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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Sep 10. 2023

부부

물과 나무

지난주에 건강 검진을 받았다. 형식적인 연례행사 같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몇 달 전부터 오른쪽 윗 어금니가 아파서 치과에 가는 김에 내과에 들러 건강 검진을 할 생각이었다. 다른 곳은 좀 아파도 웬만하면 참는데 안 아픈 한쪽으로만 음식을 씹으니까 영 불편했다. 참을성이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토요일 저녁 퇴근 후 청주에서 김포 풍무동 집까지 운전하는데 3시간 넘게 걸렸다. 요즘 2시간을 넘겨서 운전하면 피로감이 엄습하지만 집으로 간다는 안도감에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내는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부산에서 김포공항 행 비행기를 탔다. 처제 아들의 백일잔치에 다녀오는 길이다. 절묘한 시간에 우리 부부는 김포공항에서 만났다. 결혼 후 매일 보던 아내를 일 년여 전부터 가끔 보는데 참 반갑다.


회사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나보다 선임이었는데 키가 크고 날씬한 예쁜 여자였다. 사회생활을 처음 하면서 겪은 내 고달픈 직장생활 얘기를 아내는 잘 들어주며 다독거려 줬다. 회사에 늘 내 편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평생 안 늙을 줄 알았던 내 아내가 이제 갱년기를 걱정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가 어제일 처럼 생생한데 말이다.  


일요일 아내와 함께 파주 더티트렁크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지방 발령 전 아내와 가끔 갔었는데 오랜만이다. 카페에서 나와 차로 십여분 거리에 있는 파주 운정호수공원을 갔다. 물을 좋아하는 나와 나무를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호수공원을 나란히 걸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 많고 복잡한 곳에 가는 것보다 한적한 곳에서 함께 걷는 것이 좋아졌다. 물 위를 마실 다니는 청둥오리들이 보인다.


월요일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건강 검진을 받으러 동네 병원에 갔다. 늘 그렇듯 아내가 접수를 한다. 기본적인 검진이 시작되었다. 시력, 청력, 키, 체중, 피검사, 엑스레이 등 능숙한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옮겨 다니면 검사는 일사천리로 종료된다. 시력이 좀 떨어졌다. 키가 0.5 CM 줄었다. 결혼 전에는 아내보다 내가 조금 더 컸던 것 같았는데 이제 똑같아졌다. 부부는 닮는다던데 내 키까지 아내를 닮아갈 줄이야!


이제 수면 내시경이 남았다. 입을 벌리고 옆으로 누워 수면제가 투여되는 것을 지켜본다. 좀 춥다. 내 모습이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같다. 내가 검진을 받고 수면 내시경을 하는 내내 아내는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오랜 시간 지겨울 만도 할 텐데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살면서 바위처럼 그 자리에서 버텨준 아내가 참 고맙다.


마취가 깨서 일어났다. 다음 코스는 치과다. 아내가 또 접수를 했다. 치과 치료는 간단치가 않았다. 윗 어금니에 금이 갔다. 조금만 늦었서도 발취를 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었는데, 잘하면 신경 치료 몇 번 후 크라운을 씌우면 될 것 같단다.  신경 치료 후 마취가 조금씩 풀리면서 입안이 욱신거렸다. 하긴 오십 년을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사용했으니 그동안 버텨준 치아가 대견하다.


오전 내내 건강검진과 치과 치료를 받고 나니 배가 고프다. 아내는 내 상태를 고려해서 죽을 먹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도 넌지시 뭐가 먹고 싶냐고 묻는다. 아내는 늘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먼저 묻는다. 아내와 가끔 갔었던 생선 요릿집에 가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예전에 아내와 같이 갔었던 곳을 다시 찾게 된다. 왠지 그곳에 다시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마취도 덜 풀린 입을 움직여 생선 요리를 먹었다. 지금처럼 아내와 함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사진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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