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언어가 지나간 자리

평지를 달리는 당신과 낭떠러지에 선 나, 그 간격의 흔적을 수집하다.

by Don Shin

세상의 말들은 내게 숨처럼 스며들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어 내려앉고, 빛이 창을 스칠 때 남는 잔상처럼 눈앞에서 꺼지지 않은 채 나를 괴롭힌다.

나는 공기의 결을 더듬으며 당신이 던진 언어의 속도를 겨우 짐작할 뿐이다.


당신의 언어는 흐린 빛 속에서 무분별하게 퍼져나가고, 나는 그 안에 담긴 형체 없는 감정들을 껴안으며 내 몸에 남은 빈틈들을 하나씩 헤아려 본다.


같은 길, 다른 행성

당신과 나의 세계는 결이 다르다.

당신에게 시간은 앞으로 흐르지만, 내게 시간은 옆으로 흐른다.

나는 늘 당신의 뒷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단어들은 파편처럼 흩어지고, 내 손끝은 허공을 베며, 나의 얼굴은 당신의 얼굴을 매번 비껴간다.


당신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듯 보인다.

흔적이 남고 마음이 베여도 금세 치유의 속도만을 좇으며 다음 문장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흘리고 간 말의 끝에 위태롭게 발을 디디고, 균열이 생긴 침묵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디선가 벽이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무너지는 소리인지, 더 높게 세워지는 소리인지는 끝내 알 수 없다.

당신은 나를 지나쳐 가고, 나는 당신이 남긴 궤적을 따라 유령처럼 흐른다.


낭떠러지 위에서 믿는 진실

당신은 평지를 달리듯 가볍게 물어온다.


“왜 그렇게 멈춰 있니?”

나는 지금 낭떠러지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데, 당신은 우리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잔인하고도 다정한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당신의 언어가 내게도 진실이기를, 허공을 떠도는 그 말들이 구름처럼 내 몸을 감싸 안아 그 안에서 내가 숨이라도 쉴 수 있기를 바라며.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당신이 무심코 던진 말의 파편들은 내 몸을 찌른다.

나는 피 흘리는 손으로 그 조각들을 쥐고 다시 고요한 침묵 속으로 숨어든다.

소리의 자국조차 남지 않는 투명한 막, 손끝이 미끄러지는 그 경계에서 당신은 벽을 세우고 나는 그 벽에 남은 간격의 흔적들을 수집한다.


“왜 이것밖에 이해하지 못하니?”

벽 너머에서 당신은 반복한다. 나는 언젠가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까.


말의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

나는 기다린다.

어둠이 내려앉아 우리가 세운 경계가 흐릿해질 때까지.

내 투박한 말이 당신에게 닿고, 당신의 날카로운 말이 나를 향해 둥글게 휘어질 때까지.

저 너머에서 다시 나를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처럼 식지도 않고, 구름처럼 쉽게 흩어지지도 않는 그 목소리를 이정표 삼아 나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

발끝에서 무언가 바스라진다. 그것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벽인지, 아니면 내가 감당하지 못해 흘린 말들인지 모른 채로.


부서진 침묵 너머, 물방울 속에 잠긴 달처럼 흔들리며

오래도록 나를 가두었던 말의 껍질이 비로소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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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언어가 지나간 자리〉


이곳, 시간은 무겁게 눕는다.

숨처럼 스며드는 말,

어깨를 짓누른다.


빛이 창을 스치면

잔상은 꺼지지 않고,

공기의 결을 더듬으며

흐름의 속도를 짐작한다.


너의 언어는

흐린 빛 속에서 퍼져나간다.

나는 그 감정을 껴안고,

몸에 남은 빈틈을 헤아린다.


내 작은 말 하나,

네게 닿기도 전에

그 그림자를 먼저 그려본다.


너의 세계는 다르다.

시간은 옆으로 흐르고,

그 뒷모습만 볼 수 있을 뿐.

단어는 파편처럼 흩어지고,

손끝은 공기를 베며

얼굴은 얼굴을 지나친다.


너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흔적이 남아도 고통은 없다며,

치유의 속도만을 좇는다.


나는 너의 말 끝에 발을 디뎠고,

균열 난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벽이 울렸다.

무너졌는지, 세워졌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너는 나를 지나치고,

나는 너를 따라 흐른다.

너의 시선의 틈에서

겨우 나를 바라본다.

너는 먼지처럼,

바람처럼 스쳐간다.


너의 말이 내게 닿지만

뜻을 잃은 기호처럼 흩어진다.

나는 그 조각을 주워 품는다.

손끝에서 기워진 문장들,

너의 얼굴을 짐작한다.


흩어진 말로 하루를 견디고,

혼자서 연습한다.


너의 세계를 걷는 동안

등 뒤에서 물결처럼 밀려온다.

“왜 멈춰 있니?”


나는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데,

너는 평지를 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같은 길을 걷는다고 말했다.


그 말을 믿는다.

너의 언어가,

내게도 진실이기를.


허공에 떠도는 말들이

구름처럼 몸을 감싼다.

그 안에서,

나는 숨이라도 쉴 수 있을까.


몸을 찌른

말의 파편을 쥐고,

침묵에 깃든다.


소리의 자국 없는 막.

손끝이 미끄러지는 투명한 경계.

너는 벽을 세우고,

나는 그 안에서

간격의 흔적을 수집한다.


“왜 이것밖에 이해하지 못하니?”


벽 너머, 너는 반복한다.

나는 언젠가 대답할 수 있을까.


기다린다.

어둠이 내려앉고,

경계는 흐려질 때까지.

내 말이 너에게 닿을 수 있다면,

너의 말이 나를 향할 때까지.


너머에서

다시 나를 부르는

돌처럼 식지도,

구름처럼 흩어지지도 않는

너의 목소리.


나는 그것을 따라

한 걸음 내딛는다.


발끝에서

무언가 흩어진다.

벽인지,

내가 흘린 말인지 모른 채.


부서진 침묵 너머,

물방울 속에 잠긴 달처럼

흔들리며,


말의 껍질이

벗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