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내가 갖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서재였다. 한 번씩 TV에 나오는 명사들이 서재를 자기의 보물이라고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꽤나 부러웠던 모양이다. 방 한 칸을 정해 갖고 있었던 책을 책장에 가지런히 진열하고 새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책장도 하나 더 구입했다. 두 개의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을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뿐이었다. 한번 읽고 책장 속으로 들어간 책을 다시 꺼내 보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어느새 책들이 넘쳐나고 더 이상 꽂을 책장 공간이 부족했다. 책 위에 책을 얹혀 놓고 그래도 안되면 방바닥에 쌓았다. 잘 정돈된 서재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지적인 눈빛으로 책을 응시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는데, 어째 방안 꼴이 좀 아닌 거 같다.
그때 도끼로 내 머리를 때린 말씀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였다. 그동안 나는 책을 읽는 그 자체를 즐겼다기보다 책을 많이 소장하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아내가 선물해 준 책과 아끼는 몇 가지 책들만 남겨 놓고 대부분의 책들을 정리했다. 두꺼운 외투를 벗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 이후로 책을 읽고 싶으면 도서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지방 근무를 시작한 작년에는 부산 금정구의 금샘 도서관, 청주 오창의 호수 도서관 그리고 김포 우리 집에 올 때는 풍무 도서관을 이용한다. 세 곳 모두 경관이 수려한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학창 시절 도서관하면 떠오르는 것이 대부분 시험 공부하는 정숙한 장소였지만 요즘은 정말 그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건물 외관이 현대식으로 디자인되어 눈길을 끌며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내부 시설도 이전의 조용히 앉아 책만 보는 장소와는 많이 다르다. 소장한 책들이 방대하고, 신간이 수시로 입고된다. 멋진 북카페도 있고 멀티미디어실, 문화 강좌, 영화 관람,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 등이 운영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도서관, 참 좋다.
어제 풍무 도서관을 들러서 책 한 권을 대출했다. 스베덴 보리의 '위대한 선물'이다. 작년부터 최준식 교수의 '카르마 법칙' 강의를 들었는데 내 인생관에 많은 영향을 주셨다. 그 강의에서 소개된 영화와 책들을 틈나는 대로 보는 것이 깨알 재미다. 이미 영화를 보셨던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식스 센스, 디 아더스, 천국보다 아름다운' 등이다.
책을 소장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니 이젠 발길 닿는 곳마다 내 서재가 있다. 그것도 아주 크고 멋진 서재. 퇴직 후 준비도 여기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 오랫동안 고뇌하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저자와 내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외롭지 않고 참 좋다.
사진 by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