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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an 15. 2022

하노이, 불면의 밤, 불면의 방

잠이 오지 않는 이유.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위이잉 드르렁킁킁킁 위이잉


하노이의 밤소리다.


새벽 4시, 잠이 오지 않는다.

불면증을 호소하던 남편은 2분 만에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불면증'은 다른 의미인가. 그리고 하노이의 축축한 겨울을 말려줄 제습기만이 윙윙 거리며 열일 중이다.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구나. 기특한 녀석 같으니라고..

양이라도 세어 볼까. 잠을 청하는 백 가지 방법 중 가장 고전적인 '양세기'에 돌입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일흔아홉 마리.. 클래식은 늘 옳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 낮에 건조기에서 발견한 남편의 짝짝이 양말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양말이 꼭 한쪽씩만 사라지는 이 미스터리는 13년째 풀리지 않고 있다.


내친김에 양말 통을 뒤져보았다. 짝을 잃은 아이들만 합이 네 짝이다. 나란히 놓여있는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지퍼도 올라가지 않는 스키니 바지가 있다. 살 빼서 다시 입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한지도 어언 4년이다. 혹시나 해서 꾸역꾸역 다리를 넣어보았다. 역시.. 지퍼를 올리려다가 뱃살이 끼여 악 소리 나는 고통을 맛봤다. 부산에서 입던 블랙 미니스커트도 도전했다. 볼륨감 있는 아랫배가 미슐렝 타이어가 누나라고 할 판이다. 이것들은 버리거나 나눔으로 해야겠지. 어느새, 옷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런, 옷장에 진지해지면 답이 없다. 시계를 보니 바늘이 2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을 청한다. 아직 늦지 않았어.


 엎치락뒤치락, 결국 충전기에 꽂힌 휴대폰을 바라본다. 엄지손가락을 갖다 대니 띠로리, 바로 켜진다. 손 하나 까딱하면 열리는 신문명에 박수를 보낸다. !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오는 블루 라이터의 역습! 눈을 질끈 감았다. 하마터면 시력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미간을 찡그리며 실눈으로 5초를 버티니, 바로 적응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인터넷을 뒤져 패션 동향을 알아보고 영화 리뷰를 읽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잠 오는 음악을 띄워보기로 했다. '그때 그 시절 우리를 설레게 한 뉴에이지'? 타이틀부터 말랑말랑 해서 맘에 든다. 오늘은 너로 정했다. 첫 곡부터 익숙해서 더 그리운 Andre Gagnon의 Comme Au Premier Jour다. 이게 얼마만의 상봉입니까. 가뇽 아저씨는 또 못 참지. 음, 다음은 더 익숙한 선율이 흐른다. 요즘 내가 한창 연습 중인 Isao Sasaki의 Always In A Heart. 이렇게 감미롭게 치는 거였구나. 삐끗삐끗 이탈음에 힘겹게 꾹꾹 눌러 치는 나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 이건 피아노 연습을 위해 들어야 한다. 암, 자기 계발은 좋은 거지. 이 곡만 듣고 자볼까.. 했는데 진짜는 그때부터였다. 당시 피아노 친다는 이들은 모두 한 번은 뚱땅거렸던 이루마다. 올해 데뷔 20주년이라던데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20대 시절 듣던 갬성 촉촉 뉴에이지,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추억만 소환이 될 뿐이다. 이건 음모다. 성까지 더 해져 잠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어제 읽다가 만 책옆구리 끼고 말이다. 따끈한 물을 한 컵 가득 받아 홀짝 거리며, 나도 모르게 싱크대의 오른쪽 서랍으로 손이 향했다. 딸내미가 아끼는 초콜릿 상자가 참하게 앉아있는 서랍이다. 까꿍. 양철 케이스의 뚜껑을 열어 부스럭부스럭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쩡이가 가장 아끼는 캐러멜 맛은 딱 하나가 남아있었다. 어제 아끼고 아껴 선뜻 뜯어먹지 못하고 손에 꼭 쥐고 다니던 게 떠올랐다. 초콜릿을 거실 테이블 위에 두고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아빠가 실수로 먹는 대참사가 있었다. 결국 빈 껍데기만 덩그러니 있는 것을 본 쩡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곤 얼굴은 한없이 일그러졌고 대성통곡을 했다.


옆으로 누워도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 완전한 타원형 얼굴을 한 쩡이와 쭌이. 코로나와 나쁜 공기질로 활동 양이 줄어 부쩍 토실토실해지고 있다. 과일을 늘리고 과자를 끊고 있어서 인가. 요즘 부쩍 초콜릿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초콜릿까지 끊어야 하나. 아니, 이건 너무 가혹하다. 무엇보다 초콜릿 없는 삶은 내가 견딜 수 없다규. 급 죄책감이 밀려온다.


역시 캐러멜 맛은 그냥 두기로 했다. 알레르기로 쩡이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 아몬드 맛, 너로 정했다. 그린 그린 한 패키지의 초콜릿 용감하게 집어 들었다. 나도 양심은 있어.


문득 봉지를 뜯으며 질문 하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왜 그린이지. 아몬드는 자고로 브라운이 아니었나. 일단 입안으로 초콜릿을 넣는다.


입안의 텁텁함은 사라지고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퍼진다. 잠들었던 혀 끝의 미각이 눈을 떴다. 이건 초콜릿 하나로 끝날 밤이 아니다. 우물대며 다시 생각한다. 왜 잠이 오지 않을까.

엊그저께 단톡방에서 나를 향해 쏘아 올린 **의 뾰족한 말이 아직도 가슴에 콕 박혀있는 걸까.


아니면 신년맞이 책 정리를 당차게 선언했지만.. 정리는커녕 산처럼 쌓아 놓기만 한 책들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제 마신 진한 커피 탓인가.


도통 알 수가 없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을 훌쩍 넘겼네. 결국 이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야 마는 걸까.


책은 또 왜 이리 재밌지.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안 되겠다. 장르를 바꿔야지. 언니가 추천해준 700 페이지를 거뜬히 넘기는 벽돌 책, 경제학 서적을 소환해야지.


어라, 이게 이렇게 재밌는 책이었나. 이 듣도 보도 못한 집중력 무엇? 시험 전날 몰래 보는 만화책처럼 빠져든다.


돌아보니 벌써 날이 밝아오고 있다. ‘나는 왜 잠이 오지 않는 걸까’의 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는데… 이 답 없는 밤이 이번 주 내내 계속되고 있다.


하긴 세상에 답 안 나오는 질문이 어디 이거 하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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