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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May 11. 2022

하노이를 향한 뜨거운 세레나데

하노이 예찬가.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수줍은 소녀의 얼굴과 중후한 여성의 향기를 동시에 품은 그녀.


오토바이로 깔깔거리며 소란을 피우다가도 꽃으로 어여삐 단장한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 잔잔한 호수를 끼고 앉아 형형색색 조명에 반사된 얼굴을 드러낸다.


하노이! 그녀는 아름답다.

하노이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바로 좁은 골목들이다.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길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어 더 신비롭다. 그중에서도 호떠이가 최애 동네다. 호떠이는 이른바 하노이의 외국이라 불릴 정도다. 뭐든 다 있는 한인타운, 경남이나 미딩과는 딴 판이라 스테이케이션을 즐기러 오기도 한다. 한식당에 자주 갈 일이 없어 미딩의 고깃집을 가면 입이 벌어져라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는 나와는 온도 차이가 있다. 분명 하늘 끝까지 치솟는 나무들이 가득한 호떠이를 보고 있으면 불멍이 아니라 나무 멍이 하루 종일 가능하다. 베트남은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호떠이는 요즘 하노이에서도 땅값이  빠르게 상승 중인 핫플레이스로 손꼽힌다. 외국인 거주자들이 많다 보니 물가가 높은 건 물론 커피숍이나 식당들이 코로나의 타격을 피할 수 있다는 것도 한 몫했다. 그래서 많은 건물을 헐고 새로 짓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가게가 업종변경을 한다. 그리고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도로 공사도 이루어진다. 그 덕에 늘 먼지바람이 불어 서부영화를 방불케 하기도 한다.

​4-5월은 하노이와 친해지기 딱 좋은 날이다. 공기 오염도가 낮고 더위나 자외선도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2년 반을 살지만 나그네를 자처하는 ‘민언냐’는 구석구석을 돌며 원정을 떠난다.


하노이의 가장 좋은 점은 우연한 발견의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풀내음 물씬 나는 호떠이는 모던함이나 편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아날로그적이다 못해 주먹만 한 개똥이 친구야 하며 우리를 따라다닌다. 소녀처럼 생동감 넘치고 변화무쌍한 도시인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적지 않다. 바로 이날도 그런 매력을 발견한 하루였다.

베트남은 열 발자국 걸으면 카페 간판이 있을 정도로 커피의 천국이다. ‘퍼’(phở, 베트남 쌀국수)만큼이나 많은 게 꽃과 카페인 것이다. 카페 투어를 취미로 하는 나는 어쩌면 하노이에 최적화된 일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퍼먹고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고 길 위의 자전거 상인에게서 꽃을 사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번 주부터 새로운 베트남 선생님을 만나 수업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수업이 길어져(물론 수다가 70프로다.) 돌아보니 멀리 나갈 시간이 없었다. 하여 우리 동네인 호떠이의 카페를 검색했다. 기사님에게 주소를 넘기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갸우뚱하는 표정이다. 예상대로 빙글빙글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비슷한 풍경이 계속 연속되고 자전거 타는 할머니와 속도가 비슷해진다는 건.. 길을 헤매고 있다는 증거다. 급하게 한 손으로 창문 닫다가 미쳐 빼지 못한 반댓손을 세차게 찍어본 적이 있는가? 냉장고의 채소 칸에 과일을 넣고 문을 바로 닫는 바람에 닫히지 못한 채소 칸이 빠각하며 박살난 적은? 그게 바로 나다. 기다림은 1분도 허락하지 않는 나노급 참을성의 소유자다. 하지만 기사님의 방황에는 익숙하다 못해 관대하다. 길을 잃어 당황하는 기사에게 “콩 사오.”(Không sao.”) 괜찮다는 말을 연발하며 우월감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장소를 가는 희열감에 우쭐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한적한 주택가의 골목을 가는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게들이 하나둘씩 눈에 띈다. 그렇게 두 번째 바퀴를 도는 순간, 보고야 말았다. 보물섬을 말이다. 노오란 페인트로 ‘Victory CD & RECORD’라고 쓰인 간판이 펼쳐졌다. 볕 좋은 날, 발견한 음반 가게에 눈이 띠용~ 하는 순간이다. 엘피 판은 물론 2000년 대 이후로 만나보지 못한 테이프까지! 이건 뭐 추억으로 빠져들다 못해 눅눅하게 젖어버렸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가게를 습격했다.


한창 대학 입학하고 록 밴드 동아리 생활을 하던 나는 결국 1학년 2학기에는 학점이 바닥을 쳤다. 학사경고는 면했지만 재수강할 과목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그 세월을 함께 하던 스웨이드 Suede의 앨범을 발견하고 기쁨의 셔터를 누른다. 존 레넌부터 지미 헨드릭스까지 없는 게 없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10대는 음악으로 가득 다. 그 흔한 H.O.T. 나 여섯 개의 수정, 젝스키스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이돌의 시초인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U2나 레드핫칠리페퍼스, 메탈리카에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용돈만 생기면 죄다 테이프와 시디를 사는데 쏟아붓고 댄스 가스의 춤보단 헤드뱅잉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음악 잡지 속 임진모의 칼럼을 읽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 게 행복했던 나는 결국 고 1 때는 친구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펑크 밴드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요즘에는 힙합이지만 나의 고딩시절은 메탈리카, 퀸, 너바나, 스매싱 펌킨즈 등의 록그룹의 일렉기타 소리로 점철되어있었다.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던 중 섹스 피스톨즈의 테이프를 숨어서 듣다가 선생님께 걸려 호되게 혼나고 압수당했던 떠오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담임선생님께 학원을 다닌다고 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꼬박꼬박 기타 학원에 출근 도장을 찍 기억이 아련하다. 콘서트 시험기간 함께 이뤄진다는 진리를 그때 깨달았다. 윤도현 밴드, 자우림 밴드, 크라잉 넛의 공연을 빼놓지 않고 다녔다. 노브레인의 영향으로 꾀나 센 이름인 ‘18 밴드’로(당시 우리는 낭랑 18세였다.) 짓자고 하자 한 친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금 그 친구는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주일마다 교회를 간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로 성실하게 살고 있고 말이다. 결국 우리의 밴드 프로젝트는 결성은커녕 이름만 짓다가 저 멀리 사라져 버린다. 비 오는 날이면 운동장으로 진격하고 뛰어다니던 락 스피릿도 대입의 문턱에서는 흐지부지 해졌다. 고3이 되고 보니 앞머리 한 가닥까지 바짝 당겨 올려 묶은 수험생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길이이었다. 그때 만일 내신 성적에 당락이 좌우되었다면 우리는 대학을 입학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그 친구와는 ‘니가 낫네, 내가 낫네.’ 하는 식의 철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연락하고 지낸다. 지금도 그때의 얘기를 하면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이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테이프를 쥐자 옛날 감성이 되살아났다. 분명 베트남 가수의 테이프겠지만 호기심에 들었다 놨다가를 반복했다. 기념으로 한 번 사볼까 고민을 했지만... 결국 음악 취향이 확고한지라 내려놓고 왔다.


긴 원피스를 입은 나이 지긋한 여자 사장님의 시선에 흠칫 뒤로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녀 또한 재빠르게 먼 곳을 응시했다. 저녁이 되면 가게에 놓인 통기타를 쥐고 멋진 연주와 노래를 할 것만 같은 아우라의 사장님에게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카를라 브루니의 최근 앨범과 앤더슨 팩 등 평소 즐겨 듣는 아티스트의 앨범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반 헷 조이.”( Bán hết rồi.), 다 팔렸다는 말 뿐이었다. 찾는 것마다 번번이 팔렸다는 답을 듣고 처음부터 입고되지 않은 건 아닌지 합당한 의심이 들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래도 갬성 갬성 한 하노이의 오후를 보내지 않았는가.

사실 아침에 확인한 첫 기사가 '애플에서 더 이상 아이팟을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한때는 아이폰과 아이팟을 목숨처럼 아꼈다. 디지털 음악 세대를 선도하던 아이팟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왠지 울적했다. 뚜벅이 시절에 분신 같은 존재였기 때문일까. 모두가 열광하던 싸이월드에도 큰 감흥이 없던 나였다. 하지만 아이팟 단종 소식은 다르다. 잊고 있던 첫사랑 이야기처럼 가슴 저릿함을 느낀 것이다.(실제로는 첫 연애 상대와 결혼한 1인이다.) 하지만 여기, 하노이에는 여전히 예쁜 레코드 가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존재만으로도 깊은 위안을 받은 건 하노이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아이팟 단종 기사

 커피라는 글자와 작은 의자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니 분명 커피도 가능하다. 융통성 넘치는 멀티플레이어, 역시 베트남이다. 다음에는 커피를 마시러 와봐야겠다. 나무 그늘 아래 작은 의자는 햇볕 좋은 오후를 보내기에 딱 들어맞는 조건이지 않은가. 따뜻한 햇살 아래 게으름이 숙명인 양 늘어진 고양이가 되어보리라 결심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호떠이 어딘가에서 아무 일 없이 작은 의자에서 커피를 호로록 거리는 이를 본다면 아는 척해주길! 바로 하노이 민언냐다.


P.S. 알고 보니 호안끼엠에도 같은 이름의 레코드 가게가 있다. 아무래도 체인의 냄새가 난다. 가격은 오래된 앨범들은 만 원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인기 있는 베트남 가수의 따끈따끈한 신보는 만 원을 넘는 가격이었다. 외국 명반은 대부분 있는 편이지만 역시나 최신 앨범을 기대해 보기는 어렵다. 다음에는 베트남 가수를 좀 더 알아보고 앨범을 사러 가볼 셈이다. 생각해보니 최근에는 시디를 사지도 듣지도 않은 채 살고 있다. 핸드폰이나 패드의 작은 스피커가 아니라 시디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수고를 해볼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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