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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May 18. 2023

너의 장례식 다음날, 나는 복싱장으로 향했다

마흔 살의 복싱일기 -7

  한참 복싱의 재미를 알아가던 작년 가을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아이를 등원시키고 상쾌한 마음으로 돌아선 출근길에 아내의 전화가 울렸다. 익숙하지 않은 시간대의 전화는 항상 불행을 알려주기 마련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동생이 죽었다


  지금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때의 그 감정을 글로 기록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사흘 간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상주가 되어 예쁜 동생의 영정을 쳐다보았다. 시신을 확인하고 뼈를 확인하고 뼛가루를 담아 낯선 곳에 묻어주고 돌아왔을 때는 주말 밤이었다. 막내딸을 잃은 엄마와 아빠 앞에서 나는 동생을 잃은, 마흔 살의 맏아들이 되었다.


  그날 밤 나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잠을 푹 잤다. 


  잠에서 깨었을 때, 세상은 내가 알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여섯 살 아들은 여전히 생기넘치고, 우리 집은 내가 알던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나는 우주의 전혀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 반대로 이 모든 걸 나는 짊어지고 살 수 있을까. 내 삶에도 앞으로 '행복' 같은 게 가능할까. 지금도 이 질문들을 하루에 여러 번 떠올리게 되지만, 무거운 질문에 늘 가볍게 대답하는 걸 좋아했던 내 습관 때문일까- 아이를 등원시켜놓고 일단 밖으로 나섰다.


  가까운 이의 죽음이 인간에게 던져주는 첫 느낌은, '공포'다. 나는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파트 밖으로 일단 나섰을 때 그날따라 높아보이는 아파트의 압도적인 높이. 유독 쌩쌩 달리는 거리의 오토바이들.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미처 몰랐다는 듯 모든 발걸음이 위태했다. 한강으로 가면 강을 보는 게 무서웠고 내가 사랑하는 내 주위 사람에게 혹여나 조금의 불행이라도 추가된다면- 나는 당장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는 확신에 눈을 감기도 눈을 뜨고 있기도 쉽지 않았다. 그릇에 넘치는 행복을 상상해본 적은 있어도 그릇에 넘치는 불행은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인생이라는 게 '큰 불행만 없다면 괜찮다'는 주의로 나름 낙천적으로 살았는데. 


  그날은 정말, 살아있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그렇게 걷다 문득 '복싱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운동 가요.'

  엄마, 아들은 그래도 괜찮아- 라는 말을 그렇게 전하고 싶었다. 아마 엄마는 나보다도 더한 공포를 느끼고 있을 테니까.


  복싱장 문을 열었을 때, 익숙한 땀냄새와 어둑한 풍경, 코치님의 살가운 얼굴이 나를 반겼다. 이곳은 내가 알던 세상 같았다. 스트레칭을 하고 줄넘기를 뛰기 시작하자 드디어 머릿속에서 공포심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애무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겠지만, 몸 전체의 근육을 핫둘핫둘 움직이며 내 몸이 온전하고 또 살아있다는 감각을 최대한 깊이 느끼려 노력했다. 땀을 한바가지 쏟고 나자 무언갈 게워낸 속처럼 편안함이 찾아왔다. 그날은 샌드백을 10라운드는 뛴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복싱장에 나갔다. 사람좋은 우리 코치님은 '참 열심히 하시네요'라고 웃으시지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덕분에 그날도 어제도 오늘도 버티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어떤 날은 쉐도우를 하다 동생 얼굴이 생각나 눈물이 막 쏟아진다. 땀도 나고 눈물도 나고 콧물도 나고 온통 더러운 얼굴이지만 종이 울릴 때까지 멈추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고 스탭을 밟아본다. 세상에 내가 짊어져야 할 고통의 무게가 너무 클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혼자임을 깨닫는다. 그때 어떤 이는 신(神)을 찾고 어떤 이는 의존할 다른 무언갈 찾겠지만, 내가 찾은 것은 바로 복싱이었다. 흔들거리는 샌드백은 어디 가지 않고 내 앞에 자기 몸을 대준다. 그렇게 세상에 나 혼자서 나 혼자를 트레이닝할 수 있는 운동- 허공에 떠도는 감정과 상념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하나둘 카운터로 터뜨리는 운동 - 만져지고 느껴지는 진짜인 무엇.


  마흔 살의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게 복싱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보고싶다. 너도 오빠가 복싱같은 걸 하게 될 줄은 몰랐겠지 그치.

  계획에도 없던 애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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