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통(宿命通) 가동, 밥상머리 잔소리 너머의 소스 코드를 읽다
본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고성능 서라운드 스피커가 켜졌습니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비트도 없고 쉼표도 없는 60분짜리 '리미티드 에디션 믹스테이프'에 가까웠습니다.
"너 또 그 옷이니? 얼굴은 왜 이렇게 반쪽이야. 옆집 철수는 이번에 과장 달았다는데, 넌 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 적금은 붓고 있는 거야?"
평소의 나였다면 "아, 쫌! 밥 먹으러 왔지 조사받으러 왔어?"라며 즉각적인 '맞다이'를 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야에 푸른색 알림창이 떴습니다.
[시스템 알림]
Buddha Mode Activated.
부처님이 당신의 마음에 로그인하셨습니다.
'숙명통(宿命通)' 스킬을 시전합니다.
갑자기 거실의 소음이 뮤트(Mute)된 듯 조용해지더니, 어머니의 얼굴 위로 기묘한 '오버레이'가 겹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뒤로 외할머니, 그 뒤로 이름 모를 쪽진 머리의 여인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어머니와 똑같은 입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밥은 먹었냐", "아껴 써라", "자식은 언제 낳냐." 그건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흉년과 전쟁, 가난이라는 '헬(Hell) 난이도'의 서버에서 살아남은 고인물 유저들이 후손에게 남긴 필살 생존 매뉴얼이었습니다. 숙명통이 보여주는 데이터 속에서, 어머니는 수천 년간 내려온 '불안'이라는 매크로를 충실히 실행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너 나중에 늙어서 혼자 어떡하려고 그래! 내 말 듣고는 있는 거야?"
어머니가 회심의 하이라이트 펀치라인을 날리는 순간, 로그인한 부처님은 내 입을 빌려 설법 대신 싱거운 질문 하나를 툭 던졌습니다.
"엄마, 근데 나 결혼시키고 돈 모으게 하면, 엄마는 이제 무슨 재미로 살 거야?"
"뭐? 갑자기 뭔 소리야?"
"엄마, 이제 내 걱정은 그만하고, 엄마 마음속에 있는 엄마도 좀 챙겨주면 안 될까?"
가르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엄마가 돌리고 있는 그 지독한 '걱정 루프'의 전원을 잠시 끈 것뿐입니다. 어머니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얘가 오늘따라 왜 저래? 배고파서 헛소리하나 보네"라며 멸치볶음을 내 앞그릇에 수북이 쌓았습니다.
나는 부처님 특유의 평온한 눈을 하고 멸치를 씹었습니다. 숙명통이 보여준 데이터의 끝엔 단 하나의 소스 코드가 적혀 있었습니다. [부디 나보다 오래, 굶지 말고 살아남아라.] 어머니의 모든 독설은 결국 그 절박한 사랑의 언어를 현대어로 오역(誤譯)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배운 적 없는 세대가 자식에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안전 알림 문자'.
"국 식는다. 얼른 먹어."
어머니는 투덜대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내 쪽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나는 가타부타 말대꾸하는 대신 고개를 숙여 밥을 크게 한 술 떴습니다. 부처님이 로그인한 덕분에, 나는 오늘 어머니가 내뱉은 날 선 말들을 가시가 아닌 영양가 있는 반찬으로 삼켜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숭늉까지 비워냈을 때, 내 안의 부처님은 조용히 로그아웃했습니다. 하지만 식탁 위엔 짜증 대신 묘한 평온함이 남았습니다. 수천 년간 이어진 불안의 연대기에 오늘, 내가 아주 작은 쉼표 하나를 찍은 기분이었습니다.
다음 에피소드 예고
이것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업보(Karma)이니라
불안한 통장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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