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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Jun 01. 2023

세상 사람들은 다 괜찮은 걸까?

마흔 살의 복싱일기 -12

  바로 어제 일이다. 집 근처에서 운전 중에 신호가 갑자기 바뀌어 횡단보도에 걸쳐서 정지했다. 곧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조금 더 나가서 횡단보도를 아예 지나가 세우는 게 보행에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건너던 자전거 한 대가 내 차 앞으로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난 조금만 앞으로 빼면 온전한 횡단이 가능해지니 그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전거를 운전하던 아저씨는 차 궁둥이로 지나가기 싫었을 수 있겠다. 여기까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내가 잘한 게 없는 일이니 별로 할 말이 없다.


점점 이해할 수 없어져가는 세상 사람들


  그런데 그 아저씨가 기어코 내 차 앞으로 지나가려고, 그러니까 횡단보도에서 한참 벗어나 본인의 경로설정 최단거리로만 운전해오더니 대뜸 운전석을 바라보며 쌍욕을 갈겼다. 물론 나는 복싱을 하는 남자 아니던가. 아무 말 않고 빤히 쳐다보았지만 꽉 닫힌 차창 너머로 날아오는 욕설이 너무 길고 또 심했다.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런 일로 화가 나는 성격은 아니다. 신호가 바뀌고 다시 운전을 시작하며 생각했다. 


세상엔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까?
 그 많고 다양한 사람들은 다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은 어릴 때부터 나를 사로잡은 궁금증이었다. 오후 네 시쯤, 고향 아파트 단지에서 학원을 마치거나 친구들과 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의 그 수많은 유리창에 비친 노을을 보다 문득 "세상엔 사람들이 참 많다" "다들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같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혹은 차가 많은 고속도로 위에서도, "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 다들 어딜 가는 걸까?" 궁금해지곤 했다.


  어릴 때의 그 마음은 커서도 아주 오래 지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가족들과 여행 중에 휴게소에 들렀을 때, 정말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천차만별의 말투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문득 이들과 내가 같은 종족이 맞을까 의아해진다. 그건 꼭 부정의 감정이라기보단, 내가 이 사람들과 섞일 수 있는 건가 혹은 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에 가깝다.



모두가 나와는 다르다는 사실이 주는 불편함


  복싱장에 매일 출근하다보면 늘 같은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회원님들과 일일이 다 인사를 하거나 통성명을 하진 않지만, 그들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면 역시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성에 놀라게 된다. 물론 그 중엔 내게 불편감을 주는 것도 있다.

우리는 아주 질서정연한 세상에 살아가는 것 같지만, 무엇 하나 같은 것 없는 존재들이다

  

  예를 들면, 아침마다 만나는 한 회원님은 꼭 라커룸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다. 문이 열린다고 밖에서 라커룸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는 아니지만, 홀딱 벗고 있을 때 그렇게 들어와 자기 일만 하고 있으면 조금 짜증이 난다. 그래서 그 부분을 이야기할까도 고민해봤지만, 말을 쉽게 붙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가끔은 스트레칭을 할 때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셔서("아 오늘 좀 힘드네" "아 어깨가 왜이러지" "그만하고 싶다" 같은) 나한테 하는 얘기인가 의아했던 적도 있다. 심지어는 샤워실에 단 둘이 있는데 혼자서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셔서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오늘 아침엔 참 기분이 별로네") 


  그러니 문 좀 닫아주세요- 라고 말을 했을 때 무슨 답을 들을지 몰라 그냥 참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냥 일을 하러 가셨으면...하고 내가 불편할 정도로 귀에 에어팟을 끼고 끊임없이 업무를 보며 운동하시는 분, 오셔서는 꼭 9분(3라운드)동안 준비운동도 없이 쉐도우를 슉슉 멋지게 하시고는 30분 동안 샤워와 미용에 집중하시는 분, 코치님과 수다만 떠는 분 등등. 아, 물론 남자들은 다 아는 "헤어드라이기로 중요한 곳 말리기"를 시전하는 징그러운 분도 당연히 있다. 인간사 각양각색인 것은 작은 복싱장에서도 마찬가인 모양이다.



하지만, 누구도 나와는 같지 않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에 약간의 '연민'같은 걸 느끼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이 나를 보면 또 얼마나 별종이겠냐마는, 나는 그렇게 각자의 루틴과 성격으로 살아가는- 그것도 이제 다들 40은 훌쩍 넘긴 중년 남성이 되어 - 모습에서 일종의 '생존방식'같은 게 엿보인다. 이렇게 다른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오늘 하루도 대부분 무사히 넘긴다는 건, 그 다양한 생존방식들이 그래도 꽤 효과가 있다는 것 아닐까. 그게 약간의 무례함이든, 혼잣말이든, 중년의 그루밍이든, 무엇이 됐든 누군갈 해하지 않는 선에서 오늘도 살아가려고 복싱장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을- 나는 약간 좋아하는 것 같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자전거 아저씨처럼 내게 쌍욕을 한다 해도, 그렇게 해서 그 아저씨도 무언가 뱉어내며 생존해가는 거라면, 그렇게 생존해 성장하고 진화하고 더 나은 생존방식을 찾길 바랄 뿐이다.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다 내치고, 조금 잘못하고 밉다고 해서 다 매장시키고 나면, 나는 살아남아 있겠는가.


  여름철 잽싸게 폭발하는 잡초들도, 가을이면 물드는 단풍도, 멀리서 보면 다 같아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모양도 색도 제각각이다. 나는 '신'을 믿어본 적은 없지만, 그런 존재가 아니라면 도대체 이 다양한 삼라만상이 어떻게 하나하나 태어나고 살아가고 각자의 모습으로 진화했을까는 여전히 불가해한 일이다. 그런 거대한 요지경 속에 나같은 인간도, 우리 가족도, 주변의 누구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 대세에 그냥 몸을 맡긴달까 -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각자의 모습으로 오늘도 모두 각자의 링에서 잘 살아가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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