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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14. 2023

대학입시

경쟁 교육

꿈나무 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총 12 년 과정의 지긋지긋한 주입식 교육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생각에 나로선 쾌거였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수학에 소질이 없어 문과를 선택했고 문과 중에서 그나마 취직이 잘 된다는 상과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교과서와 참고서를 외우고 또 외웠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고 3이 되었을 때는 얼추 지방 국립대학교 상과대학에 들어갈 수준이 되었다.


입시 제도가 또 바뀌는 바람에 본인이 지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내고, 그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렀다. 겨울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원서를 들고 지원하려는 대학교에 버스를 타고 갔다. 당시도 눈치 작전이 극심했는데 어머니께서 재빨리 현장 분위기를 감지하신 덕분에 상과대학 학과 중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무역학과에 지원서를 냈다. 시험을 치른 후 약간 자신이 없었지만 운 좋게 합격했다. 학교 정문 옆의 커다란 벽보, 학과별로 기다랗게 세로로 붙여진 합격자 대자보에 'OOO' 내 이름을 발견하고 어머니와 함께 합격의 기쁨을 맛봤다.


기쁨은 여기까지였다. 대학에 와서도 적성에 안 맞는 공부를 하려니 도무지 내키지가 않았다. 대학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처럼 대부분의 과목을 달달 외워서 시험을 치렀다. 단지 시험 문제가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고등학교처럼 반 석차를 서로서로 비교하지는 않았지만 좋은(돈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학점으로 경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쟁! 경쟁! 경쟁!'


8살(만으로 아마 6살?),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2년을 경쟁 속에서 살았는데 대학 와서도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며 또 경쟁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니 내가 이 세상에 적응 못하는, 불량품 인간인가? 인간은 원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운명인가? 왜 우리나라는 노래를 들어도 순위를 정해주는 경연 대회를 해야 열광하는가?


대학 들어와서 지난 온 삶을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나는 경쟁을 참 싫어했다. 우열을 가리는 것이 너무 싫었다. 왜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그림이나 노래를 잘하는 사람보다 똑똑하다는 칭찬을 받는 것일까? 소위 명문 대학은 인성은 제쳐두고 왜 공부만 잘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뽑을까? 과연 공부만 잘해 명문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는가?


'글쎄...'


지금부터라도 '경쟁 교육'을 탈피하고 학생들에게 자기 적성을 찾아주는 교육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처럼 경쟁 교육을 고집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이다. 경쟁을 해서 우열을 가리고 우등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해서는 안된다. 묻지 마 살인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삼단봉을 사라고 부추길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봐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경쟁 교육의 폐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진 by 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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