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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May 25. 2023

마흔 이후에 필요한 인간관계의 수

마흔 살의 복싱일기 -10

  복싱은 혼자서 간다. 물론 같이 다닐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도 같다. 그래도 당연히 혼자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내 또래의 친구나 동료들을 보면 갈급하게 취미를 찾는 이들이 많다. 골프나 테니스가 요즘 대세라고 하는데, 골프는 특히 같이 칠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스포츠다. 그렇게 삼삼오오 뜻맞는 사람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참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내겐 더욱 어렵다.


마흔 즈음에...


  마흔 즈음에 취미생활로 눈을 돌리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 같다. 화무십일홍이라면 직장십년홍이다.  한 직장에서 한 가지 일을 10년 이상 해온 나로서는, 직장에서 새로운 설렘을 찾거나 대단한 만족감을 찾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가족을 돌보는 일은 물론 가장의 책임이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즐거움 외의 어떤 아주 작은 공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취미. 복싱은 그래서 마흔 살의 내게 제격이다.



이 많은 인간관계는 무슨 소용일까


  직업 자체가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다보니 10년쯤 세월이 흘렀을 때, 카카오톡 친구가 3000명이 넘어갔다. 훑어보면 이제 누가 누군지 카톡 프로필을 열어봐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아예 번호가 바뀌어 전혀 다른 사람이 뜨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온라인 인간관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피곤하고 귀찮아졌다. 만나서 나눌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힘들어졌고, 만나서 마셔야 하는 술과 안주와 그렇게 엉덩이 깔고 보내야 하는 시간이 언젠가부터 아깝게만 느껴졌다. 돌아서는 길이 유쾌하지 않았다.


  물론 나 자체가 내성적이고 넓은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데 재주가 없는 사람이긴 하다. 그래도 친해진 사람들과는 아주 깊이 인생을 나누는 걸 추구했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젊은 시절엔 두주불사의 밤을 보내며 세상아 덤벼라! 같은 태도로 동지들을 곁에 두었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자연스레 바깥활동이 줄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인생의 무게추는 직장과 친구같은 대문 밖의 무엇보다, 대문 안에 살아숨쉬는 내 아내와 내 아이에게로 점차 옮겨갔다. 그걸 처음 깨달았을 때는 조금 씁쓸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발전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렇게 점점 가벼워지고 그래서 정작 중요한 것들에게 무거워지는 일일이도 모르겠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마흔 살 되기


  문제는 있었다. 워낙 사람들 틈에 있거나 일에 몰입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가족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나만의 즐거움-그것이 쾌락이든 휴식이든-을 전혀 채울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일이 없으면 공허했고 내가 무의미해지는 것 같았다. 캘린더에 약속이 잡혀있지 않으면 왠지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 시간에 그냥 혼자서 뭐라도 했으면 괜찮았을텐데, 생각해보니 대학시절 좋아했던 독서마저도- 나는 친구들과 스터디나 학회를 하며 떠들기 위한 수단이었지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는 취미는 아니었다.


  그런 취미-혼자-무능력자가 매일 꼬박 1시간을 혼자 있을 수 있게 해준 게 복싱이었다. 물론 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나름의 슬럼프나 매너리즘도 느끼지만, 그래도 매번 새롭게 얻어 맞고 새롭게 때려보는 일을 세상 구석에서 혼자 할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인 일이다.



    https://youtu.be/iV9s-jFI_04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 <그러려니> 중에서


  선우정아의 노랫말이 시리기도하고 시원하기도 한 마흔, 인생을 살아가는 데 내 옆에 두셋만 있으면 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절절히 와닿는 2023년. 그렇게 단촐하게 살아가며 복싱을 계속 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래도 단 한 사람만 이 고독한 링에 초대하고 싶다. 바로 아들이다. 언젠가 아들에게 복싱을 가르치고 그렇게 실컷 아빠를 두들겨 팰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 날이 온다면, 그걸로 내 인생에 사람과 사랑은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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