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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May 15. 2022

대사관은 ‘대사’만 처리하나요?‘소사관’도 필요한 우리

여권의 행방                일러스트by하노민언냐

대사관.  Embassy, 大使館


대사관은 대사가 주재국에서 직무를 보는 기관이다. … 중략… 그뿐 아니라 사증과 증명서를 발급하고 자국민을 보호하며 문화 교류 활동, 타국 정보 수집 활동, 국제회의와 교섭 준비 등의 업무를 실시한다.


“Excuse me, Mrs. M. May I ask you something?”


로비의 직원 중 가장 신입인 H였다. 평소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하며 업무처리가 빠른 그녀가 부탁이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온 한국인 투숙객이 영어가 통하지 않아 곤란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여권에 문제가 있다며 계속 로비에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고 있다고 했다. 요점은 통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문명의 선물, ‘구글 번역기’가 있지 않은가. 오지에도 웬만해선 와이파이가 다 있는 21세기다. 하물며 널리고 널린 게 공짜 번역 앱이고 말이다. 하지만 한국인 동포가 난처한 상황이라니, 기꺼이 도와야지. 원래 없던 애국심도 해외에서는 폭발하는 게 진리다.


이날은 텅텅 비어버린 냉장고에 케이 마트가 시급했다. 그래서 장을 신나게 보는 중이었다. 종** 김치를 할지 비** 김치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던 중 리셉션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일전에 부탁한 통역 때문이었다. 밖에 있으니 직접 이야기할 수 있도록 전화를 바꿔달라고 했다. 하지만 통화 상태가 좋지 않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결국 서둘러 레지던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양손 무겁게 식재료를 짊어지고 로비로 돌아오자, 직원 세 명이 마치 구원자를 보듯 뜨겁게 환영했다. 열렬한 환대에 어리둥절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했는지 말이다.


"Excuse me, Mrs. K! Mrs.K!"


한국인 분은 여섯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한국말을 하자 신기한 듯 주위를 빙글빙글 뛰어다녔다. 그리고 아이 엄마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로비의 한쪽에 앉아 있었다. 리셉션에서 이름을 불러도 미동을 하지 않아, 직접 한 직원이 안내를 했다. 그녀가 첫걸음을 떼는 순간, 직감했다. 지금 여권이 아니라 구급차가 더 시급하다고 말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는 듯 보였다.


이건 긴급상황이다!


그녀는 시선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현기증을 호소하며 쉴 새 없이 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직원에게 병원부터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도움이 시급했다. 긴급연락처가 있는지 물었지만 그녀가 써낸 종이의 숫자들은 다빈치 코드만큼 불확실했다. 전화 통화를 권하자 핸드폰의 잠금해제를 시도하는 그녀! 하지만 온몸의 심한 경련 때문에 화면의 잠금해제조차 연속으로 실패하고 있었다.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냐고 리셉션 직원에게 물었다. 택시를 불러 병원까지 데려다줄 수 있지만 그들이 도울 수 있는 건 거기까지라는 매니저! 직원들 또한 일을 해야 하니 그녀와 아이들을 대동하고 장시간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기증과 호흡 곤란을 호소하던 그녀는 병원을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두고 가고 싶다고 했다. 순간 고민에 빠졌다. 20분 뒤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각이다. 더욱이 ㅍ네 아이들과 함께 옆 건물의 실내 수영장에서 수업이 있다. 이날은 내가 픽업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럴 때는 대체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세 글자!


 대! 사! 관! 


해외 출국을 하면 가장 먼저 오는 문자가 대사관의 긴급 연락처가 아닌가. 그냥 흘려 읽던 대사관의 긴급 연락망을 직접 찾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인터넷을 검색하고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분명 신호는 가는데 응답이 없었다. 응답하라, 대사관이여! 다른 번호도 시도했다. 하지만 역시나 쉽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른 번호로 번갈아가며 시도한 끝에 겨우 남자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렐루야!


“여보세요?”

“네, 여기 한국분이 계신데, 몸이 많이 안…”

“위치가 어딘가요?”

“네, 여기 주소가…”

“일단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금방요?

“네, 담당자가 연락드릴 거예요.”

“……”

“다시 전화가 갈 거예요.”

“… 알겠습니다.”


'금방'이라니.. 수차례 전화를 한 끝에 받은 답이 고작 금방이라니…  ‘금방' 대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1분? 3분? 10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래 시간이라는 건 상대적 법이다. 유튜브를 시청하는 5분과 러닝머신 9.0 속도에서 달리는 5분은 완전히 다르지 않나. 성과 없이 전화를 끊고 다시 뒤를 돌아본다. 그녀는 의자에 힘이 풀린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리셉션 직원들은 애초에 문제의 발단인 ‘여권’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상황은 이랬다. 체크인하는 날, 세 명의 여권을 복사하고 아이들 엄마의 여권을 제외하고 아이들 여권은 돌려줬다. 그리고 체크아웃을 하는 당일에 그녀의 여권도 주었고 말이다. 리셉션에서는 분명 모든 여권을 다 돌려주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딸의 여권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다시 한번 찾아볼 것을 조심스럽게 권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루 종일 찾았고 분명히 주지 않았다는 말만 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설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권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발이 달려 퍼를 먹으러 갔을 리도 만무하다. 여권의 행방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살인사건 급이다. 보안팀의 CCTV 영상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었다. 결국 영상을 전송받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다시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네, 여기 한국분이..”


이하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정확히 같은 내용이다. 조금 다른 거라면 나의 목소리가 8피트에서 16피트로 빨라졌고 ‘미’ 톤에서 ‘솔’ 톤으로 바뀐 정도다. 그리고 다시 같은 흐름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니, 전화가 ‘끊긴 거’라고 해야 맞겠다. 그렇게 한 번의 전화가 더 오고 세 번째 통화에서는 젊은 여자 직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만 바꿔가며 전화가 오니 같은 내용을 반복하게 된 건 설명 안 해도 알겠지. 이건 ‘래퍼 민’으로 데뷔해도 손색이 없다. 같은 가사와 리듬을 주고받는 우리는 막 결성된 환상의 듀오입니꺄? 대답은 늘 같았다. 문제의 단어, ‘금방’이 다시 나오고 있었다. 직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되물었다. 그 ‘금방’이 대체 언제냐고 말이다. 결국 ‘지금 당장’, ‘롸잇나우’ 전화를 달라고 급발진하고 만다. 결국 지금 바로 전화를 달라고 한 덕분인지 이번에는 1분 만에 연락이 다시 성사되었다. 조금 전 통화한 직원이었다. 그녀는 중요한 회의가 있어, 직원이 나가지 못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뭐.. 뭐라굽쇼?


포옹~!


여러분은 지금 분노 수류탄에 핀이 빠지는 맑고 고운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분노감정 폭발! 무장해제! 감정수업을 위해 읽어온 수많은 심리학 서적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스쿨존 속도로 감정을 다스리는 삶을 지향했건만, 시속 100킬로 아니 200킬로 훌쩍 넘긴 지옥의 레이싱을 달리게 한다. 그리고 랩을 시작한다. 재빠르게 로비에서 나와 본격적인 부산의 거친 억양을 선보였다. 직원은 주춤하며 ‘아, 음, 저, 그..’ 외마디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지금 전화만 붙잡고 기다린 지 30분이 지났거든요. 같은 말만 반복했어요. 긴급 상황입니다. 당장 쓰러지실 것 같다고요. 뭐 어떻게 비디오라도 찍어 보내드려야 하나요?”

“아, 그럼 그렇게 주시겠어요?”

“네에?… 진짜 비디오를 찍으라고요?”


터져 나오는 한숨과 허탈한 웃음! 이런 뜨거운 감정, 정말 오랜만이다. 화끈거림이 뒷목을 타고 얼굴까지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직원의 답변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아서 녹음기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있고 바빠서 직원이 나올 수 없다는 식이다. 사실 한국 대사관은 레지던스가 위치한 호떠이의 바로 옆동네인 시푸차에 있다. 차로 15분이면 충분히 올 수 있다는 뜻이다. 거친 항변 끝에 결국 6시 반이 되어서야 직원이 올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3시간은 더 남은 시간이라 게운치 않았지만, 이게 최선의 답이었다. 그리고 리셉션 직원에게 전화를 넘겼다. 해당 여권번호, 영문 스펠링 등을 대사관 직원에게 전달하고 마무리되는… 듯했다.

아차, 여기서 우리는 다시 문제의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여권 문제가 남았지. 긴 통화 끝에 로비로 돌아와 보니 그녀는 의자에서 계속 여권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초반보다 더 격렬히 말이다. 드디어 리셉션 직원은 보안팀으로부터 CCTV 영상을 전달받고, 함께 확인해 보기로 했다. 물론 나도 함께였다. 화면을 자세히 보니 직원의 말이 맞았다. 체크인하던 날, 데스크에서 킵한 여권은 단 하나! 그리고 체크 아웃을 하는 당일 오전에 그 여권을 돌려주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던 그녀 또한 체크인 당시 담당 직원과 3분 정도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휘청거리며 허공으로 360도 돌리던 시선 또한 의의를 제기할 때만큼은 총기로 반짝이고 있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여권의 행방에 얽힌 미스터리는 의외로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에게 슬쩍 귓속말로 베트남어를 했다. 그녀의 몸상태가 괜찮아진 것 같다고 말이다. 매니저 J도 내 생각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졸도할 만큼 휘청대던 그녀는 이내 전력으로 컴플레인을 하고 있었다. 화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직원과 내가 번갈아가며 자세히 손으로 짚어가며 여권의 행방을 쫓았다. 하지만 그녀는 더 화를 낼 뿐이었다. 화면을 뺏아가고 자신의 방향으로 틀더니 급기야 나와 직원의 손을 쳐냈다. 코로나 시대에 이런 접촉은 적절하지 않은데 말입니다. 결국 그녀는 대상이 모호한 반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누구를 향한 반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그녀는 활력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찾아보시죠?”

“없! 어! 요!”

“가방 바닥이나 깊숙한 곳에 꽂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갖고 계실 수도 있겠는데요.”

“아니, 여권 안 줬다니까..(말끝을 흐리며) 이거 봐, 직원이 안 줬다니…”


그리고 손을 매고 있던 크로스백의 앞주머니로 넣었다. 가진 여권이 둘 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결백함을 주장하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두 개만 있어야 할 초록 수첩이 ‘하나, 둘 그리고 셋’이 보였다. 분명 세 개째의 손바닥만 한 여권의 형색을 한 녀석이 보였다.


“그거 아니에요? 그 옆에 하나 더 보이는데요? 그 초록색 수첩?”

“어…어? 여기 있네?”


황망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지. 내 평생 이렇게 절절히 황망함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민망했는지 스프링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Mrs. K!


“드시 츠즈스 드흥입니다. 즐그은 여행되세요.”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다시 찾아서 다행입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초인적인 참을성을 발휘하며 돌아섰다. 그녀의 전에 없는 명확한 말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작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를 말하는 게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쪽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분 1초도 더 있을 수 없을 만큼 피로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때마침 아이들의 스쿨 버스가 레지던스 정문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이들의 귀가가 이토록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사실 베트남에 살면서도 대사관에 갈 일은 없었다. 재외동포의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한 번 들린 것을 빼고는 말이다. 어찌 보면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본인과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잠깐 했더니 대사관의 느린 일처리는 유명하다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국적은 다르지만 함께 푸념을 하고 위안을 받는 묘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하루는 헬스장에서 만난 포르투갈에서 온 J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베트남 포르투갈 대사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파키스탄, 터키, 인도, 일본, 미국 등은 본 적이 있는데 포르투갈은 기억에 없다. 그래서 여권이나 비자 등의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프랑스 대사관으로 간다고 한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대사관은 정상회담 같은 그야말로 ‘대大‘사만 하는 곳이냐고 열을 내던 나였다. 자국민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미팅’때문에 도울 수 없다는 식의 태도에 불평을 쏟아냈고 말이다. 그렇게 대사관을 향한 반감이 하늘을 찌르던 나는 잠시 주춤했다. 어쩌면 도움을 요청하고 전화를 걸 대사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까. 불평할 수 있는 대상이 우리에게는 있으니 말이다.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 자국의 대사관이 없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분명 쓸쓸한 일이겠지.

그 뒤로 Mrs.K와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매니저 말에 따르면 대사관으로부터 연락도 없었고 한국인 직원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큰 사고 없이 잘 지나갔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하지만 여전히 그날을 생각하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대사관의 직원들은 정말 중대한 업무가 많고 바빴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 또한 여권을 못 찾아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굴렀고 말이다. 나중에 따로 신고가 되어 직접 통화하고 무사히 일이 마무리되어 레지던스로 연락을 다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로 긴급상황 축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2년 6개월의 베트남 생활에서 듣지도 못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내게도 이런 긴급한 일이 생겼다면 어땠을까. 베트남어도 영어도 못하고 비상연락망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 왔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해외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대사 말고도 소사도 신경을 써줄  있는 소사관도 필요하다. 그리고 누구 하나 곤란한 일이 없이 무사히 해외여행, 해외 생활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이스! 손가락을 하늘 높이 ‘브이자로 치켜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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