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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Apr 27. 2023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는 법-2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걸 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히 아들을 제자리에 앉게 하는 것보다는 쉬울 거다. 아들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가만히 앉아있는 게 너무 좋다'는 아들을 본 적이 없다. 어린이집에서 공개수업을 할 때도 가보면 여자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선생님 말에 집중하는데 아들들은 자기들끼리 키득대며 수신호를 주고받고 어딘가에 꽂히면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다닌다.


  그런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자고 마음 먹은 건, 조금 부끄럽지만 일곱살이 된 올해 1월 1일이었다. 아이들이 한글이며 영어며 빨리 떼는 게 무슨 경쟁처럼 돼버린 세상에서 나는 꽤 오래 그냥 내버려두고 버텼다. 물론 자기 전에 같이 누워 책을 읽어주거나 주말엔 독서시간을 정해 함께 잠시라도 앉아서 읽기 시간을 보내긴 했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동생이 샬라샬라 영어로 이야기를 하면 내심 부럽거나 초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들이 한글을 빨리 떼길 재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여기서 내가 자식 교육을 열심히 시키겠다는 부모들을 내가 비판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혹시나 자기 아들딸이 늦을까봐, 특히 아들이 한글 등에 관심이 없어 걱정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조금의 안심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쓴다.


  내가 한글을 늦게 가르쳐도 된다고 끝까지 (아내에 맞서) 꼬장을 부린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 요즘 세상에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나.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이건 한글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성장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태도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이고 졸리면 잘 것이고 지루하면 뭔가 신나는 걸 스스로 생각해내겠지. 키는 클 때가 되면 클테고 친구도 사귈 때가 되면 사귀겠지. 그런 걸 부모가 재촉한다고 안될 일이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받았지 언젠가 알게 될 한글을 하루 혹은 1년 빨리 알게 만들 이유를 나는 못 찾았다.


  둘째, 한글을 빨리 안다고 당장 아이 스스로에게 도움될 만한 게 없다. 


  오히려 한글을 알아버리면 나는 아이의 상상력의 세계가 금세 닫혀버리고 만다고 생각한다. 아들은 글자를 읽을 줄 모르던 대여섯살 때도 '비주얼 박물관'이라는 웅진의 백과사전식 책을 정말 열심히 읽었다. 거기엔 참 귀한 사진들이 자세히도 나와있는데 그 내용은 어른인 내가 봐도 어려웠다. 그런데 그걸 재밌게 보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니 오히려 글자를 모르기에 그 책을 뚫어져라 보며 사진을 나름의 상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자를 몰라서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는 아이러니.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상징'이다. 나비는 나비라고 부르고 나비라고 쓰기로 약속한 것이다. 한글을 아는 순간부터는 그 약속의 테두리를 벗어나선 안된다. 나는 아들이 나비를 읽고 쓸 줄 몰라도 나비를 보고  봄이 왔음을, 비정형적인 나선형 날개짓이 얼마나 잡기 어려운지를 먼저 떠올리길 바랐다. 그 언젠가 친구에게 편지를 쓰며 나비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쓰게 될 때, 그때 그 연필 끝에 담긴 감정이 오래오래 자라길 바랐다.


  셋째, 한글을 익히는 게 만약 일종의 '공부'라면, 그것은 아이 인생의 첫 공부다.

  모든 공부에는 자기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한글을 알고 싶다고 쪼르르 달려온 아들을 내가 내친 게 아니다. 나는 아들이 쪼르르 달려올 거라 믿고 기다렸을 뿐이다. 여섯 살 이후부터는 급격히 인간관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아들들은 친구가 한글을 알고 읽는 모습을 보면 본인도 덩달아 하고 싶어한다. 결국 앉아서 자기 힘으로 글씨를 쓰고 반복해서 익혀야 하는 '공부'의 속성을 처음으로 아이에게 주입하려면 아이가 '공부할 준비가 되길'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글을 가르치는 내내 속에 천불이 나고 다정했다가 소리를 질렀다가 부모 스스로가 피폐해질 게 분명하다. 

  

  아들들은 경쟁심이 매우 강하다. 그걸 굳이 부모가 먼저 '이리와 앉아봐 넌 일곱 살인데 한글도 모르니 누구누구는 영어도 잘 해' 라고 말해줄 필요가 없다.(물론 나도 그런 말실수를 한 적이 있다...) 아들들은 스스로 그걸 느낀다. 다행히 부모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그 순간 열패감을 먼저 느끼거나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만약 벌써부터 그런 퀘스트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위축된다면 그건 한글공부가 급한 게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봐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적당한 자극, 그렇게 해서 시작되는 공부, 그 결과로 본인이 얻게 되는 효능감과 재미. 이 싸이클을 처음부터 부모가 섣부른 마음에 파괴해선 절대로 안 된다. 대신 만들어줘서도 안된다. 공부의 이유가 부모가 되는 건 최악이다. 그건 누구나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결국 언젠가 알게 될 한글을 1년 앞당기겠다고 시작부터 공부나 학습에 학을 떼는 아이로 만들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넷째, 이건 영어에도 적용되는 원칙인데 - 표현할 컨텐츠가 우선이다. 그걸 담는 그릇은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아이가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한글도 영어도 그저 수단일 뿐이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 없이, 상처받지 않으며 다가가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성격을 형성하는 게 아이가 해야할 일의 전부다. 그 뒤의 것들은 일종의 번외 게임이다. 말을 잘 하는 아이가 듣기를 잘 하고 쓰기와 읽기도 잘 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따박따박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아들이 먼저다.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한글을 아무리 잘 써도, 편지를 써줄 마음도 없고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할 마음도 없는 아이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물론 도구가 많으며 좋다. 그 도구들을 갈고 닦을 시간은 앞으로 아이의 인생에 참으로 많이 남아있다. 지금, 여기서만 챙길 수 있는 것들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귀찮았다. 


  이건 솔직한 말이다. 한글을 가르쳐야겠다 싶어 여섯 살 여름쯤, 포켓몬스터 글자쓰기 책도 사온 적이 있다. 그걸 펼치고 옆에 앉아 자신이 다 아는 포켓몬들의 이름을 굳이 왜 써야하는지 모르는 아들에게 연필을 쥐어주고 있자니 나부터 재미가 없었다.


  나는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나 자신, 부모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피곤하고 내가 짜증나고 내가 재미없으면 안 한다. 물론 그게 무책임한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주말 아침 티비를 틀어주고 늦잠을 퍼질러 잔다든가...) 내가 힘든데 그 무엇을 아이와 나눌 수 있겠는가. 나는 육아에서 부모가 스스로를 챙기고 이기적이 되는 건 나름 합당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다정도 체력이라고 했다. 주말 아침에 늦잠을 자며 난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설득한다. 지금 충전해야 너랑 놀 수 있어-


 한글을 즐겁게 가르칠 '내'가 준비가 되지 않으면 아들도 한글을 배울 준비가 안된 것이다.


  두 달 만에 한글 떼기


  이렇게 네 가지 정도의 이유로 나는 아들의 한글 공부를 여섯살 해가 넘어가도록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일곱 살이 되던 올해 1월 1일, 아들과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월화수목금토일의 일과별 계획표를 짰다. 노는 시간과 공부할 시간을 정하고 일곱살 이 되었으니 매일 그림일기를 쓰자고 했다. 그때 아들이 먼저 말했다. 자신이 한글을 쓸 줄 몰라 일기를 쓰지 못한다고. 그래서 물었다. 그럼 아빠랑 한글을 공부해볼까?


  응!!


  이제 준비가 되었다. 아들과 재미있게 한글을 뗀 방법(생각해보니 딱 두 달 걸렸다.)을 다음 글에 이어서 쓰려 한다. 오늘도 혹시나 내가 내 아들이 뒤처진 건 아닐까 걱정할 수많은 부모님들께 격려와 위로를 보낸다. 세상 무엇도 급할 건 없다. 우리 아들들은 아주 오랫동안 아주 천천히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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