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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Nov 11. 2021

레퍼 민언냐 ‘쇼 미 더 성조’

그녀의 특별한 베트남어 공부법        일러스트 by 하노이 민언냐

행동해야 존재할 수 있지.


재밌는 태도한계결정해!


세상디자인하고 발견해!


은행에서 안전하게 배달하면.


그래서 주말문제네.


by 래퍼 민언냐


예아! 요! 첵첵첵 체킷 아웃! 드뢉더 비트!​


오늘도 중얼중얼, 흡사 쇼미 더 머니라도 나갈 듯 랩을 외워 본다. 베트남어 공부를 막 시작하려는 당신, 나와 함께 가지 않을 텐가.

이게 무슨 소리냐고?​


베트남어 공부하는 소리다.


베트남어에는 성조가 하나? 둘? 셋? 아니, 다섯 개다.​


처음에는 베트남 정복을 위해 열의에 불타오르다가도 성조의 산을 넘지 못해 포기하는 한국인들 아주 많다. 차라리 베트남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니 영어로 전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 또한 어학공부 19년 경력에 역대급 최고 난이도는 단연 베트남어다. 영어나 일어, 불어도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지만 베트남어는 그 학습의 정성과 시간이 배가 든다. 3개월마다 한 번씩 슬럼프가 찾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러피안과 일본인이 많은 호떠이는 영어만으로도 살아가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다. 일부러 시장이라도 찾아 나서지 않으면 베트남어를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단어를 잡고 있노라면 무슨 영광을 보려고 이 고생을 하나 싶다. 10 일을 반복하다가도 하루 쉬면 백지가 되는 게 성조다. 남자로 치면 아주 나쁜 노.. 남자지. 하지만 나쁜 남자에 끌리듯 베트남어도 강약과 장단을 조절하는 성조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같은 한자권 언어이니 대애충 그냥 뭐 대애충 때려잡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노노!! 머선 소리!!

이사하며 몇 권은 버리고 남은 베트남어 책들.

100번 강조를 하지만 베트남어의 꽃은 발음, 성조다. 성조는 베트남어를 함에 있어서 생명과도 같다. 아무리 많은 단어를 읽고 쓴다 해도 성조를 틀리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물론 한국인이나 일본인 특유의 발음에 굉장히 익숙해진 베트남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나 또한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인 대상으로 한 수업 경력이 10년 차인 선생님과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그녀! 영어 없이 100 프로 베트남어 수업을 하게 된 나는 스스로 우쭐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 근처의 베트남어 어학원에서 베트남어 수업을 듣던 일본인 친구를 따라 회화 수업을 알아보러 갔다. 1 대 1 수업도 좋았지만 프리 토킹 수업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제 초보 딱지를 떼고 회화를 하고 싶다는 야심찬 꿈이 있었던 것이다. 도착해 보니 레벨 테스트를 먼저 제의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어휘, 쓰기, 읽기 등의 필기시험은 큰 문제없이 잘 쳤다.


다음 단계는 레벨 테스트의 끝판왕, 원장님과의 대망의 구술시험이었다. 즉석에서 필기 테스트를 채점해 주는 스피디한 진행, 완전 내 스타일! 구술시험을 치는 내내 원장님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 대답을 가만히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나의 발음이 얼마나 구린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기본적인 단어들의 억양을 정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랬구나, 이게 바로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여태껏 한국인 발음에 최적화된 선생님 한두 명과 수업 좀 했다고, 베트남어 한다고 으스대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표가 맞지 않아 학원과의 인연은 아쉽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오전 반은 초급 반만 열려 있고 중고급 레벨, 회화 수업은 늦은 저녁에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 본업은 주부라, 저녁 시간은 불가능했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학원을 나섰다. 하지만 수업 그 이상의 것을 얻은 날이었다. 오히려 큰 가르침을 받고 돌아올 수 있어 운이 좋았다. 그 뒤 발음과 성조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장, 택시, 옷 가게 등 영어보다 베트남을 더 쓰도록 노력했다. 학원 선생님께도 발음을 녹음하고 보내며 하나하나 체크와 수정을 요청했다.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자주 쓰는 단어들만이라도 더 정확하게 발음하고 싶었다. 그래야 시장이든 택시 안에서든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원 선생님과 단둘이서 베트남어를 하기 위해 하는 공부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성조의 벽은 여전히 너무나도 높은 벽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묘안은? 바로 스토리를 구성하여 같은 성조의 단어들을 묶는 것이다. '김~수 안무~거북이와 두루미' 같은 문장이라도 기억만 난다면 오케이다.

 예를 들어 보자!


행동해야 존재할 수 있지.


Hành động, tồn tại​


재밌는 태도한계결정해!


Thú vị , thái độ, giới hạn, quyết định​


세상디자인하고 발견해!


Thế giới, thiết kế, khám phá​


은행에서 안전하게 배달하면.


Ngân hàng, an toàn, giao hàng​


그래서 주말문제네.


Thế thì, cuối tuần, vấn đề

자~ 계속 떠올리고 랩처럼 중얼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각인이 된다. 그리고 한 번씩 성조가 헷갈리더라도 함께 암기하던 단어들이 하나둘씩 떠올라 도움이 된다.

오늘도 베트남어의 성조에 좌절하며 포기의 강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면, 나와 함께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 가보자. 진격의 베트남어 래퍼가 되자.​


단, 성조에 진심인 그대! 누군가에게 랩이 들키는 순간, 파도처럼 밀려드는 부끄러움은 오롯이 그대의 몫이다.


P.S. 같은 성조의 단어만 나열해 암기했을 뿐, 위 베트남어 문장은 바른 어순이 아니다. 불어, 베트남어는 '명사+형용사'로 쓴다. 형용사가 명사 앞에 오는 한국어, 일어, 영어와는 다르니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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