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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04. 2023

김해공항 1

시절인연

부산공항 지점장으로 발령이 났다. 석 달 전 본사 팀장 인선에서 밀려 인천공항 화물운송지점으로 갔었다. 심신을 추슬러 화물운송 실무 일을 배우면서 일하고 있었는데, 한날 인사담당 임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본사로 출근해서 인사담당 임원과 마주 앉았다. 몇 달 전 팀장 인선에서 탈락시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며칠 후 부산공항 지점장으로 발령 날 예정이니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자고 했다. 사장님께서도 미안하다는 말씀을 두 차례 하시면서 부산공항에 이슈가 있으니 업무를 잘 수행해 달라고 하셨다.


집으로 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석 달 전, 파트에서 팀으로 승격된 조직장 인선에서 내가 팀장이 될 것이라는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떨어졌다. 더군다나 새까만 후배가 나를 대신해 팀장으로 발탁되었다. 막역하게 지내왔던 후배를 팀장으로 모셔야 할 판이었다. 회사의 잔인한 처사에 심한 모멸감을 느꼈고, 주위 사람들 보기가 너무 창피해 가방을 싸고 곧장 퇴근해 버렸다. 집에 도착한 후 방안에 누워 신임 팀장에게 그동안 못썼던 연차를 쓰겠다고 문자를 보낸 뒤 칩거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운 좋게 잘 피해왔던 코로나까지 걸려서 심신이 말이 아니었다. 아내는 이 참에 푹 쉬라고 위로했지만 분노의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루하루 날짜는 가는데 연차를 다 소진하고 나면 하는 수 없이 후배 팀장 밑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차라리 본사를 떠나서 지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부서에 발령을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이런 사유로 인천공항 화물운송 지점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지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것도 내 고향, 부산 김해공항 지점장이었다. 김해공항은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해서 처음 근무한 부서였다. 2003년 겨울, 서울 본사로 발령 나기 전까지 7 년간 있었다. 부산으로 내려가기 전 본사 유관 부서에서 지점 상황 및 현안에 대해 말해줬다. 지점 직원들의 사진을 훑어보니까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었다. 총원 11 명중에 입사 동기도 2명 있었다.


주말에 부산으로 내려가 기장에 계신 어머니를 뵈었다. 혼자 사시는 어머니는 큰아들이 가까이 온 것에 기뻐하셨다. 저녁에는 동래 처갓댁도 들렀다. 장모님과 의논하여 앞으로 지낼 오피스텔을 동래 근처, 온천장 지하철역 앞으로 정했다. 지하철 역 밑으로  온천천이 흐르는데 수질이 좋아져 숭어 떼가 보였다. 오래전 상경할 무렵과는 딴 판이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오피스텔을 나섰다. 20 년만의 김해공항 출근이었다. 가는 길은 똑같았는데 보이는 풍경이 새로웠고 마음도 그때와는 달랐다. 만덕 터널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낡았고 을씨년스러웠다. 공항 사무실은 새롭게 단장한 국제선 청사에 있었다. 회사 입사 동기이자 대학교 후배인 여직원 과장이 공항 상주직원 주차장으로 마중 나와 사무실까지 동행했다. 오십 줄의 여자 동기는 입사 초기의 앳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오랜 직장 생활의 노련함만이 몸에 베여 있는 듯했다.



그림 by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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