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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Jun 01. 2023

정말로 서울에 폭탄이 떨어지면 어떡할까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는 법 -8

  언젠가 네가 읽었으면 하는 편지를 쓴다.


  어제 아침이었단다. 너에게 아침밥 차려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도 들었겠지만, 휴대폰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참 희한한 세상이다. 군대에서나 듣던 사이렌이 이제 아빠 휴대폰에서 수시로 울린다. 다른 어른들 모두 그랬겠지만, 문자를 받고 기분이 이상했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쐈으니 어린이와 노약자부터 대피시키라는 내용이었다. 맨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단다. 


  이렇게 평화로운 아침에?

  그 뒤로는 잠시 그 문자가 정말일까, 의심했다. 창밖으로 혹시나 진짜 사람들이 대피하는지 살펴보았다. 모두 나와 같은 의심을 했을까- 바깥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다행히 그 문자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빠는 어젯밤 너를 재우며 곰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0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만약, 만약,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아빠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하철로 대피하는 게 우선이랬다. 요즘이야 필요한 건 모두 휴대폰에 있으니 간단한 식량을 챙겨 너와 지하철로 대피하면 될 것이다. 아빠는 생존력이 좋은 편이고(군대에서 그렇게 느꼈다) 그럴 때 두뇌회전도 빠른 편이니 우리는 그 위기를 잘 이겨낼 것이다. 네 손을 잡고 혹은 너를 업고 어디든 도망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집에서 5분 거리의 지하철로 대피하는 것도 의미없게 만드는 어떤 것이 우리의 평화로운 하늘 위로 날아온다면- 그때 아빠는 무얼 해야 할까?


  아빠는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그래서 세상엔 정말 말도 안되는 일도 일어난다는 걸 무수히도 배웠다. 일본에 핵폭탄이 떨어졌을 때, 실제로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읽고 또 읽었었다. 잠들어있는 너의 얼굴을 쓰다듬으면 세상엔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언제나 세상은 우리 마음 같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빠는 결심했다. 만약 5분 뒤 서울에 핵폭탄이 떨어진다면, 5분 동안 아비규환의 탈출을 해봤자 아무런 생존의 가능성도 없는 그런 일이 정말 어느 날 아침 벌어진다면, 아빠는 뭘 할지 말이다.


  아빠는 라면 물을 올릴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멸치 다시마 육수를 올리고 불을 최대로 높여 얼른 보글보글 물이 끓게 할 것이다. 라면을 반으로 부숴 풍덩 넣고 네가 좋아하는 새우도 넣고, 짜니까 스프는 반만 넣어서 다시 보글보글 끓일 것이다. 마음이 급해서 라면을 다 익히지 못할까 걱정도 되지만, 그럴 때일수록 10초만 더 끓이자는 마음으로 너와 함께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지긋이 바라볼 것이다.


  너의 입에 라면이 들어가고, 그래서 네가 꺄르르 세상 가장 행복한 웃음소리를 낸다면- 아빠는 괜찮다. 널 아무리 껴안아도 널 지킬 수 없는 순간에 아빠가 무슨 자격이 있겠냐마는, 아빠는 라면을 끓여주는 것으로 이 세상 소임을 다 했으면 한다. FC바르셀로나의 축구선수가 되어, 혹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유격수가 되어 돈을 아주 많이 벌게 되면 라면을 실컷 먹겠다는 너에게 라면을 끓여줄 것이다.


  혹시나 시간이 조금 더 허락된다면 후식으로 수박바도 주고싶다. 

  수박바를 다 먹고도 아무 일이 없다면, 우린 얼마나 행복할까.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게 너무 쉬워서 조금 미안하지만.

  물론,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틀림없다. 

  우린 괜찮다. 자신있게 살아가도 된다.


  그래도 아빠는, 언제나 라면 끓여줄 준비를 하고 있을게.
  사랑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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