 과한 패닉은 패인만 가져올 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지난 하노이 생활 동안 우울, 그거 되게 많이 빠져 봤거든. 그리고 보이는 건 더 짙어진 다크서클과 흑화 된 자신 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어떻게 하면 흑화까지 안 가고 노르스름한 '황화'에서 그치는지 말이다.

탁해지는 공기 오염도

지난 9월, 블로그를 브런치보다 먼저 시작했다. 하루하루 우울의 틈을 주지 않으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효과? 만 프로 있다. 사실 첫 시작은 클래스 101의 에세이 수업이었다. 올해 여름까지만 해도 블로그나 블로거는 내 인생에 화성, 금성만큼이나 거리가 먼 단어들이었다. 막연하게 하노이의 일상을 기록해두는 게 어떨까 하고 두리뭉실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심코 클릭한 클래스 101의 홈페이지에서 '로마에 살면 어떨 것 같아?'의 김민주 작가 수업이 눈에 들어왔다. 해외에 산다는 점에 동질감을 느낀 게 발단이었다. 그녀는 주기적인 글쓰기가 주는 일상의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글쓰기를 통해 그냥 스치고 지나가던 것도 다시 생각할 수 게 되었다는 그녀의 말도 마음에 와닿았다.

김민주 작가님의 책

돌이켜 보면, 그 수업을 시작으로 정기적인 글을 쓰되었다. 어쩌면 '쏘 왓? 그게 왜?'라고 묻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창대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리그에 엄지발가락 하나 정도 걸치게 된 이 작은 도약이 내겐 큰 쾌거다. 브런치는 에세이 수업을 듣던 중 나온 미션(과제)이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을 때, 덜컥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브런치라는 플랫폼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미션과 출석을 부지런히 하고 완강하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막상 응모하고 인터넷에 브런치 작가 응모를 검색해 보니... ' 브런치 작가 재수', '브런치 떨어졌어요.' '브런치 합격 노하우' 등이 쫘악 나오는 게 아닌가. 헉, 나 지금 떨고 있나,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게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거의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다. 합격 욕심을 내면 도둑놈 심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응모한 지 사흘쯤 지나, 온라인 불어 수업을 듣던 중, 메시지가 패드의 화면에 떴다.

합격 메시지를 찍은 사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하늘을 날 듯이 기뻤다. 이 희열, 행복 얼마 만에 느끼는 감정인가. 아이들, 남편을 통한 게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만의 기쁨이었다. 그렇게 브런치 연재가 시작되었다. 10월에 마감된 '제9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도 응모를 했고 말이다. 그러니 이 모든 글쓰기는 내 인생 대박 사건 탑 5에 꼽히고도 남는다. (해외 연수, 결혼, 1차 출산, 2차 출산 그리고 브런치와 블로그 순이다.)


우울의 자리를 대신 채울 다른 하나는 그림이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은 없었다. 하노이에서 유화 수업은 서너 번 들었던 적이 있다. 폴란드 출신 화가의 수업이었다. 소규모 그룹의 취미 수업이라 작은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퍼뜨리는 정도의 작업을 했다. 유화의 시식 코너를 다녀온 느낌이랄까. 소묘는커녕 선 긋기도 몰라 어떻게 그림을 시작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정작 그림이 좋아지기 시작한 건 그다음이었다.

이번에도 통 큰 남편의 플렉스가 시작이었다. 스포츠든 예술이든 '공구 발'과 '장비 발'의 위력을 누구나 말하지 않나. 난 그게 폼 좀 내보려는 변명이 반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대표적인 장비 발을 세우게 될지는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이패드 프로를 받은 것이다. 당시 그림도 컴퓨터도 모르는 무지렁이인 와이프에게 고가의 패드를 선물한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가방도 아니고 목걸이나 반지도 아니고 아이패드 프로라니!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목적이었다면 성공적이었다. 정말 겁나게 놀랬다. 하지만 왠지 신선해. 비싼 걸 덜컥 사 왔다고 타박하던 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비싼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패드를 품 안에 꼭 안고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 패드는 늘 나와 함께다. 아침에 일어나면 모닝커피와 함께 팟 캐스트로 불어, 일어, 베트남어 방송을 듣는다. 운동 뒤, 패드로 블로그를 끄적이지. 굿 노트를 열어 베트남어, 불어 온라인 수업의 숙제를 성실히 하고 전송까지 마친다. 그리고 일러스트 수업도 듣고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구세주, 프로 크리에이터 앱을 열어 그림도 그린다. 물론 이건 허세 두 스푼 담은 패드 사용법이다. 실상은 넷플릭스 폐인이 되기 쉽다는 함정도 있다. 결국 아이패드 예찬론자가 되어 위층 블론딘과 윗 위층 타냐에게 적극 강추해 사게 만들었다. 남편은 아마도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지난 월요일 남편은 다시 한번 나를 향한 사랑을 카드로 말해주었다.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집시 'Zipcy'의 수업을 클래스 101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번에도 흔쾌히 '알 러빗!'을 외치며 등록해 주었다. 어느새 클래스 101은 그의 지갑 도둑이 되어 버렸다. 에세이 수업을 완강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집시의 수업으로 또 유혹해대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여보! 당신은 나를 정녕 사랑하는 가보오.

클래스 101의 Zipcy작가님의 수업, 첫 과제

수업을 매일 듣고 있지만 용어나 개인 맞춤형 펜 설정 등은 아직 좀 어렵다. 아는 기능도 있지만 모르는 것도 있었다. 분명한 건 20강을 완강하면 김민주 작가의 에세이 수업과 같이 달라진 내가 있을 것만 같다는 것이다.

두 개의 수업, 두 개의 변화

우울에 빠지기 딱인 하노이의 겨울 그리고 코비드, 뒤집어 보면 자신에게 집중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 아닐까. 물론 온라인 수업과 육아라는 지상 최대의 난관도 함께 있다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세상이 언제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다 내어 주던가. 그 누구에게도 세상은 모든 걸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옴싹 옴싹 조금 더 조금만 더 전진의 한 걸음 아니 반걸음이라도 내딛는 뜨거운 노력! 그 노력과 시간만이 우리를 증명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느리지만 치열하게 치열하지만 여유 있게 전진하자. 그것만이 살길이다.


1퍼센트 나아지거나 나빠지는 건 그 순간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그런 순간들이 평생 쌓여 모인다면 이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의 차이를 결정하게 된다. 성공은 일상적인 습관의 결과다. 우리의 삶은 한순간의 변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 일어난 결과보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s)-
월동 준비에 좋은 실용서! 전자책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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