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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an 19. 2022

잣 까다가 해바라기 까다가 바이올린도 깐다

수고하여 찾는 기쁨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잣 까세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얼마나 위대한가. 불량한 동영상을  것도 아닌데, 이런 제목의 동영상이 떴다. 진정 나보다 나를  아는 건가. 알고리즘은 내면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제목에서 멈추는 나를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끌린 것이다. 요즘 나는 잔걱정으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생전 겪은  없는 날카로운 생리통도 맞이했다. 이런 고통스럽지만 생존에는 하등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자잘한 불편함 들은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하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다. 이래 봬도 14 영어강사로 순수한 아이들을 가르쳐온 나다. 거기에 초등학생 자녀를 둘이나 두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의 들끓는 파괴 본능은 쉽게 식지 않는다. 내적 갈등에 머릿속은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고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에라이~ 모르겠다. 결국 본능에 굴복하고야 만다. 클릭! 쩡이와 쭌이가 뒤에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용의주도함도 장착했다. 부모님 몰래 야동 보는 10대가   삼엄하게 주위를 살피고 볼륨을 줄였다.


어라, 음산하고 시커먼 목소리를 기대했는데 한없이 낭랑하고 상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명랑하기만 한 배경음악에 십 세도 시청 가능한 풀내음 물씬 나는 숲이 화면 한가득 채웠다. 난데없는 작고 고운 손의 등장! 카메라는 그 손을 클로즈업하기 시작했다.


낚! 였! 다!


이런 게 전문용어로 낚였다는 거지. 동영상은 가녀린 손의 주인공이 큰 돌멩이를 쥐고 딱딱한 씨앗을 내리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 뭘 상상하고 있는 걸까. 레알 ‘잣’ 까는 영상이었다. 순간 시커먼 나의 속내가 들킨 것 같아 혼자 얼굴을 붉혔다. 미국의 잣은 크다며 사정없이 돌로 내리쳐 알맹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실망감도 잠시 동영상을 보고 있자니 빠져든다.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동영상에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함을 느꼈다. 틈만 나면 하는 나만의 소일거리와 닮았다.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놀란 건 다섯 걸음마다 나오는 커피숍 그리고 가게 앞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의자들이었다. 그런데 이 의자가 우리가 떠올리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너무 작아 엉덩이 반쪽 걸치면 가득 차는 사이즈로 유치원생들이나 앉을 수 있는 소꿉놀이용 의자였다. (사람들은 이걸 보고 목욕탕 의자라고도 한다.) 물론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도 많지만 로컬 마켓이나 현지인들의 거리에는 어김없이 작은 의자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앉은 현지인들 옆에 정체불명의 껍질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입으로 동그랗고 푸르스름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가져가고 있었다. 앞니로 까작까작 소리를 내며 톡톡 까서 알맹이를 빼먹고 있었다. 흡사 다람쥐나 햄스터가 도토리를 저런 식으로 먹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껍질들이 발 옆에 수북이 쌓여만 갔다. 그 정체가 궁금해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어, 해바라기 씨앗 까먹는 거다. 베트남 사람들 되게 좋아하거든.”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먹는 베트남 국민 간식, 정체는 바로 해바라기 씨앗이었다. 손톱만 한 껍질을 앞니로 살짝 물어 입구를 열고 벌어진 틈을 손으로 까 보면, 까꿍~ 매끈한 씨앗이 나온다. 처음에는 알맹이보다 껍질이 2배는 큰 이 간식에 왜 이리 열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에게~ 겨우 요거 먹자고 내 이와 손톱이 나가도록 깠나 하는 허탈함까지 밀려왔다. 이건 뭐 다이아몬드 파자고 광산 파다가 옥수수 씨앗 하나 발견하는 격이었다. 그렇게 해바라기씨에 콧방귀 뀌던 내가 요즘 완전히 빠져버렸다. 수고하여 직접 까는 행위가 때로는 보람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눈곱만 한 작은 씨앗 하나 입에 넣자고 번거로운 과정을 감수하는 효용성 제로의 간식은 농부의 수확하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 그래서 지금은 틈만 나면 해바라기에 몰두한다. 땅콩에 알레르기가 있는 쩡이는 그런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그리고 엄마를 위해 작은 손으로 한가득 까서 입에 넣어준다. 음, 역시 남이 까주는 게 맛은 있다. 하지만 역시 나의 정당한 노동으로 얻는 열매가 주는 맛은 다르다. 해바라기 씨앗은 이상한 매력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뭐든 과정에는 수고가 들어간다. 보이는 결과는 작은 씨앗과 같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광산에서 옥수수 씨앗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들 헛수고는 아니다. 씨앗은 심으면 결국 새싹을 피운다. 새싹에서 큰 나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새싹을 피운 것만으로도 성취감은 얻을 수 있다. 어디 커다란 거목에서만 보람을 찾으란 법이 있나. 작은 것에도 배로 즐거워하고 작은 시련에도 세상 잃은 듯 드라마틱한 편인 나는 요즘 배우는 모든 것들에서 이런 희로애락을 느끼고 있다. 글도 테니스도 그림도 외국어도 시간과 노력의 장단이 있을 뿐 모든 영역이 그렇다. 특히 요즘 막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바이올린에서 더 많은 수고를 쏟는 편이다. 원래 ‘Twinkle twinkle little stars’ 트윙끌 트윙끌 리를 스따아~, ‘반짝반짝 작은 별’까지가 내 수업의 목표였다. 애초에 아이들이 수업을 하기 전에 하는 15 -20분 정도의 맛보기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하루 이틀의 수업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의 수업과 연습으로 이탈음 없이 연주다운 연주가 가능해졌다. 연습 곡은 미뉴에뜨도 아닌 그 이름도 찬란한 ‘반짝반짝 작은 별’이고 말이다. 물론 이마저도 바리에이션 버전이 많이 있어 박자를 쪼개고 쪼개야 한다. 박자에 따라 손목을 이용한 활을 쓰는 법도 심화하여 배우고 말이다. 바이올린이 재밌어 정식 수업을 요청한지는 2주 차에 접어들었다. 반 시간을 선 채로 오롯이 하고 나면 다리도 아프지만 그보다 왼쪽 손과 어깨가 더 아프다. 뻐근하게 근육이 뭉치고 경련이 일 정도이다. 레몬을 쥔 듯하라고 왼손을 끊임없이 지적받으며 이걸 해서 남들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데 왜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연습을 더 할수록 큰 기쁨을 느끼는 중이다. 안되던 부분이 되면 마치 해바라기 씨앗 하나 빼먹는 쾌감처럼 말이다. 이제 나는 작은 별을 넘어 다른 곡으로 진행 중이다. 활을 잡고 현을 짚어 선율이라는 새싹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씨앗이었지만 결국은 새싹을 피운 나의 바이올린! 나는 오늘도 수고하여 잣도 까고 해바라기도 까고 바이올린도 깐다. 당신은 오늘 무슨 씨앗을 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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