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민언냐 Jan 11. 2022

토메이토?토마토? 2년 만의 자기소개

이름의 재발견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이제는 자소서라도 인쇄해서 들고 다녀야 하는 걸까. 2년의 하노이 생활 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의 이름이 잘못되었다니...

내가 2년 동안 부른 그 이름은 그녀들의 것이 아니었다.

어제 하노이는 확진자가 2000명을 넘어 2800명을 돌파했다. 베트남 전체 신규 확진자는 14,818명이며 그중 35명만이 해외 유입 자다. 해외 유입은 입국과 격리를 통해 통제가 철저히 이루어져 안심할 수 있는 숫자다. 하지만 지역 사회 확진자의 숫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다. 베트남 내, 코비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티나 나이트 라이프는 고사하고 식량 사냥을 제외하고는 외출도 꺼려지는 상황이다. 반강제적으로 격리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내가 사는 레지던스에는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들이 대부분이다.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이 있으니 외출에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요즘이지만 돌아서면 돌아오는 끼니에 숨이 턱턱 막히는 건 어쩔 수 없다. 남편의 카드가 있으면 무엇하리, 제대로 된 쇼핑 한번 나가기 힘든데 말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친구와의 수다다. 육아와 요리로 찌든 우리들은 수다로 스트레스를 푼다. 메시지를 주고받고 통화를 하고 서로의 문 앞에 기대어 코비드를 욕한다. 뭐든 남 욕할 때 끈끈해지는 법이지. 대상이 코비드라면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쏟아낼 수 있다는 게 코비드 최대의 장점이다. 특히 'Ladies Night Out'이라는 단톡은 레지던스 내의 좋은 친구들로 구성된 그룹 채팅방이다. 물론 예전만큼 외출이 활발하지 않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것은 여전하다.

그러던 중, 프렌치 S로부터 오랜만에 글이 올라왔다. 새로운 모임을 추진하자는 것이었다. 다시 삶의 재미를 찾아보고자 하는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코비드 시국에 맞게 빌딩 내 친구들과 소수 정예로 모일 예정이라니 안심이 되었다. 모임은 레지던스에서 이뤄진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는 인파가 몰리는 장소는 꺼려진다. 그렇게 모임을 추진하는 대화는 물론 안부를 전하는 말들이 오갔다.


그런데 대화 속에 자꾸만 눈에 걸리는 이름이 있었다. MINH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나를 말하는 건지도 몰랐다. 분명 M으로 시작하는 건 나뿐이니, 그렇다면 이건 나를 의미하는 것이군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역시, S와 E는 내 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나는 'Min 민'이 아니라 'Minh 밍'으로 베트남화 되어있었다. 첫인사를 나누던 순간 제대로 정정했어야 했던가. 아니다. 사실 그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밍’이라고 부르는 이가 없다. 한국의 존재가 더욱더 희미하던 20대에 영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런 경험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Minh인 밍으로 둔갑될 거라는 생각조차 못한 게 사실이다. 베트남과 한국은 엄연히 다른 나라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제 와서 말하자니 타이밍을 놓친 거 같고 그냥 넘어가자니 간지러운 대목이었다. 매번 그녀들이 나를 Minh(밍)으로 부를 때마다 눈썹 한쪽을 그리다 만 것 같은 찝찝함이 있었다.

po·tato
발음 | 미국식 [ pə|teɪtoʊ ] 영국식 [ pə|teɪtəʊ ]
to·mato
발음 | 미국식 [ təˈmeɪtoʊ ] 영국식 [ təˈmɑːtəʊ ]

아니면 그저 미국과 영국의 차이처럼 토메이토나 토마토, 포테이토나 포타토처럼 여겨야 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메시지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결국 외치고야 만다.

"Thank you, S! By the way, I am not Minh but Min. Wahahaha."


S는 곧바로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녀의 이름 역시 H가 마지막에 붙는다고 말이다.


"OOPS!"


이런, 그러고 보니 나 또한 한참 동안 그녀를 잘못 부르고 있었다. 그녀 또한 눈썹 한쪽을 그리다 만 찝찝함에 근질거렸나 보다. 괜히 이름을 정하려다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는 달리 대화는 흥미로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갑분 '자기 이름 소개'시간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여름 포르투갈에서 온 E를 제외하고는 모두 2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통성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름의 재발견이다.

알고 보니 또 다른 프렌치인 B와 P의 이름 또한 미묘하게 다르게 입력했다. 물론 이는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나이스, 한국인 'Min 민'이 쏘아 올린 ‘네이밍 아웃’에 이름을 정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여태껏 누구와 톡을 해온 거냐고 수상하다며 서로 웃었다. 이쯤 되면 나도 명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펠링이 적힌 카드라도 들이밀어야 할까.


개인적으로 사람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편이다. 영어 강사 시절에도 처음 수업을 맡으면 가장 먼저 한 것이 이름 외우기였다. 이름을 외우는데 시간이 걸리는 나는 작은 꼼수를 부리곤 했다. 출석부 이름 옆에 작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빨간 안경을 쓴 수현이는 작은 안경을 그리고 늘 두 눈의 끝이 올라갈 정도로 높이 머리를 묶은 현서는 포니테일을 그려 넣었다. 이름을 몰라 ‘야’, ‘너’라고 부르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을 하고 나면 그 많은 학생들의 이름도 척척 외우게 되었다. 수업과 학생이 많을 때는 140명의 이름을 사흘 만에 외우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름을 단번에 외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노력과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때 때마침 다른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한 통 왔다.


“How are you, Min?”


12층에 사는 남화 공 친구 T였다. 그녀는 모두가 좋아하는 친구다. 항상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보며 늘 궁금했다. 그 비결이 뭘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비밀이 풀렸다. 그녀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던 날이었다. 그녀는 직원은 물론 만나는 모든 이들을 'Hey' 나 'Em(연하의 상대를 부르는 베트남어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말이다. 이는 어정쩡하게 서서 흔들리는 눈빛으로 서로의 이름을 생략한 채, 하는 인사와는 다르다. 누구나 될 수있는 'You'라는 대명사 아닌 유일무이한 고유명사로 기억는 노력이 우선시 된 관계다. 처음 만나는 순간의 ‘안녕.’부터 헤어질 때의 ‘고마워. 또 보자’까지 이름을 부른다. 리셉션부터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베트남 이름을 일일이 외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이 프엉 Mai Phương’, '란 응우옌 Lan Nguyễn', ‘응옥 호앙 Ngọc Hoàng’ 등 베트남어를 하는 내게도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T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이 불려진 이들은 늘 0.5도의 온기가 더해진 표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그녀를 누가 좋아하지 않을까.


이번 단톡으로 나는 더 이상 'Minh 밍'으로 불리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과 개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이름은 역시 제대로 부르라고 있는 것이라는 교훈도 함께 얻었다.


그러고 보니 12층에 사는 새하얀 솜뭉치를 닮은 한 살배기 강아지 ‘미키’네 아빠는 이름이 뭐였더라. 그들을 마주칠 때면, 늘 ‘미키’를 부르며 인사를 했다. 다음에는 그의 이름을 물어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하노이 필수템, 필터기! 걱정 필터기는 어디 없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