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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13. 2023

캔자스 5

해외 생활

미국 와서 처음 다녔던 한국 교회 목사님의 따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보다 두 살 어렸는데 나를 오빠라고 부르면서 살갑게 대해줬었다. 가끔 목사님 댁에 가서 내 또래의 교인들과 함께 비디오로 영화도 봤었다. 영화, 'Sound of music'을 봤는데 여자주인공처럼 그녀도 단발머리에 성격이 쾌활했다.


집 근처로 찾아온 그녀를 만났다. 잘 웃는 그녀가 대화를 리드했다. 내가 미국 교회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로 빨래방에서 일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촌 여동생이 그 교회를 다녀서 얘기를 한 것 같았다. 왠지 한국 교회를 안 나가는 것이 미안했다.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영어 공부하려고 그냥 미국 교회로 갔어, 나 사실 교회, 하나님 관심 없어. 안 믿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얼굴이 빨개지고, 내가 너무 무식해 보였다. 곧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녀는 내 말에 놀라지도 않았다. 한국 교회를 가든 미국 교회를 가든 상관없지만 오빠가 하나님을 믿고 나중에 천국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점점 우리의 대화는 내가 묻고 그녀가 대답하는 식으로 흘러갔다.


"나는 네 말대로 교회 열심히 다니고 하나님 믿고 천국에 간단 말이야. 근데 우리 엄마는 어쩌지? 엄마는 불자로서 고모, 삼촌들과 함께 교회 다니기 싫어서 미국 이민도 안 왔는데... 나만 천국 가서 지옥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면,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일까?"


점점 진지해져 가는 그녀가 느껴졌다. 엄마를 설득해서 꼭 교회에 나가시게 하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 엄마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엄마는 내가 미국 가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몇 가지 말씀하셨고 아들의 다짐을 받고 미국행을 허락하셨다. 그 몇 가지 중에 첫 번째 계명이,


'고모, 삼촌 따라 교회에 가지 말 것'이었다.


나는 아직 신앙이 없다. 신앙에 대한 편견도 없다. '진리는 하나'라고 말한다면 어느 한쪽은 맞고 다른 한쪽은 틀리게 된다. 본능적으로 내 양심은 그런 말을 밀어낸다. 오히려 '진리는 통한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만일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신앙이 무엇이든, 아니 신앙이 있든 없든, 좋은 일 많이 한 사람이 천국 가고 나쁜 일 많이 한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게 공평한 것 같다. 내 생각은 그렇다.


그 대화를 끝으로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 어쩌면 우린 너무 순수해서 각자의 영혼이 이끄는 대로 말했을지도 모른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글자나 영화가 눈에 띄면 천사 같았던 그녀의 하얀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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