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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26. 2023

혼자 살아보니

홀로서기

지방근무 발령이 나서 작년 여름부터 집을 떠나 혼자 살고 있다.  결혼 후 아내와 이십 년 넘게 한 집에 함께 살다가 혼자 살아 본다는 생각에 호기심 반 걱정 반이었다. 처음 지방근무지는 내 고향 부산이었다. 부산 톨게이트에 들어서면 어릴 적부터 맡아왔던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부산 냄새가 난다. 이십 년 만에 고향에 내려와 옛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고 골프도 가끔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들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정년 후에는 뭘 해서 먹고살지를 고민했다. 늙어가는 얼굴을 서로 쳐다보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처갓댁 근처 동래 명륜역에 오피스텔을 얻어 살았는데 지하철 밑으로 흐르는 온천천이 예전보다 많이 맑아져 숭어 떼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다리와 목이 긴 가마우지 물새는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서있고, 청둥오리 무리들은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먹을 것을 찾았다. 온천천 양편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고 이 길은 한정 없이 위아래로 이어져있는 듯했다.


주말에 온천천 길을 따라 상류 쪽으로 지하철 두 정거장을 걸어갔는데 내가 다녔던 대학교 지하철 역이 나왔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서 학교 정문으로 올라갔다. 학교 정문 앞에 추억이 서린 시계탑이 있었는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문 오른쪽엔 웬 백화점 건물이 뜬금없이 세워져 있었다. 학교와 백화점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무척 낯설다.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때로는 안 변했으면 하는 것들도 있다.


학교 안을 걸었다. 상과대학 건물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강의실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강의 시작 전 왁자지껄 떠들던 학우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근처 학생 식당으로 갔다. 학창 시절 비빔밥과 쇠고기 국밥이 오백 원이었는데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튀김 가락국수는 삼백 원이었다. 쿠폰을 구입해서 배식하는 코너 앞에 줄을 섰다. 옛날과 비교하면 고기도 많이 주고 진수성찬이었다.


본사와 해외에서 회사 일에 치여 정신없이 살다가 혼자 생활하며 길을 걸어보니 그동안 안 보였던 것들이 눈에 하나씩 들어온다. 회동 저수지, 부엉산에 올라 전망을 둘러보는데 경치가 이렇게 아름다웠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누가 그랬듯이 사람에겐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올봄에 청주로 부임했다. 대도시 부산과는 다른 느낌이다. 아름다운 미호강이 흐르고, 귀여운 고라니가 사는 곳이다. 아내는 청주가 서울하고 좀 더 가까워졌다고 좋아한다.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면서 내려오고 올라간다. 회사 덕분으로 본의 아니게 주말 부부가 되었지만 아내를 보면 반갑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다.


어느 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살아오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잘하는 지를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지내고부터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특별히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시절, 막연하게 국문과에 가고 싶었던 기억이 날 뿐이다. 문득 내가 겪은 일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그리고 가끔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쓰고 싶어졌다.


혼자 지낸 시간이 1년을 넘어가면서 홀로서기에 제법 적응한 것 같다. 방 청소와 빨래를 익숙하게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글쓰기를 한다. 지난 일 년 동안 나의 화두는 이 세 가지였다. 혼자 가만히 들여다보고, 공부하고, 사색한 시간 덕분에 마침내 나 만의 해답을 얻은 것 같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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