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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18. 2023

청주공항

말벌집과 고라니

오창 집에서 청주공항까지 차로 가면 15 분 정도 걸리는데, 10 분 즈음 가다 보면 찻길 양쪽으로 보통 키의 플라타너스가 군악대 사열한 것처럼 줄지어 서있다. 이 가로수 길을 지날 때면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저 끝 편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곧 여인네 허리자락 같은 가냘픈 미호강이 수줍은 듯이 나타난다. 한강이나 낙동강처럼 강 양 편에 인위적인 편의 시설이 많이 갖춰진 곳을 주로 봐오다가 민낯의 미호강을 내려다보면 아프리카 오카방고가 떠오른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미호강과 주변의 갈대숲은 신비롭다. 간혹 날개와 다리가 긴 큰 새 한 마리가 강 위를 크게 도는 것을 볼 때는 나도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간다.


병풍 그림 같은 풍경을 따라 청주공항 초입에 들어서면 왼편과 오른편이 확연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과거와 현재를 대변하듯, 왼편은 한적한 시골의 논밭과 녹슨 철도가, 오른편은 공군부대 대규모 막사와 군용기가 보이고 막사를 따라 DMZ처럼 철책이 공항 청사 입구까지 설치되어 있다. 자주 최첨단 전투기들이 굉음 소리를 내며 이륙하고 공중 훈련을 실시한다.


한날 제주항공 지점장의 전화를 받았다. 티웨이 지점장과 함께 점심 번개를 하잔다. 메뉴를 막국수로 정하고 가는 길에 진에어 지점장을 만나서 네 명 같이 한차에 탔다. 모두에게 청주는 낯선 부임지이고 외롭게 혼자 지내고 있다. 오랜만에 차창 밖의 날씨가 쾌청하고 흘러가는 구름도 윤기가 있어 보였다. 최근 2주간 장맛비로 해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막국수를 먹으며 요즘 공항에서 일어났던 특이한 일을 각자 말하기 시작했다.


얘기 중 관심을 끄는 것은 '말벌집과 고라니'였다. 공항 램프에서 작업하던 직원이 말벌집을 건드려 말벌에 쏘여 응급실로 실려갔단다. 스마트 폰에 찍힌 말벌집을 봤는데 무등산 수박만큼 컸다. 어떻게 저 정도로 커질 때까지 아무도 몰랐단 말인지 다들 의아해했다. 다음은 새끼 고라니가 램프 공항 사무실로 뛰어든 사건이었다. 청주에 고라니가 많이 산다는 얘기는 처음 여기로 부임했을 때부터 들었지만 주로 차도를 가로지르는 고라니를 몇 번 봤을 뿐이었다. 사무실로 들어간 고라니는 파티션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다 벽에 머리를 찢고 피를 흘렸단다. 결국 직원들이 공항 종합 상황실로 전화해서 유해조수 처리반들이 잡아갔다.


공항 사무실로 돌아와 앉아 있는데 잡혀간 새끼 고라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오죽했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먹이를 찾아 인간들 세상까지 내려왔을까. 인간들은 왜 가는 곳마다 야생 동물들의 서식처를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걸까. 미래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22 세기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지구 여러 곳에서 전조 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특정 종교를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기원전과 기원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마땅한 대체 언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암튼 기원후 1800 년 동안 생산량이 1세기보다 5 배 정도 증가하였다면 최근 200 년 동안 100 배 이상의 생산량이 증가했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엄청난 힘이다. 반면에 자연과 자원도 막대한 희생을 치러서 지구는 자정 능력을 잃었고 이제는 인간이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22 세기를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미래 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미 문명의 이기를 맛본 인간들은 돌아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념 논쟁을 하며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우리 인간들은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by 인프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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