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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16회 희양-백화 구간 종주(지릅티재-이화령)

06년 4월 22 - 23일

4/22   22:00     신도림 출발

   23   03:15     은티 마을 출발

         03:35     은치-지릅티 갈림길

         04:15     지릅티재 출발                   (2.0km)

         05:15     희양산                              1.38km

         05:30     희양산 출발

         06:20     배너미평전 (시루봉 갈림길)  2.28km

         07:00     이만봉                              2.26km

         07:40     아침식사 후 이만봉 출발 

         08:00     곰틀봉

         08:20     사다리재                           1.1km

         09:25     평전치                              2.46km

         10:15     백화산 (15분 휴식)             1.45km

         11:20     황학산                              1.85km

         12:30     조봉                                 3.9km

         13:15     이화령                              1.53km 

                          10 시간                      20.21km                

야생화-양지꽃 or 노랑제비꽃?


4월 22일_토_22:00

 주말 외박 나온 배 소위와 예비역 배 병장과 함께 일찌감치 점심 겸 저녁을 먹은 탓에 출출한 밤 시간이다. 순댓국으로 야간 이동 중의 수면제인 이슬이도 한잔 할 겸 조금 일찍 신도림역에 도착했으나, 아쉽게도 단골처럼 애용하던 간이음식점 건물이 공원화를 위해 철거되었다. 도심지 환경과 시공 유지 개발을 위해 당연한 일인데도 폐허 속에서 하나씩 새로워지는 도시개발의 발전이 내겐, 놀이터를 주차장 개발로 빼앗긴 어린애 마냥, 섭섭하게 지켜보는 슬픈 얘기로 남는다. 

 4.19를 기념하고, 독도 부근 해저 탐사 문제로 일본과 긴장을 고조시키던 한 주의 주말 치고는 너무 조용한 뒷얘기다. 그냥 그렇게 타협한 것이 다 끝난 일도 아니고 이제 겨우 일본의 의도에 휘말려 불씨만 지펴 놓은 것은 아닐까. 내가 걷고 있는 백두 대간의 길에 숱하게 뿌려진 일제의 치욕들. 서구나 일본 제국주의들의 침략행위가 비록 경제적인 이득이 가장 큰 목적이겠으나, 그에 숨겨진 더 큰 피해는 그들의 집요한 문화침략일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언어 말살과 종교 윤리의 교묘한 술책으로 빚어지는 음모로 인해 대간 길을 떠도는 민족 영혼들의 자존심에 대한 훼손이 이어지면 그 치유는 매우 오랜 시간을 요할 것이다.  

 속리산 종주 이후 2주 동안 몸 관리를 어느 정도 신경을 쓰긴 했으나, 앞으로 4주 연속으로 대간길 중간점(차갓재)에 이를 때까지 속리산, 월악산 국립공원의 험한 마루금을 밟아 나갈 일에 걱정도 되는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막힘없이 한밤중을 달려, 오늘 구간의 날머리인 이화령 터널을 못 미쳐 충북 괴산 톨게이트를 벗어난다. 연풍면을 돌아 나와 은티마을 입구에 마련된 휴게소에 닻을 내린 채(01:00) 두 시간 정도 불편한 자리에서지만 단잠에 빠져든다. 

은티마을 남근석


4월 23일_일_03:00

 헤드랜턴을 밝히며 산행 준비를 하는 한 밤중의 은티 마을 하늘은 그믐에 가까운 달빛마저 사라진 칠흑의 하늘에 오랜만에 별이 총총하다. 주말 일기예보에서 우중 산행을 염려하여 준비했던 우의를 꺼내 배낭 무게를 줄인다. 동네 어귀에 제법 잘 꾸며진 주차장과 농산물 직매장을 신설하여 관광객 유치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깨끗한 화장실이 계속 유지되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구간 중 희양산 암릉 정상까지의 들머리 된오름이 매우 가파르고 위험할 것에 대비하여 스틱은 접은 채로 화이팅을 외친 후 마을 초입에서 조용한 발걸음을 내딛지만, 한밤의 개 짖는 소리에 놀란 송아지 울음까지, 자그마한 동네의 잠을 설쳐 죄송스럽다.(03:15) 벌써부터 주말 산행객을 맞이할 음식을 마련하는지 불을 켠 채로 바삐 움직이는 계곡 왼편 은티식당 아주머니의 시선이 정겹다. 다다음주 2박 3일의 대야산 종주 후에 날머리에서 한잔 막걸리를 청해야겠다. 

 마을 입구 은티마을 내력을 길게 적은 돌탑을 지나며 다음에 밝은 날 내림길에서 읽기로 하고 조금 지나치니, 큰 서낭당 나무 밑에 별로 잘 생기지도 않은 남근석 하나 세워져 새끼로 금줄이 처져 잘 모셔지고 있다. 이 땅의 산중 마을에서 흔히 보이는 재미있는 전래 설화의 표지이며, 항상 그러한 마을에는 동네 안쪽 높은 곳에 샘물이 위치하여 陰氣를 흘려보낸다. 이곳 은티 마을 역시 희양산과 악휘봉의 합곡점에 위치하여 여근곡 마을을 이루며, 밤중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봄날 물오른 여인네 오줌 줄기 같이 요란스레 흘러내린다.  

 모처럼 대간 마루금(지릅티재)까지의 들머리 계곡 산행에서, 대간 길 북사면의 봄날 잔설 녹아내리는 축축함을 밟으며 이십여분 만에 은치재와 갈림길 삼거리에 도달한다.(03:35) 왼쪽 희양산 길을 택하여 오늘 구간의 출발점인 지릅티재까지 사십여분 계곡을 거스르며 다음 구간 하산길 알탕도 꿈꾼다. 부드럽지만 제법 바위 너덜을 이루며 곳곳에 무너져 내리는 계곡 언덕길을 조심스레 밟아 올라 워밍업의 땀을 흘린 뒤에야 마루금에 도달한다.

희양산 햇살


4월 23일_일_04:15

 힘겹게 올라선 대간 마루금 지릅티재에서 구간 종주의 첫출발을 자축식이 아닌 슬픈 현실의 목책 울타리 앞에서 기억을 위한 촬영으로 대신한다. 어떤 연유로 봉암사의 사유지로 등록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이 대간 길 하늘 가까운 땅이 과연 어느 집단의 배타적인 소유로 차지되어 힘에 의해 출입이 통제되어질만큼 무서운 세태란 말인가.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이기적인 自由라면 크게 잘못된 개념일 터. 이유야 어떠했던 佛子의 이름이 아니더래도, 미천한 졸부의 땅 금 긋기라 할지라도 어울리지 않는 조처를 기념 삼듯 촬영을 했으니, 부디 어느 한심한 시대의 웃지 못할 추억 뒷켠으로 살아지길 바라는 정경이다. 

 입산금지의 목책을 비웃듯, 왼편으로 목책이 잘라진 채로 쓰러져 난 길을 돌아 희양산 북사면을 향해 힘찬 진행을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멀리 은티마을 불빛이 한두 점 따라붙다가 이내 사라지고 서낭당터를 돌아 705 고지 안부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새벽 쌀쌀함에 입었던 바람막이를 벗어 넣고 힘겹게 올라야 할 희양산 정상을 어둠 속에서나마 찾아 더듬어 살피니 머리 바로 위에 모자처럼 올려다보이며 고개는 젖힐데로 젖혀진다. 80도 경사는 족히 되어 보이는 암릉 구간이 다가오니 계산상으로 300 고도된 오름에 직벽 줄타기가 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이십여분의 된오름 끝에 두 개의 큰 암반으로 미로를 이룬 구멍 길을 만나 엎드려 절하며 기어서 통과하고 나니, 본격적인 암릉 오르막에서 외줄 로프 잡이가 시작되며 진행이 늦어진다. 염려하던 스님들의 로프 절단이 없어서 준비한 비상용 슬링을 꺼내지 않아 다행이지만 결코 얇은 8mm 로프를 가지고는 아마추어 등산객이 오르내릴 길이 아니다. 선두 대장의 염려스런 무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20여 미터 80도 이상의 줄잡이를 한 명씩 차분히 진행하여 서너 차례의 줄잡이를 번갈으니 희양산 정상 안부까지 선두와 후미가 이십여분의 지체를 이루며, 마침내 100여 m 직벽 암릉 줄잡이를 무사히 끝내고 나니, 선두조는 땀이 식어 출발을 서두른다.(05:30)  

 등 뒤로 검게 내려다보는 희양산 정상을 뒤로 한 채 내림길을 서둘러 희양산 성터를 지나고 나니 남쪽 봉암사 내림길 부근에서 다시금 목책 울타리를 넘는다. 몇몇 몰지각한 산행객이 있어 한국 선종의 중요 선원에서 도(道)를 위해 정진하는 스님들에 소란을 끼친 잘못은 충분히 고쳐져야 하지만 승복 입은 불자의 손에 각목이 들려지는 일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을 일이다. 밝아오는 여명을 느끼며 헤드랜턴을 벗어 넣고 성터 내림 길을 지나 완만한 오르내림 길을 지그재그 하여 888봉 안부에서 잠시 된비알을 내려선 후, 시루봉 남사면을 감싸며 배너미 평전으로 향하는 편안한 오름을 맛보며 숨을 고른다.(06:20)  

시루봉-이만봉

4월 23일_일_06:20

 30도 방향으로 은티마을을 왼쪽에 내려다보며 걷던 길이 은티마을로의 성재를 지나 배너 미평전 시루봉(914.5) 갈림길에서 120도 남서로 꺾어지며 963 안부에 올라선 후 이만봉을 향해 편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내내 오른쪽 희양산 거대 암산이 비쳐지는 햇살 속에서 하얀 속살을 드러내 보인다. 용바위에 올라서서 희양산을 배경으로 한 컷을 남긴다. 저 멀리 큰 바위 남쪽 자락에 숨어 있는 봉암사를 더듬어 살피지만 안성골 깊은 계곡에 자취를 감춘다. 5/5 초파일 즈음에 연중 한 번 개방한다는 그곳을 대야산 지난 후 구왕봉에 서서 먼발치로나마 지켜볼 수 있을래나.

 희양산(曦陽山)의 陽氣를 받으며 봉황 머리 닮은 거대 바위 아래, 西出東流의 30리 백운곡 계곡 위에 봉암사(鳳巖寺)를 창건한 道川(智證국사)의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9대 山門이다. 부디 세속의 숱한 고뇌를 씻어 낼 훌륭한 가르침을 깨닫고 중생들에 설법하여 그 지혜를 보시해 줄 그날을 위하여 정진하는 많은 불자들의 도량으로 남으소서. 억지로 주입되는 못된 의도의 思想교육들에 의해, 오늘날 깊지 않은 사고로 편히 살려는 선한 백성들이 독단적인 확신을 가지고 아무런 증거 없는 일까지도 믿으며 서로 다투게 만드는 그런 의도된 가르침이 아니기를.

 오늘따라 출발부터 빡센 줄잡이를 거친 탓인지 시장기를 많이 느끼고 대간 진행 길이 용틀임처럼 뱅뱅 돌다 보니 마치 제자리걸음 하는 기분으로 오른쪽 희양산과 왼쪽 이화령으로 이어지는 분지리를 맴돌고 있다. 깊은 잡목 숲으로 가려진 분지천 급경사 계곡에서 봄바람이 스며오고 왼쪽 곰틀봉 멋진 소뿔머리가 점점 가까워 오며 이만봉에서의 아침식사를 위해 발걸음을 서두른다.  

이만봉 정상

4월 23일_일_07:00

 마당바위를 지나 잠시 된오름을 밟아 오르니 잡목 우거진 이만봉(989)에 다다라 식사와 휴식을 위해 자리를 편다. 오늘 구간의 시작이 워낙 힘들었지만 무사히 예정된 시간에 진행되어 앞으로 남은 구간 길은 서두르지 않고 여유로운 트래킹으로 이어질 것 같다. 건네주는 장수막걸리가 시원스럽고 달게 느껴진다. 연거푸 석 잔을 마시고 나니 무겁게 짐을 지고 오른 산우에게 그제서야 미안하고 감사한다. 항상 식사시간의 즐거움을 위해 힘든 짐을 마다 않고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동료들 덕분에 훌륭한 성찬을 맛본다. 

 어제 산행 출발 직전에야 부친의 장례를 알리며, 산행 벗들의 일정에 차질을 염려하던 김두환 산우의 금일 장례식 발인이 맑은 날씨 속에서 순조로이 진행되길 다 같이 빌어본다. 그의 따뜻한 데움이 아쉬운 식사 준비에 역시 시간이 좀 늦어진다. 아픔을 잊고 다음 구간 대간 길에서 훨훨 걸어가기를. 항상 만원을 이루는 自由人 8기 대간팀들이 이번 여름의 더위를 잘 이겨내고 진부령 그날까지 무탈 산행을 마무리하는 날 우리 함께 얼싸안고 춤출 수 있으리라.

 다음 주 조령산 구간에서 26산케 벗들이 협력 등반을 계획하고 있음에 매우 기다려진다. 아무튼 오늘 구간 정도의 난이도에 부디 힘들지 않게 잘 넘어 하늘재에 다다라 기쁜 이슬이를 즐기며 훗날 백두대간 길에 나설 준비를 서두르길 바란다. 지금쯤 단양 道樂山을 향하는 버스를 탓을래나. 지난해 주흘산-부봉 완주 길에 맞은편 조령산을 바라보며 다짐했던 약속이 이루어진다. 

곰틀봉-백화산


4월 23일_일_07:40

 맑고 포근한 날씨 탓에 식사를 여유롭게 마친 후 나아갈 대간 길을 바라보니, 백화산을 중심으로 U字형을 이루며 분지천 계곡을 벗어나질 못한 채 이화령 날머리가 지척으로 가깝다. 아직도 남은 거리가 지나온 길의 두 배는 되는데, 진행 속도를 높여야 될 구간이다. 급한 내림길을 내려서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다시 올라서니 곰틀봉 정상 암반 위에 소나무 한그루 외로운 정상 표찰을 나부끼며 발걸음을 잡는다.(08:00) 사방을 훤히 조망하며 오늘 구간의 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 이화령 넘어 조령산 병풍이 가깝게 다가오고, 멀리 남쪽 가은 땅이 뿌연 안갯속에 가려져 보인다. 비교적 완만한 마루금에서 가끔 나타나는 칼바위 좁은 능선길이 '고사리 밭 등'처럼 이어진다. 선두조와 거리가 멀어진 채로 여유롭게 즐기며 후미 산행을 즐기는 가운데 벌써 선두는 사다리재를 통과하는 모양이다.


타쉬겐트의 초봄 저녁 날씨는 한낮의 더위를 느낄 만큼의 따사로움과는 달리 갑작스레 흐려지며 제법 으스스한 한기를 느끼게 한다. 달리 여분의 옷을 준비하지 않은 반팔 차림으로 공원 부근의 바깥을 즐기며 긴 시간을 버티기는 힘들 것 같은 생각에 K노인과 함께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한다.
잠시 중단되었던 4.19 혁명 이후의 그의 체험을 들으면서 그가 그토록 원했던 무정부적 자유가 가져다준 허망함을  엿볼 수 있었다. 효창공원을 빽빽이 메운 언덕길에서 자유당 시절 집권당의 중책을 맡았던 모 의원의 부인이 집안 곳곳에 숨겨 놓았던 부정의 사치들을 대문 활짝 열린 채 빼앗기며, 끌리다시피 나온 집회장에서 온갖 수모의 고함들 속에서 얼굴을 작은 손 하나로 인생처럼 가리고 있었다.
대규모 집단적 편견이 가져다준 전쟁이라는 광기(狂氣)를 경험하며, 소극적인 自由를 갈망해 왔던 K노인으로서는 강도나 살인자가 요구하는 그러한 무정부적 자유가 아니라, 정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신념을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편협한 여론에 의해 개인의 명예를 짓밟는다면, 주장할 권리를 가진 자유가 또한 오류도 있을 수 있다면, 훗날 또 다른 재앙으로 발전할 단초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랬다. 새로 찾은 民主主義라는 것이 반드시 自由를 가져다 줄 확신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어온 K노인의 독단적인 판단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물어볼 사람도 없고 지도도 없이 갈림길에 멍하니 선 꼴이 되어갔다. 그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사상의 가치에 대하여 탐구한 적도 없고, 도박꾼의 자세로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 시대의 고독을 느끼고 있었다. 그곳에는 확립된 사회적 自由라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점점 더 혼란스러워 가는 역사의 현장에서, 오로지 홀로 버티며 살아온 40년이 겨우 그에게 내려 준 깨달음이래야, 스스로의 자유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수입을 벌어 노예적 구속을 벗어나고, 도시라는 거대한 집단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자유를 누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정도였다.


 

백화산 정상


4월 23일_일_08:20

 분지리 안말로 내려서는 사다리재를 지나 편안한 트래킹을 즐기며 백화산을 향한 걸음이 매우 평안하다. 오십여 분 만에 981봉 안부를 땀나게 올라서니 발아래 평전치를 건너 두 개의 멋진 봉우리가 백화산 정상 앞에 보초처럼 다가온다.(09:10) 평전치 안말 갈림길 부근에서 휴식을 취하며 원추리 군집단을 발견하고 제각금 한 묶음씩 산나물 채취를 즐기지만, 나중 알고 보니 각시 붓꽃과의 착오라니 함부로 산나물을 채취할 일이 아니다. 특히 단체 산행에서 매우 조심해야 될 일이다. 집단 식중독이란 이렇게 생겨날 수 있겠다. 

 1012봉 된오름과 가파른 비탈을 거쳐  왼쪽 북사면으로 이어지는 안부를 거쳐 올라서니 백화산(1063) 시원한 정상이 봉황처럼 남으로 향해 고개를 내밀고 산꾼들을 반긴다.(10:15) 동쪽 문경의 운달산을 내려다보며 지나온 서쪽 대간길마저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일행들의 눈길을 피해 볼일을 보려 하나, 수려한 부리 모양의 남쪽 급경사 말고는 어디 숨을 데도 없는 형상이라 먼저 출발을 서두를 수밖에. 휴식을 취하는 일행들을 앞서 홀로 좌측 헬기장을 내려선다.(10:30) 편한 걸음 후에 옥녀봉 갈림길에서 350도 북으로 방향을 잡아 급경사를 내려서니 칼날 바위지대에서 홀로 잠시 알바를 경험한다. 표지기마저 얼른 눈에 띄지 않는 암릉길을 무심코 밟아 오르니 낭떠러지 끊긴 길이다. 

 잠시 당황스레 살피던 중 역방향 산행객들이 발아래서 우회하여 오른쪽으로 돌아 내리고 있다. 조심스레 돌아서서 올랐던 길을 내려와 자세히 살피니 칼날 바위 바로 넘어서 우회길이 보인다. 오른쪽 급경사 비탈길을 밟아나가며 짧은 줄잡이와 함께 십여 m 암릉 직벽을 마주하여 스틱을 접어 넣고 힘겹게 기어오르니 나이 지긋한 부부 한쌍이 내림길을 살피며 오랫동안 망설이고 서 있다. 간이 로프 시설이 꼭 필요한 지점이다. 앞뒤로 멀어진 일행들이 시간을 지체할 만큼 걱정되기도 한 구간이다. 다시 발아래 헬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10:50) 

황학산 억새밭

 4월 23일_일_11:20

 904 안부를 힘들이지 않고 올라 선 후 황학산으로 올라서는 길목에서 오른쪽 문경 시내가 보이는 사면에 억새밭을 일군 멋진 조림지에서 봄을 느낀다.'陽春布德澤 萬物生光輝'라 봄물 오르는 노란 관목 숲에서 찬란한 봄빛이 땅으로부터 솟아오른다. 황학산 정상(912)에서 대구에서 출발한 역방향 산행팀의 중년 부부가 휴식을 취하며 여유로운 인사와 함께 지쳐 보이는 대간꾼에게 귤 한 개를 껍질 벗겨 권한다. "8시간 조금 지났네요., " "대단하십니다." 왜 그리 한심한 짓을 사서 하는지 이해 못하는 투의 위로가 연초 삼도봉에서 물푸레의 그것과 동일한 느낌이다. 

 백화산에서 휴식 후 이십여분 뒤에 출발한 주력팀이 벌써 앞서 나가 흰두뫼(백화산) 갈림길을 지나 862 안부에서 휴식을 갖는 동안 다시금 홀로 조림숲 내림길을 여유롭게 지그재그 걸어 내리지만 늘 그랬듯이 평발 장애인의 특성처럼 발바닥이 뜨거워지면서 서서히 따갑기 시작한다. 만사를 잊고 이제부턴 시간을 때우는 게 상책이다. 아직도 한 시간이 훨씬 남았으리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가문비나무 숲에서 습지를 이루며 산책로처럼 잘 마련된 임도에 접어든다. 


아내가 영문 모를 외박을 한 뒤에 처절한 모습으로 얼굴을 마주하기를 거부하며 작은 가게의 편물기 앞에 앉은 채 저녁나절을 보내고 있을 동안, K노인은 온종일 궁금함과 초조함으로 불안한 맘속에서 아내의 설명을 기대하며 방에 누운 채로 온갖 상념에 혼돈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초겨울이라고 하지만 벌써 해가 지는가 싶더니,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마저도 쉽게 분간키 어려운 시간에 가게와 반대쪽으로 난 작은 문밖에서 누군가 인기척으로 헛기침을 보낸다. 아이들은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온 뒤, 뭔가 작정한 듯한 아내의 설득으로 주말 하룻밤을 교회 사택에서 보내고 주일날 예배까지 보고 오기로 한 뒤라 갑작스런 방문객에 적이 긴장되는 기분으로 마당 쪽 문을 열고 내려섰다.
어둑해진 바깥쪽 낮은 대문 위로 비치는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제법 훤칠한 키에 점잖게 빗어 올린 머리가 그리 예사로운 이웃사람은 아니다. 대문 곁에 다가서는 K노인을 알아본 듯 잠시 뒤를 쳐다보며 뭔가를 확인한 후에야 고개를 돌려 숙이는 듯 물어온다.
“실례합니다만.. 황**씨 댁 맞습니까...”
“황**라....”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라, 잠시 기억을 되살려야 할 지경이다. 전쟁 후 호적을 다시 정리할 무렵 아내의 이름을 동사무소에서 적어 본 후, 거의 불러 본 적도 없고 가끔씩 아이들의 생활 조사서 비슷한 곳에서 몇 번 씌어진 것을 본 것이 그의 기억에 전부인 이름이다.
가게 쪽을 혹시나 하고 돌아봐도 아내는 여전히 편물 기계만 드르럭거리며 별로 내색이 없다. 도대체 스스로도 짐작이 가질 않는 이 방문객이 아내의 이름을 알고 있고 나이도 제법 들어 보여 40 중반은 훨씬 넘어 보이는데... 아내의 고향?... 친척?..
참 당황스런 기분으로 느닷없는 방문을 맞아드린다.
“아.. 녜.., 그렇습니다만....”
“잠시.. 들어가서...”
문을 열자 말자 들어서며, 머뭇거림도 없이 벌써 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갈미봉 조림지


4월 23일_일_12:00

 오른쪽 풍덕골(굴둑메기:연풍인 김만덕)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이화령 1.5km 팻말을 보니 지도상의 계산 거리와는 차이가 많지만 힘든 마음에 자꾸 믿어 보고 싶다. 아직은 몇 개 봉우리가 남았는데, 억새밭을 지나 777봉 안부에서 오른쪽 갈미봉 갈림길을 지나니 이후 조봉까지의 내림길이 더욱더 지루하게 느껴진다. 꽤 넓은 임도를 만들며 이어지는 조림숲에서 곧 베어져 나갈 굵은 관목들이 노란 페인트 표지를 두른 채 사형수의 그것 마냥 을씨년스럽게 행렬을 이룬다. 

 조봉(671)에 이르러(12:30) 마주 보이는 거대한 조령산 아래 이화령 터널을 뚫고 나온 고속도로가 선명한 줄을 긋는다. '이우릿재'로 불리던 험한 고개를 넘어 조령산 아래 연풍 땅을 넘어 뿔 닮은 백화산 아래 '각서리'를 지나 문경 땅으로 꾸불거리며 넘든 고갯길이 신국도와 고속도로의 양쪽 터널이 연이어 생겨났건만, 아직도 깊게 잘린 대간길은 이어질 줄을 모른다. 

 마지막 681 고지를 점령한 이화령 군 초소를 우회하며 가파른 비탈을 힘겹게 돌아내리니, 이화령 고갯길과 초소 오름길 시멘트 계단길 삼거리에 진달래 한그루가 유난히 화려한 장식을 뽐낸다.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국도에 내려서서 휴게소로 꾸며진 한적한 주차장 전망대로 향하는 왼편에 괴산 큰 고추를 힘겹게 안고 서 있는 고깔 쓴 석상이 외롭다. 

2006.4.24 배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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