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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Sep 20. 2023

상하이

코드원

상하이 코드원 지원 출장에 차출되었다.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회의에 대통령께서 참석하는 일정이었다. 본사 코드원 총괄 담당 과장이 지방 공항 대리급 직원들의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하여 나도 포함시켰다. 과장님의 이름이 대통령과 똑같았고 외모도 좀 닮은 듯했다. 출장자 전원은 본사에서 사전 교육을 받고 현지로 출발했다.


상하이 푸동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홍콩을 제외하고 중국 본토에 발을 디딘 것은 처음이었다. 상하이 공항 지점장의 지시에 따라 출장자들의 세부 임무가 부여되었다. 나는 당시 김해공항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공항 업무가 맡겨졌다. 코드원이 착륙할 예정인 활주로와 주기장 옆에서 대기하면서, 항공기가 주기하면 스텝카 위로 올라가 승무원과 교신 후 도어 오픈을 한다. 그다음 동선에 따라 탑승객을 안내하는 일이었다. 꼼꼼히 예행연습을 한 뒤 오후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았다. 감정 이입이 잘 되는 나는 오십여 년 전을 상상했다. 시간이 흘렀을 뿐 공간은 그대로인 바로 저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뭉클하다. 개인의 영달을 버리고 나라와 겨레만을 위해 애쓰신 분들을 머리 숙여 존경한다. 임시정부 현판을 물끄러미 바라본 후 와이탄으로 자리를 옮겼다. 와이탄에 도착해서 상하이의 야경을 본 순간, 그동안 막연하게 떠올렸던 중국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감탄했던 홍콩의 스카이라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들리는 얘기로 중국 장쩌민 주석이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변모한 중국의 발전을 보여주려는 의도적인 계획이었다고 한다.


다음날 코드원을 맞이하러 공항에 도착했다. 예정된 시간에 대한민국 코드원이 착륙했다. 탑승교가 없는 램프에 주기할 예정이어서 선배와 나는 전속력으로 뛰었다. 대통령과  경호원, 취재원 등이 내렸다. 외국에서 대통령의 모습을 실제로 보면 아이처럼 마음이 설렌다. 대통령께서 행사에 입을 의복을 담은 옷장을 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옷이 구겨질까 봐 옷장을 반듯하게 세워서 여러 사람들이 낑낑거리며 내렸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용포 다루듯이.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여러 나라의 코드원이 차례차례 착륙했다. 푸동 공항 주기장이 각 국의 코드원 항공기로 붐볐다.  우리나라의 코드원은 보잉 737 기종의 소형기였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끔 나왔던 미국의 코드원, 보잉 747 점보 항공기와 비교하면 깜찍한 사이즈다.


코드원 공항 지원반의 야간 업무는 청와대 경호원과 2인 1조로 코드원 항공기를 지키는 것이다. 승합차 한대를 렌트해서 코드원 옆에 주차시키고 밤새도록 차 안에서 교대로 보초를 선다. 그때 들려주는 경호원들의 무용담이 참 재밌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척 흥미롭다.


이번 에이펙의 관전 포인트는 굴기하는 신흥 강국 중국과 이를 누르려는 현재 챔피언 미국의 신경전이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사백 년 전 '명'과 '청'의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할 수밖에 없었던 광해의 시대와 닮았다. 지금은 우리 민족이 분단까지 돼버린 안타까운 현실이 더해졌을 뿐.


코드원이 귀국하는 날에 항공기 앞에서 검식관이 대통령께서 드실 음식을 사전에 먹고 있었다. 이른바 '기미'다. 사극에서 기미를 하던 상궁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던 장면이 생각나서 기분이 묘했다. 현대판 기미상궁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우스갯소리로 대통령 검식관의 가장 명예로운 죽음은 기미를 하다가 죽는 것이란다.


 

사진 by 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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