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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23. 2023

외동딸

마지막 학자금

어제 딸아이의 마지막 대학교 학자금을 회사에 신청했다. 딸아이는 휴학 한번 안 하며 졸업해서 회사 다니고 싶다며 취업 준비로 바쁘다. 요즘 문과생들이 취업하기 힘들다는데 혹여나 취업을 빨리 못해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식 학자금을 받을 때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신입 시절, 회사 정년 규정이 만 55세 인데도 불구하고 선배들은 대부분 50대 초반에 회사를 떠났다. 더군다나 내가 입사 후 몇 년 뒤 회사는 IMF 직격탄을 맞고 나이 오십이 안 되는 조직장 들을 대거 희망퇴직, 명예퇴직 등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내쫓았다.


나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아내를 만나 서른에 결혼했는데, 3년이 지나 우리 딸이 태어났다. 아무리 계산을 대봐도 딸아이의 대학 학자금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세상이 좋아져? 오십 중반인 내가 아직 회사를 다니며 마지막 학자금을 신청했다. 사실 회사를 다니며 불합리한 상황을 직면할 때는 곧잘 회사 욕을 하며 그만둘 생각도 여러 번 했었는데 지금까지 처자식 건사하게 해 준 회사가 새삼 고맙다.


딸아이가 학생 신분에서 회인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갓 태어난 딸아이 얼굴을 보고 뭉클했던 순간과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행복했던 추억 그리고 가슴 아팠던 기억. 앞으로 사회인으로 살아갈 모습. 언젠가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겠지.


결혼 후 우리 부부는 맞벌이로  같은 회사를 다녔다. 딸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쉬는 날 아이를 보러 갔다. 몇 년 후 우리 부부는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났다. 부모님께 아이를 남겨두고 쉬는 날 부산에 내려가서 보러 갔다. 아이가 세 살이 되자 엄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엄마를 배웅하는데 할머니 치맛자락 뒤에서 울음을 참던 딸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날 우리 부부는 가슴이 많이 아팠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내가 주재원으로 있던 하와이에 왔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서 1년 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들어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집에서 먼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 생활을 했다. 그러고 보니 세 식구 한 집에 산 세월이 딸아이가 태어나고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내 기억 속에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두 손잡고 걸었던 딸아이의 모습이 생생한데 언제 이렇게 컸는지.


드라마, '아씨, 두리안'에서 전생에서 죽었던 외동아들을 내생에서 다시 만나 눈물을 글썽이는 '박주미' 배우의 연기가 가슴에 와닿는다. 인연법에 의하면 자식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는데 부모의 육신을 빌린다고 한다. 부모는 자신의 육신을 통해자식을 생산했지만 자식이 독립된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사람이란다.


다음 주에 서울 갈 때 딸아이가 좋아하는 제주 마음샌드를 사가야겠다.



사진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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