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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Sep 05. 2023

기려야 할 삶

내 생각

지방 발령으로 혼자 지내고부터 여가시간에는 가끔 넷플릭스, 쿠팡플레이로 시리즈 물을 본다. 얼마 전에 '아씨 두리안', '마스크 걸'을 봤는데 공중파 방송과는 또 다른 재미다. 최근에 'D.★P. 시즌2'가 눈에 들어오면서 오래전 군 생활 기억이 살며시 떠올랐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부산에서 의정부 '306 보충대'까지 아버지와 친구 한 명이 동행했다. 가는 길 내내 담담한 표정이셨던 아버지는 연병장에서 큰 아들과 헤어질 때는 눈물을 보이셨다.  아버지가 우시는 것을 그때 처음 봤다.


밖에서 입었던 옷가지를 싸서 집으로 소포를 보낼 때 바지 주머니 속에 몇 자 적은 종이쪽지도 넣었다. 치욕스러운 자세로 치질 검사를 받을 때는 어릴 적 봤던 영화 '뿌리'의 '쿤타킨테' 신세 같았다. 며칠 후 제대할 때까지 복무해야 할 부대로 이송되었다. 나의 행선지는 9 사단 신병 교육대였다.


대학 생활 1년 동안 친구들과 술 마시고 즐겁게 놀았던 덕분에 고된 신병 교육을 받기에는 저질 체력이었다. 훈련 중에서 24 시간 잠을 안 자고 단독군장을 한채 100 KM 행군을 할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행군이 끝난 다음 날 물집 잡힌 발바닥을 바늘로 실을 꿰었다.


신교대의 훈련이 끝나고 자대로 배치받아 1991년 8월 말까지 복무했다. 30 년이 넘었지만 어제 일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혹한기 눈으로 덮인 현달산에 올라 분침호 속에서 얼어붙은 전투화를 신은 채 웅크리고 잤던 일, 유격훈련을 받으러 부대에서 북한산까지 행군했던 일, 겨울철 팀스피리트 훈련으로 충청북도 음성까지 육공트럭을 타고 갔던 일, 눈비에 젖은 침낭 속에서 한기를 느끼며 견뎠던 일, 훈련 도중 미끄러져 언 손으로 차가운 바위를 짚다가 손바닥이 갈라져 피투성이가 되었던 일 등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참 많다.


혹자는 말하길 '군대는 갈 곳이 못된다.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제대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고단했던 군 생활을 의도적으로 떠올린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100 KM까지 걸을 수 있을 것 같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그런대로 안 싸우고 지내는 요령이 있다. 군 생활 덕분이다.


요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으로 시끄럽다. 장군께서 한때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다. 어릴 적부터 반공교육으로 세뇌받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 얼핏 명분이 있는 주장으로 들린다. 하지만 우리 군의 적은 북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침범하는 모든 세력들이 우리 군의 적이다. 이념만을 앞세워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몸 바쳤던 영웅들을 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홍범도 장군의 생애에 관한 기사 일부를 인용하자면,


'한평생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치고, 아내는 일제 고문으로 숨지고, 아들은 일본군과 교전하다 전사하고  이국  땅에서 쓸쓸히 숨졌다'라고 한다.


젊은 시절 나라와 겨레를 지키기 위해 복무했고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이 땅의 한 후손으로서 홍범도 장군을 머리 숙여 깊이 존경한다.



사진 by 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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