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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Mar 05. 2022

한국어로 공부하는 베트남어

혼자만의 설욕전                  일러스트BY하노이 민언냐

민뽕, 회사에 베트남어 현지인처럼 하는 한국사람 엄청 많디.

-마누라의 경거망동을 염려하시는 친절한 남편님-


깜박깜박 지이잉


전등이 나갔다. 깜박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전구 하나가 꺼진 것이다. 일주일의 꽃, 불타는 금요일 저녁이지만... 이런 불편은 또 못 참지. 남편은 곧장 리셉션에 전화를 해, 엔지니어를 부른다. 5분쯤 지나자 초인종이 울렸다. 무엇이든 뚝딱뚝딱 쉽게 고쳐내, 평소 맥가이버라고 부르는 아저씨가 왔다.


"Chị ơi, bây giờ không có đèn ánh sáng này. Nếu chị muốn thay đổi như đèn này, cần đợi chờ nữa."


"Ừ, bao lâu nữa ạ?"


"Không chắc , chị. Vị covid."


"찌(연상의 여성을 부르는 호칭), 지금 백열등은 없어요. 만약 이 등으로 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해요."


"얼마 나요?"


"코비드로 확실치 않아요, 찌."



그리고 전구를 보더니, 백열등은 없다고 한다. 코비드로 재고 확보가 어렵다니. 뉴욕 중심가의 아파트 월세에 맞먹는 레지던스가 백열등 하나가 없다니, 이게 할 소립니꺄. 하지만 분명 하노이는 그 어느 때보다 코비드가 빠르게 확산 중이다. 매일 역병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2월 20일만해도 하노이 확진자 수는 5,102 명이었는데, 어제 3월 4일에  21,395 명을 찍었다. 하지만 3 주만에 4배 가까이 늘다 보니, 모든 게 평소와 달라지고 있다. 레지던스 청소도 매일 하던 것을 주 2 회로 줄였고 상주 인력도 눈에 띄게 축소되었다. 우선 급한 대로 노란 등으로 교체했다. 이건 뭐, 전구의 믹스매치다. 등은 짝짝이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날이미 다른 이유로 으쓱해져 있었다. 그건 바로 베트남어다.

남편 앞에서 베트남어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며 뿌듯해한 것이다. 사실 그는 주재원 발령받기 전부터, 베트남어에 능숙했다. 하노이에서 이미 1년 반 동안 교육받으며 베트남어 자격증도 여러 개를 땄다. 베트남어로 소통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런 남편은 내 공부에도 동력이 되고 말이다. 이날은 그의 앞에서 그간 갈고닦은 베트남어를 한창 뽐내고 있었다. 대화를 끝낸내고 남편 향돌아보며, "자기뿡, 지금 한 말 이해했나? 통역해주까?"라며 잘난 척을 했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내리어깨를 들썩이는 포즈를 취하자, 그는 키득대며 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현실조언! 베트남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회사 직원들 예로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베트남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나, 남편!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베트남어를 죽도록 열심히 했느냐. 그건 아니다. 영어나 일본어에 비교하자면 그 노력과 들이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지에 살면서도 이렇게 속도가 나지 않는 것, 새롭다. 실력 향상이 더뎌지는 것에서 오는 조급함은 이미 뛰어넘은 지 오래다. 그저 평생 운동처럼 하려고만 한다. 쉬는 날은 있어도 그만두는 일은 없다는데 의의를 두는 것이다. 사실 나름의 이유? 변명? 뭐가 되었든 할 말이 있다. 영국과 일본에서는 혈혈단신 공부만을 위해 갔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코비드로 아이들이 온라인을 시작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주어진 자유시간이 적다는 것도 이유로 들 수도 있겠지.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날 붙잡을 노래('비' 동생의 꿀렁꿀렁 댄스를 추며).. 아니 멘털이다.



코비드라는 역사에 남을 특수한 상황을 맞이한지도 벌써 2년을 훌쩍 넘겼다. 또한 상황을 통제하는 정부의 힘은 실로 막강했다. 단칼에 나라 전체는 물론 날아다니는 비행기까지 올스탑 시킬 수 있는 사회주의가 아닌가.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체제에서 점점 더 자신이 소멸되어 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There are no two words than in the English language more harmful than 'Good job'."


"영어에서 가장 나쁜 말이 '굿 잡'이야."


-영화 위플래쉬의 플랫처 교수의 대사-



자족은 금물이라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바로 자족입니다요. 위플래쉬의 플랫처 교수는 굿잡만큼 위험한 게 없다고 알려주지만.. 지금 그딴 스파르타 스타일은 개나 줘버려~ 베트남어는 한걸음 다가서면 두 걸음 멀어지는 녀석이다. 물론 성조의 난관과 한국어는 물론 영어, 일어, 베트남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발음의 향연에 멘털이 탈탈 털린다. 그래서 가장 포기가 빠른 어학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 5개 중 10개!



학교에서 배웠듯 또박또박 느긋느긋 한 베트남어는 상상의 동물 '해태'만큼 드물다. 리스닝이 어려우니 당연히 스피킹도 어렵고 성조 하나에 전혀 다른 단어가 되다 보니 라이팅 또한 까다롭다. 그나마 리딩은 한자권인 우리가 추측으로 때려 맞추는 가능성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것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되는 거지 초급자에게는 어림없다. 읽을 때는 어떻게 넘겨짚었다고 해도 막상 발음을 들으면 다시 외계어화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간의 수고와 노력이 아까워서다. 이건 뭐 환불이 안되잖아요~ 베트남어를 향한 나의 애정은 일어나 영어와는 시작부터 달랐다. 방금 만난 커플의 격정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50년을 함께 한 노부부의 뜨뜻한 온정이랄까.

그리고 찾은 베트남의 로컬 서점, 영어책이라고는 하나 없는 백 프로 베트남 서적만 취급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한국어 교재를 발견했다. 물론 이는 베트남 사람들을 위한 한국어 교재다. 베트남인들을 위한 한국어 책이라니.. 보다 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특히 문화 소개에 갑분 노래방은 무엇? 확실히 노래방으로 회식을 마무리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긴 하지. 맥주와 안주를 흡입하고 칼로리 소모는 노래방의 막춤과 괴성으로 했던 과거의 나를 회상하게 하군. 그리운 시절이여~


다소 아쉬운 것은 첨삭된 사진들이 대부분 1990년대 같다는 점이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새색시라니. 오! 마이 아이즈! 마이 아이즈! 국민학교 나온 내가 봐도 너무 고전적이잖아. ‘그때를 아십니까~’ 내레이션이 떠오르는군요. 또한 대화 속의 이름은 또 어떻고? 주민 센터의 견본에나 존재할 법한 '홍길동'이라니, 문화 충격이다.

찬찬히 책을 읽다 보니 또다시 란다. 한국어를 베트남어로 해석된 부분에서 꽤 많은 오류가 발견된 것이다. tiện nghi는 ‘편리한’이란 뜻이지만 편안하다로 해석이 되어있다. 이외에도 여러 단어들이 부자연스럽다. 이거 입이 근질근질한 걸.. 신고정신이 끓어오른다. 내가 베트남어만 더 잘했다면 당장 전화를 했을 테다. 그래,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해서 화끈하게 지적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것도 바로 남편 앞에서 해주마. 결국 주제별로 단어가 정리된 교재를 샀다. 가장 최근에 출판된 녀석으로 말이다. 가격은 218,000 동으로 만 원을 조금 넘는다. 교재는 많으니 다시 한번 베트남을 향한 열정을 불 태울 차례다. 남편을 향한 혼자만의 설욕전도 말이다.



P. S. 요즘 베트남으로 진출하는 한국기업이 많아 취업을 위해 한국어과가 증설되는 등 한국어는 한마디로 아주 핫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나 가수들의 인기가 워낙 뜨겁다 보니 취미로 공부하는 이들 또한 많다. 아주 바람직하다. 하지만 교재들은 아쉽다. 한국어를 위한 바른 지도서가 얼른 생겨나길 바란다.

사실 교재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은 한국 교재만은 아니다. 외국인을 위한 베트남어 교재 또한 그 선택의 폭이 매우 좁다. 내용이나 문화 소개 등의 지문들은 업데이트가 잘 되지 않아 지루한 경우도 많다. 좋은 교재를 찾기가 어렵다 보니 학습이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라도 괜찮은 교재가 있다면 추천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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