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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an 18. 2022

부릉부릉, 오토바이로 베트남을 타자.

하노이 오토바이의 모든 것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해가 기우는 오후 6시 호떠이의 어느 건널목.


흔들리는 눈빛, 앙다문 입술을 하고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좌우를 살피는 이가 있다.

한 발짝 내딛는가 하면 다시 후퇴한다. 속도를 늦추지 않는 오토바이들에게 야속한 눈빛을 보내며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녀는 한 손에는 딸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잡고 있다. 달리는 오토바이에 당황해하며 길을 건너지 못하던 그들에게 드디어 구원자들이 나타났다. 베트남 사람들이 옆으로 서는가 싶더니 흔들림 없는 속도로 무심하게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달리던 오토바이들은 일제히 멈췄다. 머뭇대던 그녀와 아이들도 길을 건너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쫓아 재빠르게 합류해 건넜다.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야외활동인 테니스 수업을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건널목이 있다. 이 건널목은 베트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거리로 완벽한 90도로 되어 있다. 그래서 고개를 타조처럼 길게 내밀어야 시야가 확보가 된다. 사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적응이 안 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한국에서는 평생 들어보지 못한 존칭인 ‘Madame 마담’,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길 건너기‘다. 건널목에서 내딛는 첫 발은 긴장감이 최고치를 찍는다. 심장이 두근대다 못해 대기권 밖까지 널을 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보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집에서 20분 전에 출발을 한다. 길을 건너는 데만 최소 5분은 걸리기 때문이다.     

컬렉티브 메모리

쇼핑을 하러 나가기엔 매일 갱신되는 코비드 확진자 수에 주춤하게 된다. 그래서 주로 인터넷이나 SNS에서 주문을 한다. 그럼 정해진 시간에 오토바이를 타고 택배기사가 딱 맞춰 도착한다. 그들은 심심한 우리의 일상을 밝혀주는 현대판 산타다. 이번에는 ‘컬렉티브 메모리’에서 주문을 했다. 컬렉티브 메모리는 하노이에서 유명한 편집숍이다. 주문 8시에 했지만, 다음 날 내가 부탁 오전 10시에 딱 맞춰 전화가 울렸다. 레지던스 정문에는 초록색의 그랩(동남아의 '우버' 격이다.) 유니폼을 입은 택배 기사가 오토바이에 기대 서있었다. 초록색 유니폼을 보자마자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이 밀려왔다. 길을 건널 때, 멈춤 없이 씽씽 지나가던 그들은 참 미워 보이더니... 인간은 간사한 존재다. 제시간에 도착한 택배, 만세! 영원하라, 퀵서비스여! (배송료는 보통 3만 2천 동에서 3만 5천 동으로 한화 천 6백 원에서 천 7백 정도다.)    

주문한 책은 제목부터가 Vietnam On Wheels!  바퀴 위의 베트남이다. 사실 베트남에 해시태그를 붙이라고 하면 탑 3에 오토바이가 들어가지 않을까. 오토바이 없는 베트남은 팥소 없는 빵이다. 처음 하노이에 왔을 때, 롯데 호텔 근처 8차선 도로를 꽈악 채운 오토바이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베트남 여행 한 번 온 적이 없는 나의 머릿속은 자전거에 아오자이를 예쁘게 입은 베트남 미인들로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대착오적 발은 한복으로 가득 찬 서울을 떠올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창밖으로 보이는 각양각색의 오토바이와 운전자들을 한참 동안 구경하곤 했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기를 사이에 앉히고 가는 부부에서 훈장을 주렁주렁 단 군복에 맥아더 장군의 선글라스를 낀 70대 어르신까지 모두 함께 도로를 달린다. 중고등학생 또한 빠질 수 없다. 하교 시간이면 오토바이에 올라탄 10대들이 교문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교복을 반쯤 걷어 올리고 삐딱하게 앉아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친구들과 인사하는 모습은 베트남에서만 가능한 장면이다. 물론 50CC 이하의 가벼운 기종을 타지만 말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한 자녀들에게 부모들은 오토바이를 선물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선물이다. 흔히 인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하지만 베트남은 오토바이에서 오토바이로 끝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예전 티브이에서 시골로 시집온 베트남의 신부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시어머니는 위험하다며 펄쩍 뛰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젊은 며느리가 오토바이라니, 한국에서는 상상초월의 황당한 시추에이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가 며칠을 쫓아다니며 조르자 결국 백기를 들고야 만다. 오토바이를 타던 날, 베트남의 며느리는 운전하는 내내, 여태껏 본 적 없는 미소를 보였다. 이는 고부간의 전쟁에서 며느리가 이겼다는 승리감과는 달랐다. 그녀는 그리워하던 고국, 베트남을 오토바이를 통해 재회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오토바이에서 울리는 그 진동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그리워한 것이 아닐까.      

사실 오토바이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가죽점퍼와 보잉 선글라스를 낀 터프한 라이더들이다. 그리고 앞바퀴를 들었다 놨다 하는 현란한 퍼포먼스, 거기에 스피드는 덤이고 말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조금 다르다. 덩치 큰 건장한 아저씨들은 물론 앳된 얼굴의 20대 초반의 여성들까지 동글동글 카카오프렌즈 캐릭터가 그려진 다양한 헬맷과 마스크를 필수로 장착한다. 특히 여성 운전자들은 여름에는 따가운 햇볕에 그을리지 않기 위해 레이스가 달린 팔 토시를 하고 랩스커트를 걸치는 등 여전히 스타일리시함을 고수한다. 오토바이는 그들에게 인생의 동반자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오토바이에 의한 오토바이를 위한 문화가 있다. 예를 들면, 미니스커트 안에 반바지를 함께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또한 오랜 운전 뒤에도 구김이 적은 소재와 랩 스커트처럼 운전에 편한 디자인을 찾아보기 쉽다. 이처럼 오토바이가 일상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물론 가끔 호떠이 산책로에서 ‘뿌~앙’ 하는 굉음으로 자연스럽게 중간 손가락을 들게 만드는 분노 유발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99.9 프로가 외국인이다. 그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위험천만한 스피드를 즐긴다. 보행자들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걸어 다니는 크고 작은 장애물로 보고 보행자로부터 한 뼘 간격만을 둔 채 빠르게 스쳐 지나가.. 아니 날아가곤 한다. 반면에 현지인들은 속도를 내지 않는 편이다. 보행자와 눈을 마주치고 상대가 건너겠다는 의지를 먼저 보이면 분명 속도를 줄인다. 개인적으로 이 무언의 대화가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나, 타이밍을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는 게 함정이다. 경적을 울리는 것도 모퉁이나 골목길에서 맞은편 통행자에게 오토바이의 존재를 알리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단, 데시벨이 높은 ‘빵’ 소리가 나를 향해 쏘는 총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러시아워에는 도인이 없다. 어물쩡 거리고 길을 1초라도 막노라면 수십 대가 동시에 빵빵 거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특히 하노이는 교통법규가 아닌 그들만의 룰을 따르기로 악명 높다. 도로 위의 신호등은 색깔일 뿐이다. 초록색이든 빨간색이든 보행자가 근처에 없다면 사뿐히 직진하는 한결같음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보행자로서 길을 건너기가 굉장히 어려운 결정적인 이유다. 나는 ‘그들만의 룰’을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1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귀여운 헬맷의 스쿠터 라이더들을 동경하며 오토바이를 몰아보고 싶다고 했지만, 남편은 결사반대했다. 그때는 너무 펄쩍 뛰는 그에게 반발심 마저 들었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지 않나. 하지만 지금은 그를 이해한다. 길을 건너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나로서는 당연히 무리다. 사실 야심 차게 자동차를 끌고 운전을 시도했던 한 지인이 있었다. 그는 10분이면 도착하는 마트를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회전을 하지 못한 채, 직진만 1시간을 했단다.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음의 헬게이트를 맛본 그는 이제 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고 한다. 약은 약사에게 운전대는 기사에게 맡길 일이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다. 택시처럼 승객을 태우는 오토바이형 택시 ‘xe ôm 쎄옴’다. xe는 자동차 그리고 ôm은 껴안다는 뜻인데 직역하면 껴안는 차인 셈이다. 오토바이를 타면 뒤에서 승객이 운전자를 안고 타야 하니 영 틀린 말도 아니다. 쎄옴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싼 요금인데, 택시보다 반 이상 저렴하다. 교통체증에도 이리저리 잘 파고드는 기동력에 출퇴근 시간에신속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다.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애용한다. 특히 베트남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라 좁은 골목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좁아도 너무 좁아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 또한 빈번하다. 그래서 오토바이는 그야말로 베트남에 최적화된 교통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운 날씨에 오토바이는 최고의 바람을 선사한다. 라이딩을 한 번 경험을 하면 그 상쾌함을 잊을 수 없다고들 한다. 나는 호떠이에 사는 베트남 친구 M의 오토바이를 슬쩍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돈 적이 있다. 소매로 타고 들어오는 바람이 온몸으로 퍼져 땀이 가시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오토바이는 사람 이외에도 더 많은 것을 운반한다. 그 종류가 너무 다양해, 안 되는 거 빼고 다 된다고 할 수 있다. 뿌리째 뽑힌 큰 나무를 기우뚱하게 눕혀 뒷좌석에 노끈으로 칭칭 감아 옮기는 것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어디 그뿐인가. 대형 가스통 6개도 젠가처럼 차곡차곡 쌓아 나른다. 운전자가 10배는 더 큰 짐에 폭 파묻혀, 무인 운전인가 싶을 때도 있다. 오토바이가 앞으로 달리는 게 신기할 정도다. 건설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철근부터 2미터가 훨씬 넘는 책장까지 불가능이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운전자들은 전화를 한 손에 들고 통화를 하는 등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유와 평정심을 보인다. 옆에서 보는 내 마음만 조마조마할 뿐이다. 이쯤 되면 집도 거뜬히 옮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운반 능력에 리스펙트, 박수를 보낸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내내 그 사랑스러움에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특히 뒷좌석에 앉아 퍼(베트남 쌀국수)를 먹는 그림에서 잠시 멈췄다. 실제로 베트남 최대 명절인 '뗏(한국의 구정)'에도 오토바이로 이동한다. 6 시간에서 16시간의 거리를 아이 둘을 태운 4인 가족이 함께 간다. 그러니 삼시 세 끼는 물론 간식까지 오토바이 위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더운 여름, 그늘에 세워둔 오토바이에서 숙면을 취하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와 삶대부분을 함께하는 셈이다.

컬러링 북을 탁 덮으며 생각했다. ' 심장을 게 하는 오토바이들, 이제는 내게 길을 좀 열어주지 않겠니. 난 너희들을 그려낸 책도 샀단다.'하고 말이다. 이 마음을 알아줄리 없는 오토바이들에게 야속함 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빛의 속도로 책장의 가장 높은 곳에 꽂아 두었다. 색칠하기를 좋아하는 딸내미의 눈에 띄기 전에 말이다.  그래, 나는 비정한 엄마다.

P.S. 아주 쬐끔 더 저렴한 (베트남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Exploring Vietnam 도 있었다. (38만 5천 동, 환화 19천 원) 하지만 Vietnam On Wheels(41만 동, 한화 2만 5백 원)만큼 베트남 나타내는 타이틀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 이 책을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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