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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May 09. 2022

격동의 2년 반, 한국인의 한국 문명 체험

신문명에 놀란 한국인들       일러스트 by하노이민언냐

“민뽕, 니 눈이 너무 낮아진 거 아니가??”


하노이의 외국이라고 불리는 호떠이에 사는 나는 점점… 눈이 발로 떨어지며 촌시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옷장을 깔 별 가죽 쟈켓과 망사 스타킹으로 가득 채우던 민이 말이다.

하노이에서 일본인 거리 하면 ‘낌마’, 한인 거리는 ‘미딩’ 그리고 외국인들이 집중되어 있는 ‘호떠이’가 있다. 하루는 남편이 40분 거리의 한인타운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 집에서 멀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곳이다.


 그래서일까. 너무 들떴다. 눈이 휘둥그레져 쇼핑 아케이드를 두리번거리며 꺅꺅 거리며 방방 뜬 나를 보고 남편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걱정의 한마디를 던졌다. 분명 2년 전, 이미 온 적이 있다고 말이다. 그때는 콧방귀 뀌며 불평을 했다고 한다. 내.. 내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쇼핑 아케이드를 싫어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2년 전이면 하노이로 온 지 고작 6개월 되었을 때다. 그때만 해도 대도시의 때를 벗지 못했다. 하노이의 비포장 도로에서도 힐을 신고 다녔다면 말 다한 거다. 온도 차이가 격했음을 인정한다.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투덜댔던 나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눈을 다시 끌어올려야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람의 앞날은 모를 일이라는 실감을 이렇게 한다. 그때의 민! 반성하라!

그리고 지난달, 2년 반 만에 방문한 한국은 생각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20년도 아닌 고작 2년 반인데 뭐가 그리 다를까 싶었다. 하지만 구정에 일본을 잠시 다녀온 일본인 친구 ‘ㅁ’ 또한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면 계산을 할 때였다. 그녀는 계산을 위해 카운터의 직원에게 카드를 건넸다. 하지만 직원은 카드를 받지 않았단다. 그녀의 손은 더듬더듬 갈 곳을 잃었다. 직원은 그런 그녀에게 오히려 갸우뚱해하며 카드를 기계에 꽂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일은 내게도 일어났다. 그것도 도착한 첫날 인천 공항에서 말이다. 이 현상은 단지 일본이나 한국에만 국한된 건 아닌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의 영향으로 바뀐 게 많아진 것이다. 물론 하노이에서는 여전히 비접촉 계산방식은 통하지 않고 손에서 손으로 직접 전하는 아날로그식이다. 정겨운 손끝 터치는 덤이고 말이다.


“ 우와~ 엄마! 이거 봐라! 바닥에서 불빛이 난다. 우와~”


하지만 우리는 더욱더 역동적인 한국의 변화에 함성을 지르곤 했다. 하루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니, 쭌이와 쩡이가 신이 나서 말했다. 대기선에서 찬란한 불빛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우왓~ 이건 내가 봐도 멋진 일이다. 바닥에서 나오는 초록 그리고 빨강의 조명이라니. 이건 듣도 보도 못한 태권브이 본부급의 스케일이 아닌가. 땅이 열리고 지하 본부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아이들도 나도 신이 나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역시 한국은 다르다며 우주여행이라도 온 듯 들떴고 말이다.


우리는 남편의 숙소, 친정 부모님의 집 그리고 아파트(물론 지금은 친언니가 잘 관리하며 예쁘게 살아주고 있다.)를 번갈아가며 지냈다. 지겨울 틈 없이 없었다. 1박 2일의 캠핑 및 남해, 부산 여행으로 호텔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던 여행지 중 한 곳이 바로 부산의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명지였다. 예전과는 180도 달라진 명지는 신도시로 고층의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이건 어릴 적 공상 만화에서만 보던 미래도시다. 6차선 대로는 기본, 각종 쇼핑센터와 멋진 레스토랑, 커피숍으로 가득했다. 분명 과거의 명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 호텔 주위를 한 바퀴 돌며 턱이 아래로 떨어질 만큼 놀라운 곳을 발견했다. 무인 가게가 있다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로봇이 진정 바리스타를 대체할 날이 오다니! 뉴스나 영화에서만 보던 것이 현실화가 되어있었다. 쩡이와 쭌이는 로봇이 혼자서 커피를 타고 판매하는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조식을 배 터지게 먹고 나와 모두 D자 배가 되어있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구경하며 로봇을 보느라 소란스러웠고 나는 그런 아이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로봇 바리스타 씨의 커피와 음료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입맛이 까다로운 쩡이는 암바 싸와 사이다가 섞인 듯한 음료를 아주 좋아했다. 한 잔을 시키면 두세 모금에 버리는 경우가 많은 쩡이가 이렇게 극찬을 하는 것을 매우 드문 일이었다. 로봇 바리스타님! 굿잡! 쩡이는 지금도 음료가 맛있었다며 또 마시고 싶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로봇 카페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모퉁이를 도니 무인 스낵코너도 있었다. 진정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하나둘씩 대체하는 시대가 온 건가. 주전부리를 파는 가게로 평소 짭짤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잠시 들렀다. 캠핑을 가기로 했기에 주전부리는 필수다. 계산 방법을 친절히 안내해두었지만.. 기계치인 내가 척척 해낼 리가 없다. 카드를 들고 우왕좌왕하는 날 구원한 건 초딩6학년, 쭌이다. 역시 아빠의 엔지니어의 피가 네게도 흐르는구나. 차근차근 계산을 끝내고 1.5배 넓어진 콧 평수를 하고 의기양양해진 쭌이! 자존감을 무인가게에서 높이는 아들아, 너 좀 귀엽구나.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쯤, 다시 짐을 줄이고 싸야 했다. 물론 베트남에 있는 몇 명의 친구들에게 줄 선물도 함께 말이다. 하지만 이미 옷가지와 아이들의 운동화 등으로 가방은 이미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상태였다. 이건 다시 이민을 가는 규모라며 혀를 내둘렀다. 신은 손길이 못 미치는 곳에 엄마를 보냈다고 했던가. 그때, 친정 엄마의 구원이 현실화되었다. 실제 70대지만 액면가 60대인 슈퍼 동안, 친정 엄마는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연예인 마스크를 다량 보유하고 계셨던 것이다. 늘 워셔블의 천 마스크는 콧잔등에 실밥이 터지고 있던 참이었다. 이것은 정녕 신의 선물이다. 마스크를 착용해봤더니 일명 ‘새부리형’으로 얼굴이 홀쭉, 갸름해지는 것이다. 이건 성형수술보다 더 혁신적인 비주얼 향상이다. 이 마스크와 함께라면 ‘마기꾼’(마스크와 사기꾼의 합성어, 이번에 알게 된 신조어다.)이 되고도 남는다. 분명 베트남에는 아직 없는 마스크다. 컬러 또한 톤 다운되어 동양인의 피부톤에 착붙이다. 다양하고 종류도 여러 가지더라. 숨쉬기 좋고 보기 좋은 마스크라니, 이것은 분명 통한다! 주저 없이 3팩을 받아 이리저리 캐리어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하노이에서 열열한 반응을 얻고 있다. 마스크 한 장으로 레지던스 직원들은 너도나도 즐거운 반응을 보였다. 한 직원은 타사 마스크와 비교하며 장문의 피드백을 보내오기도 했다. 꼼꼼한 그의 메시지에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들었다. 일본인 친구들은 물론 유러피안 친구들도 꾀나 좋은 반응을 보인다. 분명 코로나 시대를 사는 지금, 마스크는 제2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기술과 위엄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진화하는 코리아에 박수를 보낸다.

우와 우와 하며 탄성만 지르다 베트남으로 돌아온 호떠이 촌시리들에게도 하노이에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년 뒤의 한국은 또 어떤 진화로 우리를 뒤흔들 것인가. 매일매일이 역동적인 한국! 기대가 된다. 파이팅,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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