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준 Aug 29. 2023

해운대

변해가네

나는 해운대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천지가 개벽하여 센텀 부촌으로 알고 있지만 어린 시절 해운대는 유명한 해수욕장을 제외하고 부산의 한 변두리 지역에 불과했다. 해운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내 키보다 높은 옥수수 밭길을 통과해 개울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등교했다. 하교 길에는 옥수수를 따서 책가방에 넣고 집에 와서 연탄불에 구워 먹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개울 물이 넘칠까 봐 어머니는 노심초사하셨다.


여름철이면 아이들은 개울에서 벌거벗고 물놀이를 했다. 부엌에서 사용하던 소쿠리로 미꾸라지와 가재도 잡았다. 동네 아줌마와 누나들은 쪼그리고 앉아 개울가에 놓인 평평한 돌 위에 빨래 감을 올려놓고 방망이로 열심히 두들겼다. 겨울철이면 개울이 꽁꽁 얼어 각자 집에서 만들어 온 썰매를 탔다. 썰매 재료는 대체로 오래된 부엌 도마와 망가진 연탄집게였다.


변변한 호텔도 해수욕장에 위치한 조선비치와 극동호텔 두 개뿐이었다. 조선비치는 동백섬 옆에 있었는데 그곳에선 늘 푸른빛의 신비로운 인어공주를 만날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해수욕장까지 뛰어가면 십 분 안쪽이라서 책가방을 매고 친구들과 놀러 다녔다. 바닷가에 책가방을 던져 놓고 팬티만 입고 물속으로 뛰어든 적도 있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헤엄을 잘 쳤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걸어서 십분 정도 가면 미포가 나온다. 초등학교 다닐 때 청사포와 더불어 소풍 장소로 자주 갔다. 검정 교복 차림에 김밥, 사이다, 연양갱, 바나나 등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찬 소풍 가방을 메면 그때가 천국이었다. 소풍은 봄, 가을에 일 년에 두 번씩 갔다. 가끔 누나와 함께 주전자를 들고 게, 성게, 고동을 잡으러 다녔다. 당시 고등어와 갈치가 매우 쌌는데 비린내가 많이 나는 이 물고기로 게들을 유인했다. 늘 주전자 안은 잡은 해산물로 바글바글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개울을 복개하기 시작했다. 개울을 건너 다니던 다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해운대 기차역이 사라졌다. 산동네가 사라졌다. 개울을 덮은 콘크리트 밑의 물살이들도 모두 사라졌겠지. 사라진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신도시가 생겼다.


재작년 명절날 부산에 내려와서 초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저녁 무렵 달맞이 고개에서 내려다본 해운대가 무척 낯설었다. 바닷가 길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빌딩과 어지러운 불빛. 여기가 정녕 내가 살았던 곳이 맞는지. 친구는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로 데려다주었다. 가는 길에 옛 해운대 극장 자리를 지나쳤다. 만화 영화, 마루치 아라치, 로봇 태권브이를 눈을 크게 뜨고 숨죽여가며 봤던 곳이다.


초등학교는 학생이 줄어서 폐교 위기까지 갔단다. 그 넓은 운동장과 양어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학교 주위를 둘러싼 하늘 천장까지 닿을듯한 빌딩들. 학교와 빌딩숲,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교정을 응시하며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진 by 해정님


 





작가의 이전글 혼자 살아보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