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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17. 2023

취직 2

연수 시절

나는 본의 아니게 부산 출신의 청일점으로 분류되어 우리 방의 방장이 되었다. 소수 인종? 에 대한 일종의 배려 같은 것이었다. 조별 그룹 스터디의 조장도 만장일치로 내가 선출되었다. 각종 발표는 조장인 나의 몫이었다. 내가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서면 동기들은 웃을 준비를 하는 듯했다. 사실 내가 발표하는 내용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발표를 끝내고 우리 조 동기들에게 물었다.


"야들아! 발표 내용이 쌈빡하지? 근데 왜 쳐 웃고 지랄들이야? 사람이 우스워?"


"아따 먼말인지 하나도 모르겄어. 그냥 웃겨 죽겠어야"


연수 과정 중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서 봉사 활동을 했다. 각자 배치받은 곳으로 가서 하루종일 열심히 일했다. 봉사 활동을 마치고 조별로 조장들이 소감을 발표하는데 심금을 울렸다. 내 차례다. 나 역시 슬픈 표정을 짓고 동기들의 심금을 울리려고 첫마디를 내뱉는 찰나, 강단은 웃음바다로 급변했다.  


한 달간의 그룹 연수과정이 끝이 나고 강단에 모였다. 연수 과정의 성적과 희망 회사를 토대로 계열사 배치가 결정되었다. 군 입대시절 의정부 306 보충대를 수료하고 복무할 부대 배치를 받는 과정과 비슷했다. 계열사별로 동기들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건설, 화학, 타이어, 그룹 경영실 등으로 동기들이 갈려 나갔다.


아직까지 호명이 안된 50 명 정도의 동기들만 남았다. 그룹 인사담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호명 안된 사람들은 항공이다. 나중에 비행기 탈 때 공항에서 보자. 잘 가라"


항공으로 가게 된  동기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그다음 날 우린 마곡산장으로 악명이 높은 항공 연수원으로 입과했다. 담당 교관이 OOO 대리였는데 군대 조교를 연상시키는 로봇 인간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전날 배운 내용을 '모닝 테스트'라는 명목으로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강의실 뒤편에 성명, 출신학교, 석차가 적힌 A4 용지가 내걸렸다. 죽을 맛이었다.


항공 연수 과정도 그룹 연수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성적과 적성에 따라 부서가 결정되었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향인 부산 김해공항으로 갈 생각이었다. 고3 수험생 시절과 버금갈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2달간의 연수과정이 끝나갈 무렵에 개인별로 인사담당과 면답이 있었다.


"과장님, 열심히 했습니다. 부산 김해공항지점으로 보내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과장님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자네는 전공과 적성을 고려해서 본사로 보낼 생각이었는데, 정 생각이 그렇다면 알겠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고향 부산 김해공항으로 발령을 받았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첫 출근을 했다. 쾌적한 환경의 공항 분위기가 참 좋았고, 꽃 모양 블라우스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여직원들이 참 예뻐 보였다. 일제 강점기시절 고등계 형사 느낌의 지점장님께 인사드리고 국내선파트로 배정받았다. 국내선파트는 교대 근무를 위해 다시 A와 B조로 나뉘었다. B조 선배들에게 인사드리러 현장인 카운터로 내려갔다.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 책상은 어느 거죠?"


"어이! 넌 어쩌다가 여기까지 굴러왔냐? 여기 카운터 철 책상 전부가 니 거야!"


나중에 알았다. 항공사의 부서는 업무 특성별로 참 많은데, 그중에서 대면 서비스를 수행하는 공항부서가 제일 힘들고 직원들이 꺼려하는 곳이라는 것을. 군대로 치면 일빵빵 소총수였던 셈이었다.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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