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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Sep 15. 2023

길치

장주원과 나의 닮은 점

요즘 내 일상의 재미는 쉬는 날 스벅에서 '무빙'을 보는 것이다. 테마 중 13화 '장주원'을 보면서 펑펑 울었다. 아내의 죽음 소식에 오열하는 남자를 보면서 나도 함께 울었다. 극 중에서 장주원은 고향이 포항 구룡포로 나오는데, 괴력의 경상도 사나이가 아이처럼 우는 모습이 한동안 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장주원과 나의 닮은 점 하나를 발견했다.


'길치'


나는 생긴 거와 다르게 자타가 알아주는 길치다. 몇 번 갔었던 길을 늘 새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냐면서 아내는 신기해한다. 반대로 아내는 길 찾기 도사다. 그래서 별로 걱정은 없다.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다.


#1.

서울 시내에 근무하는 지점 직원들과 마포에서 저녁 회식이 있었다. 본사가 위치한 강서구에서 88 올림픽 도로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당시 내차에 내비게이션이과 스마트 폰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마포대교 이정표만 찾아서 가는 중에 먼저 도착한 지점 직원들이 핸드폰으로 약속 장소를 상세히 설명해 줬다. 하지만 길치인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88 대교를 아무리 달려도 마포대교는 보이질 않았다. 차를 돌릴 수도 없고 계속 달렸다. 마포대교가 보일 때까지 한참을 달렸는데 드디어 강동구 이정표가 나타났다. 술에 취한 지점 직원들의 전화 벨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이런 돌대가리들이 본사에 있으니까 우리 회사가 이 모양이지"


유구무언이다.


#2.

다리가 좀 불편하신 임원을 모시고 광주 출장을 가야 했다. 본사에서 아침 회의가 끝나는 대로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회의는 끝날 줄 모른다. 길치인 나는 속이 타들어가고 점점 초조해졌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임원을 태우고 급히 운전을 했다. 긴장한 내 모습을 보시고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농담을 잘하시는 임원은, 장애인 등록 차량이라서 주차는 문제없다고 싱글벙글하셨다. 공항공사 의전 주차장 장애인 칸에 주차했다. 내가 앞장서서 2층 출발장을 향해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가고, 다리가 불편하신 임원은 다리를 절둑거리며 열심히 나를 따라오셨다. 그런데...


"아아..."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익숙한 국내선 청사가 아니었다. 국제선 청사로 온 것이었다. 순간 번개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눈앞이 깜깜했다. 그리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상무님! 여기가 아닙니다. 밑으로 다시 뛰십시오!"


천둥 같은 내 큰 목소리에 임원은 기겁을 한 뒤 다리를 절며 아래로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일절 하지 않고 국내선 청사로 다시 자동차를 몰았고 기적적으로 광주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임원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여셨다.


"다리 아파죽겠는데... 이 씨!"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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