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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May 23. 2023

아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칭찬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는 법 -7

  5살 무렵, 또래 친구들과 놀다 아들의 특징을 하나 발견했다. (역시나 개인차가 있겠지만) 아들들은 딸들에 비해 덜 삐진다. 4살때까지만 해도 같이 어울려 놀던 집들 대부분이 딸들이었지만 함께 있을 때 어떤 위화감 같은 걸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5살이 되고나자, 함께 어울려 노는 와중에 30분에 한 번 꼴로 딸들은 삐졌다. 엄마와 아빠들은 당연히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고, 우리 아들은 그런 상황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런 갈등 상황을 아들들은 싫어했다. 아빠들이랑 똑같달까...


갈등상황에서 칭찬하기


  물론 아들들도 토라지기도 하고 삐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딸들의 그것과는 뭔가 교묘하게 다르다. 딸들이 삐치는 순간 진정 원하는 것이 '관심어린 마음'이라면, 아들들은 그럴 때마다 '문제가 해결'되길 원한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딸들은 친구들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놀거나 자신을 조금 소외시킨다고 느끼면 그 감정을 부모가 눈치채주길 바란다. 감정의 방향이 친구가 아니라 부모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조금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러면 흥칫뿡 하고 도끼눈을 뜬다.


  그런데 아들들은, 같은 상황이 되면- 친구들의 놀이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 그것 자체가 자기 위주로 해결되길 원한다. 감정의 방향이 친구도 부모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다. 물론 속상해서 울먹이는 아들에게 다가가 속상했구나- 그럴 수 있겠다- 마음을 읽어주는 것은 세상 모든 아이에게 같은 접근법이다. 하지만 그 아들을 꼬옥 안고 달랜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토라진 마음이 돌아오진 않았다. 


  이럴 때 역발상을 해봤다. 나의 경우 '칭찬'이 문제해결의 방법이 된다.



  아들은 허세에 움직인다


  문제가 생겼는데 칭찬이 무슨 뜻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아들들에겐 일종의 '허세'가 있어서, 지레 한 발 앞서 무언가 이야기해주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곤 한다. 예를 들며 이런 화법이다.


  "아, xx랑 00이 얼음땡을 안 하고 숨바꼭질을 해서 속상했구나?"

  "흑흑"

  "와 그런데 대단한데 우리 아들?"

  (솔깃)

  "속상한데 울지도 않고 소리도 안 지르고, 좀 멋진데?"

  (이게 뭔말)

  "그런 마음도 잘 참을 줄 아니까, 친구들이 하고싶은 거 먼저 하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도 할 수 있을까? 그건 좀 어렵겠지?"

  "할 수 있어요"


  여기서 몇 가지 마법의 문장이 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말고 일단 그 말을 먼저 해놓고 맞춰끼우다 보면, 아들은 괜히 '맞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감정의 방향을 조정한다.


  대단한데?
 좀 멋진데?
A를 할 줄 아니까 B도 할 줄 알겠다?
아닌가 그건 좀 어렵겠지 그치?



  속상한 내 마음을 아빠가 알아주고, 그 감정을 처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칭찬해주고, 새로운 미션을 제안하는데 적당한 승부욕(그건 좀 어렵겠지?)을 자극해주고나면 아들은 새로운 게임을 실행한 플레이어처럼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를 안 닦는 아들에게 "이 좀 닦아!!!" 라고 소리치는 것보다, "에이 너 아직까지는 혼자서 이닦고 이런 거 못하겠지?"라고 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반대로 이를 스스로 닦는 모습을 보면 "헐, 대박 너 설마 진짜 혼자 이닦는 거야? 놀라운데?" 라고 말해준다. 이를 닦게 하는 게 목표이고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서로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물론, 갈등상황에서 명백한 잘못이 있거나 규칙을 어겼을 때는 호되게 나무란다. 그게 아니라 일상적인- 혹은 어린아이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의 상황에서는, 의외로 천연덕스럽게 그 허세를 자극시켜주는 게 훨씬 이로운 결론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친구같은 부모는 없어요


  나는 친구같은 부모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부모여야 한다. 친구랑 놀다가 좀 속상해졌다고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는 건 사실 5살 이후부터는 좀 어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딸들은 그러면서 감정의 교류나 이해를 배우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들들은 오히려 자기중심적이고 조절력이 부족한 경향을 보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네가 지금 얼마나 멋지고 앞으로 얼마나 더 멋지게 행동할 수 있는지 가이드를 제시해주는 게 부모, 특히 아빠의 일이다.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게 점점 더 멋지고 신나지는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어느 날 아내와 잠시 말싸움을 했는데 아들이 그걸 다 엿듣고 있었다. 갈등이 크거나 지속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6살 이후부터는 아들이 그런 모든 상황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게 느껴진다. 그날 밤 아들을 재우는데 내 품에서 아들이 말했다.


  "아빠. 아까 소리도 안 지르고 좀 멋진데?"

  (솔깃)


  엄마와 싸우고도 멋진 아빠는 세상에 없단다 아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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