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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10회 삼봉-대덕산

06년 1월 7 - 8일

                  1/7    22:00    신도림 출발

                  1/8    04:00    빼재(930)출발(726번)

                           04:20    수령봉

                           04;50    된새미기재

                           05:30    호절골재

                           05:50     삼봉직전 봉우리-오른쪽 금봉암

                           06:00     삼봉산(1264)-덕유 삼봉산-동쪽 크게 돌아 급전직하   4.35km

                           07:20     소로길

                           07:30     소사고개(1089지방도)-아침식사,휴식                       3.1km

                           08:20     출발     

                           09:50     초점산(1248, 대덕삼도봉)-                                     3.25km      

                           10:00     안부 갈림길

                           10:30     대덕산(1290)-얼음골 약수터(30분)                           1.45km

                           12:10     덕산재(640) 김천 대덕-무주무풍  (30번 구도로)          3.05km

                           12:40     833봉

                           12:50     임도공터(페광터) -소로길-13:25 삼거리 안부

                           13:50     853봉

                           14:40     부항령(690) 김천부항-무주무풍 (1089번지방도)          5.3km 

                                                                       총  10시간 40분            20.5km 


삼도봉 상고대


1월 7일_토_22:00

 3주 연속 설산 대간의 마지막 구간을 나선다. 이번 달은 구정이 끼고 새해 첫날 산행이 중간에 끼어들어 꽤 힘든 스케줄로 진행되었으나, 연말연시에 술자리를 피해 가며 체력을 유지한 탓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오늘만 잘 버티면 한 달 정도 휴가다. 다음 산행 전에 어디 따뜻한 곳으로 가서 한 열흘 지내고 싶다. 지난주 새해 일출 삼도봉에 동행하여 힘들었던 물푸레는 걱정스레 도시락을 챙긴다. 포항 친구가 보내온 과메기를 비닐 통에 정성스레 담아 산행 친구들께 전해주길 부탁한다. 

 함께 일하는 직원의 장인이 황당한 의료사고로 어젯밤에 운명을 달리하여 맘이 무겁다. 어제 아침 출근길에 명동 백병원에 들러, 일주일 전 진행된 수술이 경과가 좋아져 가족들도 면회하고 몇 시간 후 일반 병실로 옮긴다고 기뻐하던 직원이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창백해진다. 중환자실에서 기도에 설치했던 산소호흡기가 빠져 뇌사상태로, 결국 어제 자정을 넘기질 못했다. 사회 조직들 중에서 인간 생명을 취급하는 병원이라는 시설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오늘날의 제각각 위치가 매우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빈소도 차리지 못한 채 월요일 국과수 부검을 기다리는 어린 가족들의 심중이 내 속으로 아려온다. 

 소한 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린다는 일기예보에 걱정도 앞서지만, 선자령으로 떠나는 산케들이 내일 눈꽃 산행을 즐기지 못함이 아쉽다. 마지막 덕유 자락을 향해 무주 I.C. 를 벗어난 산행 버스가 설천 쪽을(37,30번 도로) 거치지 않고 적상산 아래(727) 구천동 터널(49)을 지나고, 무주리조트와 상오정을 거쳐 빼재에 조용히 멈춘다.(37번, 설천-거창)(02:00) 출발 전 신도림역 앞에서 해장국에 이슬이도 한잔 했건만 여러 생각에 잠이 잘 오질 않는다. 부디 오늘 산행길이 어렵지 않기를 기대하며 대간 구간 중 전라도의 마지막 공기를 마시려 밖을 나서니 하늘은 맑지만 찬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바람막이를 한 벌 더 걸친다.  

어둠 속의 삼봉산 암릉

1월 8일_일_04:00

 만만치 않은 바람 속에서 휴게소 앞 도로 맞은편 급사면을 치고 오르니 시작부터가 간단치 않다. 설마 하며 아이젠 착용을 미루었다가 된 오름에 몇 번 미끄러진 후, 십여분 만에 바람막이를 벗고 아이젠을 착용하니 이미 선두 조의 불빛이 사라졌다. 대간 주능선에 오르기까지 힘든 워밍업을 끝내고 나니 좁은 오솔길의 잡목 가지가 앞을 가린다. 심설 러셀 산행에 2주 연속당한지라 싸리 잡목이 제일 무섭다. 다행히 이번 구간은 제법 러셀이

잘 다져지고 마루금이 잘 이어져 편할 것 같긴 한데 대간 길에 편한 구간 없다는 듯이 북사면에서 올라오는 강풍에 몸이 밀릴 지경이다. 

 제발 아침 기온이 급강하 하지만 않는다면, 섣달 초순의 어둠 속에서 별빛마저 차갑다. 평탄한 능선길에서 오른쪽 고제면 화려한 불빛은 따라붙는데 왼쪽 수정봉(수령봉)은 어둠 속으로 자태를 숨긴다. 된새미기재를 지나고 긴 잡목 숲을 헤치고 나가니 전망이 트이며, 내리막을 내려서서 헬기장에 다다른다.(호절골재, 05:10) 선두 조는 세찬 바람 탓에 후미를 기다리지 못하고 휴식도 없이 계속 삼봉산으로 향한다. 오늘따라 선두의 걸음이 빠르게 느껴진다. 예상보다 20여분 빠른 통과 시간을 기록하며 시린 손을 주머니에서 녹여본다. 

 정면 오르막길을 정신없이 내달으니 작은 바위봉이 나타나고(05:50) 코앞에 삼봉산 제1봉이 어둠 속에서 육중하게 다가온다. 오른쪽 어디엔가 있을 법한 금봉암의 자취는 어둠 속에서 사라지고 멀리 봉산 마을 불빛만 또렷이 반짝인다. 옹기종기 저 작은 불빛 아래서 대 여섯 자식 키우느라 농사일로 손 발 부르터든 그님이 무슨 연유로 환갑도 채 넘기기 전에 하늘로 불려 가야 할 운명을 지녔을까. 젊은 시절, 도망친 군용 트럭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다행히 목숨은 건졌는데. 이제 아들 딸 잘 키워 사위 며느리 본지 한 두해 만에, 병 고치러 걸어서 들어간 큰 병원에서 순간의 부주의한 실수로 생명을 잃고 실려 나오다니, 살아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날 것인가. 

 잘 배운 지식과 기술로 온갖 가식과 히죽거림으로 영위하는 지식인들이여, 오늘날 이 땅에 뼈를 묻으며 대지를 사랑하는 착한 농부들에게, 진정한 생산을 이루는 그들에게 진정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없는가. 

삼봉산 하산길 일출

1월 8일_일_06:00

 작은 억새 밭을 지나 실제로는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는 삼봉산 제1봉(1,264)에 올라서니 이어지는 암봉이 희미한 여명 속에서 물결처럼 다가오고 산행 출발 후 두 시간 만에야 선두 조와 합류하여 숨을 고른다. 이름하여 덕유 삼봉산이라, 여기서부터 덕유산의 큰 흐름이 시작된다고 했던가.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15분 정도 어둠 속의 바위 암릉을 조심스레 밟아 오르내리며 석불바위, 장군바위, 칼바위들을 올려다보며 서쪽 사면의 우회길을 지나 북쪽 무풍면 망덕산(873)으로 이어지는 안부에 다다른다. 정면 덕지리 마을의 불빛들이 띄엄띄엄 흩어진 채로 새벽을 기다리며 찬 바람에 떨고 있다. 

 경남-전북 도계 능선을 버리고 동쪽으로 크게 돌아, 왼쪽 사면에 천 길 낭떠러지의 깊은 계곡을 의식하며 급전 직하의 내리막을 접하니 매우 조심스럽고 차라리 눈 쌓인 밤길이 다행스럽다. 한 시간 남짓을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눈 쌓인 직벽을 밟아 내리다 보니 어느새 동쪽 사면엔 바람이 잦아졌고, 멀리 국사봉 쪽에서 새벽 동이 터 온다. 너덜지대를 지나 다소 느슨해진 내리막 경사에서 뒤 돌아본 삼봉산의 위용은 가히 덕유의 큰 기상을 간직할 만하다. 

 이리도 험하고 가파른 길을 무엇이 좋아서 찬바람 맞으며 걷고 있는지. 이 대지를 사랑함은 내가 나의 의지로 직접 내딛는 이 땅 곳곳에 환호할 만한 아름다움이 있기에, 이 땅을 향해 솟아오르는 저 태양처럼 결코 하나의 경치로 머물지 않고 내가 찾아가는 아름다움으로, 내가 찾는 자유로 다가온다. 


 사마르칸트로 향하는 관광버스에서 가끔 손을 흔들며 잠시 농장 주변에서 볼일도 볼 겸 쉬어가는 행렬들이 소란스럽다. 꼭 한국인 관광객들 만큼이나 즐거움을 큰 소리로 표현함은 마찬가지다.
 우즈벡의 농장 흙은 다소 검은빛을 띠고 있다. 크줄쿰 사막의 모래 토양과는 달리 타쉬겐트와 사마르칸트를 잇는 해발 200-300m 언덕 야산의 농장들은 체르노젬이라 불리우는 흑토지대로 밝은 색을 띠지만 검은 쪽에 가깝다. 작은 마을마다 키실락이라 불리는 강한 씨족 공동체로 결속되어 고려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집단 농장 일에 익숙해 있다.
 오후 나절의 나른한 휴식시간을 유난히 값싼 잎담배를 많이 피우는 현지인들을 피해 좀 떨어진 큰 나무 밑으로 자리를 옮긴 후 K노인의 첫마디다.
 “글세.. 무정부주의자라 불리우든 그 사람들... 참 착한 사람들이었지... 무식한 내가 그냥, 옛날 동경 시절에 배운 데로 아나키스트라면 러시아에서 볼세비키들과 맞붙을 정도로 과격하게 온갖 조직들과 현존 질서들을 거부하는 급격한 혁명아들의 집단으로 이해하고 있었지... “ 
 그러나 가까이서 토론하며 지켜본 그들의 집단은 결코 과격한 혁명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답답하리만큼 원칙을 지키려 하는 철저한 민족주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시절 이 땅에서 좌도 우도 아닌 회색의 길을 걷는 그들에게 박수치며 따라붙는 젊은이들은 겨우 대학의 정치학도 몇몇 뿐인 시절이었다.
 그들이 일반 대중의 기반을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이론이었고, 그들이 가장 훌륭하게 섬기고 존경하는 노동자, 농민들마저도 그들의 이념적 구호들을 이해하기에는 이른 시대였다. 그들이 배척하는 독재와 그들이 합작하려는 진정한 국내외 민주주의 세력마저도 그 선이 뚜렷하게 그어지질 않았다.
 전쟁 중에 허망한 숨어 살기를 겪는 중에 이시영 선생의 장례에도 참석 못하고, 전쟁 후 1년 가까이 헤어진 첫 아내와 딸을 찾으며 서울에서의 정착은 시간을 잊을 정도로 금세 지나갔다.
 독립 노동당의 당사를 서울로 옮기는 작업 차 대구에 내려간 김에 부산을 들러, 몇몇 지기들을 수소문하여 만나던 중에 딸아이를 찾게 됐으니 우연치고는 참 다행스런 일이었다.
삼봉산의 아침햇살

1월 8일_일_07:30

 삼봉산 아래 우마차 도로 절개지를 지나 조림 지대 숲을 벗어나니 대간길은 밭 한가운데를 거쳐지나고 도마치라 불리는 소사고개에 다다른다.(1089 지방도, 전북 무풍-경남 고제) 도로 맞은편 대간 길로 올라서는 언덕 아래 채소밭 후미진 곳을 찾아 아침상을 펼친다. 다행히 지난밤의 세찬 바람은 삼봉산을 따라 넘지 못하고, 수도산(1316)을 힘겹게 올라오는 태양이 늦은 일출을 보이며 양지바른 언덕을 비추는가 싶더니, 병풍처럼 펼쳐진 삼봉산 동쪽 사면이 하얀 분칠을 한 채 햇살을 가득 안고 양털 같은 구름 목걸이를 두르기 시작한다.   

 설악산 울산바위가 크게 몸을 불려 이곳 덕유 초입으로 이사 온 듯하다. 

 이곳 도마치에는 호랑이에 죽은 귀신(창귀)에 제사를 올리는 호식총(虎食塚)이 있어 , '산맥이'라 불리는 산제의 한 형태로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만큼 이곳 마을들이 오지를 이루고 큰 산 아래 고갯마루를 넘나들며 힘겨운 역사를 이어오는 것일 게다. 봉우리 봉우리마다 작은 神, 큰 神이 자릴 잡듯 , 계곡 골짜기마다 온갖 귀신들이 자릴 잡은 이 땅에, 이 고개를 지키는 어느 귀신이 있어 이리도 아름다운 햇살로 우리 自由人 대간 꾼들에게 축복을 내리는가. 

 오랜만에 부부 팀을 이룬 나와 종씨의 새침이께서 삼봉산 내리막에서 급격한 저체온증으로 탈출을 고려한다. 진부령까지의 개근을 다짐하며 지난주에는 감기로 무척 괴로워하면서도 완주를 고집했던 옆지기 님이 지극한 아내 사랑으로 다음 보충을 기약하며 함께 탈출하기로.

 이 또한 아름다운 우리들의 모습이다.

소사재에서 바라본 대덕산 능선


1월 8일_일_08:20

 아침식사 후 삼봉산의 찬란한 햇살을 한참 동안 지켜본 후 아쉬운 맘으로 등 뒤로 향한다. 마주하는 대덕산 능선은 대조적으로 매우 부드럽고, 단지 오른쪽 (대덕) 삼도봉까지의 오름길이 만만치 않게 된 오름을 이루고 있다. 채소밭 언덕길을 올라서서 작은 숲을 벗어나니, 왼쪽 도계 마을에서 시작되는 농로가 시멘트로 포장을 이루며 대간길을 따라 지경내 마을 안부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상처를 내며 개간을 시도한다. 농토가 부족한 오지 마을에서 있을 법도 하다고 넘기기엔 불도저까지 동원한 파괴가 그리 간단치가 않다. 

 한 시간여의 지루한 된 오름을 계속하여 대덕 삼도봉이 눈앞에 보이는 안부에 올라서니, 새벽의 찬 바람에 얼어붙은 참나무 상고대가 아침 햇살에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초점산(草岾山)이라 불리는 이곳 삼도봉(1,248)에는 나무가 별로 없고 억새 밭을 이룬 정상 부근이 눈으로 덮여 있다. 작은 화강석 정상 표지판이 부러진 채 넘어져 있고, 경남, 북과 전북의 도계가 만나는 이곳 정상은 남으로 확 트인 전망을 보이며 동서 쪽으로 넓은 시야를 이룬다. (09:50) 

 북쪽 대덕산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오랜만에 산책의 기분을 느낄 정도로 부드럽다. 조릿대 숲과 억새 밭을 지나며 작은 안부를 거친 후, 대덕산 정상으로의 오름길은 키 작은 참나무 밭이 온통 하얗게 상고대를 이루며 발길을 멈추게 한다. 부드럽지만 웅장하다. 정상위에 몇 그루 푸른 소나무가 온통 은색으로 빛나는 화려함에 장식처럼 멋을 부린다.  

대덕산 정상에서


1월 8일_일_10:30

 완만한 능선을 천천히 여유롭게 올라선 대덕산 정상(1,290)은 헬기장을 이룰 만큼 넓고, 사방으로 광활한 시야를 확보하며 맑은 날씨에 한 껏 주변을 조망한다. 남서쪽으로 삼봉산이 마주하며 그 뒤로 큰 물결로 다가오는 지나온 덕유. 지봉, 대봉, 향적봉, 장수 덕유... 골골을 이루며 작은 삶터를 이루어가는 우리의 착한 민초들. 찬 겨울을 지나고 또 움트는 새 봄을 기다리며 그렇게 묵묵히 지켜온 역사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상큼한 바람이 스친다. 나는 힘들게 찾은 자유와 신선한 이 땅을 둘러싼 공기를 사랑한다. 그렇다. 쉽게 이룬 자유와 행복과 멋은 금세 내 곁을 떠날 것이다. 편안한 길은 싫다. 어차피 인간은 다 똑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겠지. 어울려 살아가자는 사람들의 좋은 의도도,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튀어 나는 남들의 행동에는 모난 징으로 응징하며 시기하지만, 행여나 자기들의 머리 위를 걸어감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북쪽으로 내려선 후 작은 봉우리를 우회하여 오른쪽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능선을 만난다. 30분 남짓의 내림길은 다행히 험하지는 않다. 조릿대 산죽을 덮은 눈덩이가 뭉게구름 밭을 이루고, 다소 완만한 내림길에 얼음골 약수터는 꽁꽁 얼어붙은 채로 어디선가 본 듯한 약수터 찬양 싯귀를 간판처럼 내밀고 있다. 

 덕산재까지의 한 시간 여의 내리막 길에서 올라오는 당일 산행 팀들을 마주하니 오랜만에 대하는 산행객이 반갑다. 대간길에서 삼사 주 만에 처음 만나는 산행팀인 탓이다. 덕산재가 내려다 보이는 안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부러진 아이젠을 수리해 보지만 힘들다. 아직도 작은 봉우리 두 개를 더 넘으며 세 시간 정도는 족히 남았는데, 한쪽만이라도 무사히 버텨내야 할 텐데.

 덕산재 고갯길(640m, 30번 국도, 무풍-대덕)에 내려서니(12:10) 삼도봉 터널 탓에 통행이 적은 국도 상의 주유소는 산삼 연구소로 바뀐 채 하얀 칠로 단장하고 목탁 소리를 밖으로 크게 흘린다. 휴식터를 찾았으나 마땅치 않고 갈길을 재촉하는 선두 조와의 거리가 삼십여분 뒤떨어진 상태라 도로를 가로질러 절개지를 올라선다.  

대덕산에서 바라본 삼봉산, 덕유산


1월 8일_일_12:40

 덕산재를 가로질러 삼십여분 힘들게 마지막 안간힘을 쏟는다. 오르막 눈길이 녹아 얼음길을 이룬 채 낙엽에 가려져 매우 위험하다. 한쪽 외발 아이젠으로 힘겹게 올라선 안부에서(833봉) 왼쪽으로 급격히 틀어 내려서니 소로를 거쳐 절개지 공터에 다다른다. 폐광 터라 불린다. 삭막한 몇 그루 흉내내기 조림으로 눈가림한 폐광터 절개지 맞은편으로 올라서니 소로가 편안하다. 

 삼거리 안부를 지나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거치며 지루한 오르막을 지친 걸음으로 이어간다. 10시간이 가까워 오는 이 시간이 항상 괴롭고 힘든 발걸음이다. 853봉이 올려다 보이는 오르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뒤를 돌아보지만 잎 떨군 잡목 가지들로 가려진 작은 봉우리 아래로 햇살만 가득하고, 점점 녹아내리는 눈덩이를 아쉬운 듯 어깨에 걸친 고목들의 장관을 마주하며 몇 시간 전의 바람 찬 겨울을 잊는다.   


 1.4 후퇴 후 봄에 부산에 피난 내려가 잠시 머물렀던, 송도 가는 길의 방파제 앞 일본 적산가옥 이층 집 부근에서 하룻저녁을 묵으며 생선 뼈 튀김 구이 안주에 정종 대포 잔을 앞에 놓고 몇몇 부산 친구들과 회포를 풀던 중, 이제는 이사를 갔지만 옛날 집주인을 우연히 만나 전쟁 중 어처구니없이 남편을 잃은 아내의 기막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1951년 초겨울로 접어드는 창녕 땅에서, 초등학교 선생 자리를 얻은 남편을 따라 비록 낯선 객지지만 다행스레 피난살이를 지내는 가 했던 아내는 반년도 채 못된 어느 저녁나절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지서에서 나온 경찰차에 남편을 실려 보냈다. 그 후 군 경찰서에서는 며칠 후 무혐의로 풀려 나왔다는 소식만 들은 채,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서너 달 동안 대책 없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여러 가지 불길한 소문만 무성했다. 의령 쪽이나, 거창 쪽에서 집단으로 부역 혐의자들을 처형할 때 가까스로 탈출한 자들이 남편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는 둥의 소문이다.
 결국 이듬해 새 학기가 시작될 즈음 새로 부임한 선생에게 사택을 내어 주고 딸아이 하나 걸린 채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모질고 힘든 피난시절이지만 서른도 채 안된 젊은 여자가 찾아갈 곳이라고는 잠시나마 머물렀던 인연이라 이곳 방파제 부근뿐이었다. 이곳에서 몇몇 이웃들의 도움으로 국제시장에서 제법 큰 장사를 하는 부잣집에 소개를 받아, 딸아이는 주인집에서 키우고 아내는 시장에서 장사를 거들고 가게를 지키는 일을 하며 한 계절을 잘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겨울, 기막힌 팔자의 젊은 아내는 국제시장의 큰 불이 난 이후로 아무에게도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몇 달 전 만난 어느 사회주의 노선의 친구가 시장 화재 시에 영주동 산마루에서 횡재 같은 불구경을 하며 “잘 탄다.. 신난다..”하며 시니컬한 기분으로 양키들을 놀렸다던 그 시간, 그 불길 속에서 사상도 민족도 세상도 모르는 억울하고 한 많은 무지의 역사들도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이웃의 설명을 들으며 딸을 찾으러 밤길을 나서는 K노인의 발걸음은 취기마저도 사라지게 만들었고, 어렵사리 수소문하여 동래 부근 고아원에서 만난 딸아이는, 웃음을 잃은 채 10살 정도로 훌쩍 커버린 소녀티를 내지만, 불과 2-3년 동안에 아버지의 기억마저도 잃은 듯 멍하니 바라만 볼뿐이었다. 
 국가가 무엇이고 민족이 무어란 말인가.. 한 가정을 이루고 작은 행복을 소망함이 이리도 힘든 일인데... 내 젊은 시절의 소시민적 웅크림이 이렇게 짧은 시간의 회오리에도 비극적인 소용돌이를 맛보는데... 이제 내 남은 앞날을 어떻게 보내야 휘둘리지 않는 당당한 기쁨을 맛볼 것인가.... 내가 스스로 찾아 누릴 삶을.....



설흔


1월 8일_일_13:50

 853봉을 지나 급경사길을 십 여분 지친 후 삼십여분을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지루한 마지막 걸음을 재촉하나 느린 걸음은 부항령 고갯길에 다다를 때까지 삼도봉 터널을 보여주질 않는다. 간목 벌채 톱 소리마저도 반갑게 들으며 부항령 직전 헬기장을 지나 폐쇄된 임도인 부항령에 다다른다.(14:30) 

 지난주 삼도봉에 오를 때 올라섰던 주릉 오름길을 다시 내려가며 산삼 캐기 강의를 듣는다. 60-70%의 양지와 30-40%의 음지, 7-8부 능선의 비옥한 땅, 배수가 잘되는 토질, 빨간 사랑의 열매. 그마저도 뿌리에서 옮아가는 양분이 아까워 재배 시에는 열매를 일찍 딴다고. 언젠가 대간길에서 잠시 벗어나면 행운의 빨간 열매를 볼 수 있으려나.

 십여분의 내리막길 끝에는 잘 단장된 삼도봉 터널 앞 소공원에서 김치찌개와 과메기 안주로 회포를 나눈다. 10차례의 대간 길, 아직도 먼 갈길이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마지막 전북을 섭섭하게 지나며 쑥병이 마을을 지나고 무주를 거쳐 대진 고속도로를 달린다.  

(1/9) 배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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