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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22. 2023

캔자스 6

해외 생활

셋째 고모 가족이 사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로 가기로 했다. 캔자스시티가 우리나라의 대전처럼 중앙에 있으니까 남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장장 12 시간이 넘게 걸렸다. 서쪽 LA에서 동쪽 뉴욕까지 횡단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만큼 걸린 걸 보면 미국땅이 참 크긴 한가보다. 한때 클린턴이 주지사로 있었던 미국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칸소 주도 지나왔다. 앞꽁지 뒷꽁지가 엄청 긴 구형 미국 자동의 시트가 너무 딱딱해서 애틀랜타에 도착했을 때는 엉덩이의 감각이 없어진듯했다.


캔자스시티가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해 여름이 무척 덥고, 겨울은 매우 추운 반면, 애틀랜타는 온화한 기후의 사람살기 좋은 남쪽 도시다. 겨울 철 캔자스는 눈이 많이 와서 염화칼슘을 자주 뿌린 덕분에 도로 곳곳이 파이고 볼품없지만 애틀랜타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피부처럼 매끈했다.


셋째 고모 가족은 아버지 형제 남매 중 가장 늦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였다. 셋째 고모 큰 딸인 세 살 위 사촌 누나와 친하게 지냈다. 얼추 십 년 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다. 누나 아래로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촌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다.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다.


셋째 고모댁은 전형적인 미국식 주택이었다. 캔자스시티의 단층 서민 아파트에 사시는 첫째와 둘째 고모 집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이층 집이었다. 셋째 고모 가족을 만났다. 사촌 누나는 이십 대 중반의 성숙한 아가씨가 되었고, 사촌 동생들은 몰라 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이민 가기 전 사촌 여동생은 나무색 뿔테 안경에 뚱뚱한 여중생이었는데, 이젠 안경을 안 쓰고 살이 다 빠져서 같은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웠다. 사촌 남동생도 초등학교 꼬마였는데 꽤 의젓하고 키도 나보다 훨씬 컸다.


고모 가족이 처음 캔자스시티로 이민 와서 애틀랜타까지 오게 된 사연을 들었다. 생활 방식이 다르고 말 안 통하는 곳에서 고생 꽤나 했단다. 다행히 애틀랜타에서 당구장을 운영해 돈 좀 벌었다. 사촌 누나는 이민 오기 전 나와의 추억을 얘기하며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줬다. 누나와 함께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 좀 웃겼다. 놀랍게도 누나는 사촌 동생들과 달리 영어를 잘 못했다. "Gosh", "Anyway"만 연발하는 누나를 보며 속으로 많이

웃었다.


애틀랜타는 프로야구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매우 유명했다. 내가 미국에 있었던 시기에 이 팀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는데 14 시즌 내리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팬들 사이에서 즐겨하는 농담 중 하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세 가지는 죽음, 세금, 그리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지구 우승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프로야구팀 팀명인 브레이브스는 용감한 아메리카 원주민 전사라는 뜻이다. 사실 애틀랜타가 위치한 '조지아'주는 온화한 기후 덕에 체로키 인디언들이 살던 땅이었다. 1830년, 미국 잭슨 대통령은 ‘인디언 추방법’을 제정해 '인디언들은 스스로를 위하여 우리가 지정해 주는 지역으로 터전을 옮겨라'라고 명령했다. 이 법에 따라 미국 특정지역에 소위 ‘인디언 보호구역’이 만들어졌다.


인디언들은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백인들의 지시에 못 이겨 저항을 포기하고 떠났다. 인디언들은 이 길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불렀다. 조지아 주에 살던 체로키 족 1만 4000명은 눈물의 길을 떠나 애절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체로키어로 부르며 미시시피 강 서쪽 척박한 땅, 오클라호마 주로 이주했다. 눈물의 길에 질병과 굶주림, 탈진으로 인해 10분의 1도 못 되는 1200명 만이 살아남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늘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콧대 높은 미국인들이지만 그들 또한 인권이 참담하게 유린된 그들의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까지도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 인디언, 흑인, 소수 인종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진정성 있는 관심과 배려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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